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진 감독 '승장'에서 '명장'으로… 농구인생 '활짝'

TG천하 이끈 코트의 곰
전창진 감독 '승장'에서 '명장'으로… 농구인생 '활짝'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원주 TG삼보의 전창진 감독이 골대그물을 자르며 즐거워하고 있다.

‘1년의 기다림.’

우승을 축하하는 종이 꽃가루가 수북이 쌓인 지난 17일 원주 치악체육관에는 운명이 뒤바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명장의 반열에 오른 ‘승장’ 전창진 원주 TG삼보 감독과 분루를 삼킨 ‘패장’ 신선우 전주 KCC 감독이었다.

지난해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KCC 선수들이 헹가래치는 모습을 보면서 쓸쓸히 라카룸으로 퇴장해야했던 전 감독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우승을 확인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전 감독은 코트로 달려가 고생한 선수들을 품에 안았다. 꼭 1년을 기다려 얻은, 2년만의 감격이었다.

TG삼보의 우승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지난 실패의 원인을 상대 전략에 말려든 경험 부족과 체력 문제 등으로 진단한 전 감독은 3년째 이어진 ‘한여름의 지옥훈련’으로 시즌을 철저히 준비했다.

훈련의 결과는 바로 성적으로 나타났다. 시즌 개막과 함께 파죽의 7연승 신기록을 내달리며 일찌감치 고공비행을 시작한 TG삼보는 식스맨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즌 내내 1위를 놓치지 않고 완벽한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플레이오프 들어서도 TG삼보의 아성은 굳건했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을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었던 서울 삼성은 일방적으로 TG삼보에 농락당해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디펜딩챔피언’ KCC가 풍부한 식스맨을 활용한 다양한 수비전술과 체력 작전으로 전주 홈에서 2연승을 거두며 최후의 저항을 해봤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이제 전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명장이 됐다. TG삼보의 ‘트리오’ 신기성-김주성-양경민은 이상민-추승균-조성원으로 이어지는 국내 최고의 라인업 KCC를 넘어서 국내 최강임을 당당히 입증했다.

‘신산’을 넘어선 ‘영민한 곰’
감독 데뷔 첫해 우승, 이듬해 준우승, 그리고 다시 우승…. 3년차 감독 전창진의 이력은 화려하다. 역대 프로농구에서도 2차례 이상 정상을 밟은 사령탑은 최인선 감독(2회)과 신선우 감독(3회) 뿐이다. 더구나 수읽기의 귀재로 불리는 신 감독을 넘어서 얻은 우승이라 더욱 값지다.

사실 지도자로서 그의 ‘성공시대’를 예감한 이는 거의 없었다. 부상으로 1년만에 실업농구 코트를 떠났던 전 감독은 지도자가 아닌 삼성 농구단 주무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선수단의 궂은 일을 도맡은 전 감독은 98~99시즌 삼성코치를 거쳐 TG삼보 사령탑에 오르면서 서서히 농구인생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02~03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뒤 정상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는 정규리그 3위 이하 팀의 챔피언 등극으로는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감독 첫해는 멋모르고 덤볐다가 운 좋게 우승했다. 지난 해에는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지략에서 완패했다”던 전 감독의 얼굴에는 치열한 승부사의 표정이 읽혔다.

4라운드 중반에는 항간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잘 나가던’ 처드니 그레이를 내보내고 아비 스토리를 전격 영입하는 모험수를 띄웠다. 그레이의 교체에 납득하지 못했던 팬들은 TG삼보가 시즌 첫 3연패를 당하자 “우승 욕심에 ‘조강지처’까지 버렸다”고 반발했다.

TG삼보 선수들이 전창진 감독을 헹가레 치고 있다. <연합>

그러나 스토리가 플레이오프 들어 제 자리를 찾자 전 감독의 예상대로 TG삼보의 높이는 더욱 위력적으로 변했다. ‘스토리 카드’는 결국 통합 챔피언으로 가는 활력소가 됐다.

‘세계적 주무’로 불릴 만큼 사람을 끄는 힘은 그를 ‘덕장’으로 만들었다. 3차전에서의 25점차 대역전패 충격 탓에 4차전에서도 무기력하게 무너지자 전 감독은 선수들을 라카룸에 모아놓고 “정말 꼴같지 않아서 못 봐주겠다”고 막말까지 섞어가며 심하게 호允틈?

