[소동기의 골프이야기]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요


재판을 하러 법원에 갔다가 잠시 변호사실에 들렸다. 몇몇 낯익은 선배 변호사님들께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중 필자가 들어서자 이내 화재가 골프로 옮겨졌다. Y변호사님께서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 소변호사! 나이 60이 넘은 노인네가 스윙을 고치겠다며 레슨을 받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것이 가당한거요? ”

Y변호사님의 질문은, 사실은 필자에게 한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아 계시는 C변호사님을 비꼬는 말이었다. 필자는 C변호사님이 Y변호사님과는 서로 절친하게 지내시며 종종 내기 골프도 하신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필자는, Y변호사님의 질문을 듣고는 문득 양주동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었다. 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양주동 박사님이 돌아가셨을 무렵, 신문에서 양박사님께서는 임종 직전까지 뱅갈어를 공부하고 계셨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공부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분의 학구열에 감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효용성에 대하여 상당한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 계시던 C변호사님께서 필자 대신에 말을 받으셨다. “ 나는, 골프를 시작한 이래 처음 일주일 정도 골프 연습장에 나가본 적은 있으나, 그 후로는 연습장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데, 듣자 하니 누구는 거의 매일 골프 연습장에 나간다고 하더구만. 그런데도 막상 필드에서 만나면 연습장에 가지 않는 나와 별로 다를 바 없더라구…. 소변호사, 그런 사람이 연습장에 나간다면 정말 돈이 아깝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오? ”

그 날은 공교롭게도,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갔더니, 내자도 모처럼 골프에 관한 질문을 해 오는 것이었다. 내자는 연초에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두어 달 동안 연습장에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다시 다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도무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그런 내자가 불쑥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여보, 연습장에 가나 안 가나 똑 같다면, 안 가고 골프 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 아니겠어요? ”

골프 연습장에 자주 나가기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필자에 버금가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으로 자부할 만큼, 필자는 자주 골프 연습장에 나간다. 그리고 매일 같이 연습을 하는데도 슬럼프에 빠져 헤맬 때면, 필자는 골프 연습의 허망함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깊은 회의때문에 눈물지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골프 연습장에 계속해서 나다녔다.

‘ 연습을 하루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갤러리들이 알고, 사흘을 하지 않으면 온 세상 사람이 다 안다’고 하던 벤 호갠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젊은 나이에 더 개선될 여지가 없을 만큼 충실한 골프 스윙의 메카니즘을 몸에 익힌 프로들이야 나이가 먹어 구력이 쌓인다 하더라도 더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반 주말 골퍼들로서는 신체적인 쇠약에 따른 골프 능력의 감퇴를, 서로 상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 잠재되어 있던 기량을 새로이 발굴해 내어 몸에 익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레슨을 받는 것이 결코 무용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그래도 연습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기대하는 것만큼 기량이 늘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줄지는 않을 것이고, 줄더라도 심리적인 안정감만은 가지게 되는데 도움이 되겠지 뭐.”

소동기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3-22 15:40


소동기 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