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스피드 그리고 스릴

[영화 되돌리기] 썸
스타일, 스피드 그리고 스릴

20대 여성 관객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최근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20대 여성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고 한다. 가깝게는 ‘말아톤’에서 지난 해 선보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S 다이어리’까지, 모두 “20대 여성이 좋아 하는 영화는 대략 흥행권”이라는 충무로의 속설을 입증하는 영화들이다.

‘복수는 나의 것 ’이나 ‘지구를 지켜라’ 처럼 개성이 강한 영화에서 연기력을 과시한 배우 신하균도 뼈아픈 흥행 실패 후 여성들이 좋아할 법한 (상대 배우 역시 너무나 대중지향적인) 평범한 멜로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로 복귀한 걸 보면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여성들이 예매 주도권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심지어 한때 모 방송국에서 영화 프로그램 MC를 보던 아나운서가 잡지 인터뷰를 통해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실패한 것을 두고 한국의 20대 여자들이 영화를 망쳤다고 일갈한 적도 있었다. 물론 망쳤다는 것 까지는 조금 지나친 감이 있지만 때로는 여성의 선호가 얄궂게도 작품의 질과 무관하게 영화 흥행에 희비를 엇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장윤현 감독의 영화 ‘썸’이 그렇다. 이 영화는 영화 김선아 주연의 코믹 멜로 영화 ‘S 다이어리’와 맞붙어 참패를 당했다. ‘S 다이어리’는 그야말로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여성의 성과 사랑을 코믹하게 그려내 여성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영화였다.

제목부터 모호한 영화 ‘썸’과 달리 ‘S 다이어리는’ 마치 ‘Sex 다이어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 덕에 훨씬 노골적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그렇다고 ‘썸’이 ‘S 다이어리’보다 작품성이 높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둘 다 오락 영화이기는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썸’이 흥행의 요소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데 있다.

영화 ‘썸’은 악몽에서 깨어난 유진이 낯선 방문객으로부터 의문의 MP3 칩을 받는 데서 시작한다. 사건의 열쇠가 되는 MP3 칩. 그리고 어쩐지 오늘 하루가 과거에 이미 살았던 시간인 듯 순간 순간 기시감(데자부)을 경험하는 유진. 영화는 흡사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불길하기 엄습해 오는 미래를 예측하고 비극을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조바심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런데 유진이 되돌리고 싶은 시간의 중심에는 사건 증거물인 100억원대의 마약을 빼돌린 범인을 찾는 형사 강성주가 있다. 강성주의 삶에서 비극의 순간을 포착한 유진과 유진을 통해 범인을 찾게 되는 강성주, 이들은 불안하고 모호한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사건을 풀어 나간다. 이쯤되면 내러티브도 신선한 편이다.

기시감을 통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SF가 되기도, 마약 사건이 끼어들면서 긴박한 스릴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러티브 보다 더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현란한 액션이다. 사실 ‘접속’,‘텔미 썸딩’의 장윤현 감독의 영화치고 내러티브가 실망스럽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 속 카 체이싱 장면만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신공항 도로의 추격 신에서는 마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서 차를 모는 범인과 형사가 아찔한 곡예 레이스를 펼친다.

역주행, 충돌, 전복이 계속되면서 영화는 자동차 추격의 모든 것을 선사하고 있다. 거기에 눈요기 거리가 되기 충분한 외제 차량들(포텐샤, 미쯔비시 이클립스, 랜드로바 프리랜더)까지 등장하니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할만도 하다. 물론 지나치게 외제차가 남발되면서 영화의 사실성이 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제작 여건상 국내 차량은 협찬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정도면 ‘썸’은 액션 치고는 볼거리가 상당한 편이다. 대박 영화는 아니더라도 중박 정도는 무리 없을 정도의 장점을 갖고 있는 영화이다. 만약 이 영화의 패인이 스타성의 부재에 어느 정도 기인했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獵?마케팅의 지원이 조금 아쉽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4-12 19:0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