하지만 鉗교??달랐다. 전 감독은 선수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허물 없이 흉중을 털어놓던 선수단은 위기를 발판 삼아 새로이 단합하는 계기가 됐고, 5차전에선 다시 예전의 위용을 되찾아 마침내 챔피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감독 첫해에는 염치불구하고 다른 감독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아 일궈낸 챔피언은 진정한 챔피언이 아니다”는 전 감독. 뚝심에 연륜까지 더한 전 감독의 농구가 향기를 발하고 있다.

우승의 원동력은 ‘끈끈한 팀워크’
TG삼보에는 3명의 MVP가 있다. 정규리그 MVP 신기성, 플레이오프 MVP 김주성, 그리고 전창진 TG삼보 감독이 늘 “내 마음속의 MVP”라고 말하는 양경민이다.

이들은 모두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지만 결코 튀는 법이 없다. 서로 개인플레이를 자제하면서 이기는 농구를 위해 팀플레이에 치중한다. 김주성이 “우리는 항상 뭉쳐 있고 힘든 순간에도 결코 흩어지지 않는다”며 유독 ‘팀워크’를 강조하는 이유다.

신기성은 백업가드의 부족으로 힘들 것을 알면서도 용병 그레이의 교체를 받아들였다. 결국 4강전을 치른 뒤 심한 몸살로 병원을 들락거렸던 신기성은 챔프전에 상대팀의 집중 견제를 받은 끝에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탈진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가드가 부족한 팀 사정상 신기성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발씩 더 움직이며 보이지 않게 부담을 덜어준 팀 동료의 도움 속에 신기성은 묵묵히 끝까지 코트를 지켰고,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다.

자밀 왓킨스와 함께 TG삼보의 골밑을 굳건히 지켜낸 김주성은 TG삼보 공수의 핵이다. 프로 데뷔 후 3년 동안 신인상, 정규리그 MVP, 플레이오프 MVP를 싹쓸이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수상 뒤에도 “원래 (양)경민이 형이 MVP를 받았어야 하는데…. 자기 몸이 아플 때도 내 부상부터 걱정할 정도”라며 자기를 낮출 줄 알았다.

신기성과 김주성이 ‘MVP 듀오’라면 양경민은 ‘숨은 보배’다. 특출난 슈팅능력과 탁월한 수비실력에도 언제나 스포트라이트에선 한발짝 물러서 있다. 스스로도 “나는 슈터가 아니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많이 움직여주는 것이 내 몫이다”라며 후배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어찌나 사이가 각별한지 용병들도 TG삼보의 팀워크에 혀를 내두른다. 왓킨스는 “TG삼보는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지금까지 내가 겪은 팀 중 가장 훌륭한 팀”이라고 추켜세웠고, 그 동안 SK, KTF, 삼성 등에서 국내 농구를 겪었던 스토리도 “다른 팀에서는 내가 많은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는 본인 임무가 정해져 있다. 모든 선수들이 같이 열심히 했기에 더욱 의미있는 챔피언이 됐다”고 말했다.

주연만큼 빛난 조연들
TG삼보의 우승 드라마엔 주연 못지않게 빛난 30대 조연들이 있었다. 벤치워머 강기중과 신종석, 주장 정경호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부터 낯선 백업 포인트가드 강기중은 플레이오프 MVP 투표에서 무려 3표나 받은 깜짝 스타다. “다들 KCC만 식스맨이 풍부하다고 하는 데 우리 팀도 좋은 선수가 많다. 베스트5가 워낙 잘해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항변한 강기중은 6차전에서 18분간 12점 7어시스트 2리바운드, 5차전 14분간 9점 1어시스트 2리바운드의 눈부신 활약으로 이를 증명했다.

02~03시즌 신기에 가까운 3점포로 팀의 첫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신종석은 역시 ‘영원한 식스맨’ 다웠다. 노련미까지 더해 수비에서도 빛을 발한 신종석은 한박자 빠른 골밑 돌파로 KCC 진영을 휘저어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강기중과 신종석이 코트 위의 조연이라면 정경호는 벤치의 조감독이다. 허재의 은퇴 후 팀 최고참이 된 그는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6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초도 코트에 나서지 않았지만 감독과 선수를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로 주전 못지 않은 역할을 했다. 우승과 함께 현역 선수에서 은퇴하게 된 정경호는 TG삼보의 배려로 지도자로서 농구와의 인연을 계속 쌓아갈 예정이다.

오미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4-28 16:03


오미현 기자 mhoh@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