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이승엽·최희섭·서재응 등 미·일서 순조로운 스타트구대성 무실점 행진하며 메이저리그에 안착, 김병현 부진 안타까워

재무장 해외파…"다시 쏜다"
박찬호·이승엽·최희섭·서재응 등 미·일서 순조로운 스타트
구대성 무실점 행진하며 메이저리그에 안착, 김병현 부진 안타까워


“나도 잘하고 싶다. 지난 3년보다는 훨씬 잘하고 싶다”

지난달 2일 해외파의 맏형격인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앞두고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인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실 박찬호의 이 말은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들의 한결 같은 맘이었다.

모든 해외파들이 지난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저조한 성적으로 구단과 팬, 여론의 ‘눈치밥’을 먹은 적이 없다. 특히 6,500만달러의 잭팟을 터뜨리고도 지난 3년간 14승밖에 올리지 못한 박찬호는 올 시즌에도 성적을 못 낼 경우 ‘방출’이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슬러거로 확실한 입지를 굳히는 가 싶던 최희섭도 LA다저스로 이적 후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한 채 포스트시즌 진출여부가 걸린 하반기에는 벤치워머 신세로 전락했다. ‘핵잠수함’의 칭송을 받던 김병현은 재작년 광적인 보스턴 팬을 향한 ‘가운데 손가락’사건에 이어 부상의 여파로 지난 1년간 거의 ‘왕따’ 신세나 다름없었다.

박찬호의 뒤를 이어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할 것 같던 서재응(뉴욕 메츠)마저 지난해 패전이 승수보다 두배나 될 만큼 부진했다. 미들맨으로 자리를 굳히던 봉중근(신시내티 레즈) 역시 왼쪽 어깨부상으로 시즌 하반기 좌초했고 김선우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메이저리그행 기회를 갖지 못했다. 국내에서 ‘국민타자’로 추앙 받던 이승엽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후보선수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자존심’마저 상할 정도였다.

박찬호 눈부신 피칭, 통산 100승 눈앞에
시즌 개막후 한달여가 지난 지금 벼랑 끝에 선 해외파들의 심기일전과 와신상담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박찬호는 올시즌 ‘투심패스트볼(직구처럼 오다가 좌우로 꺾여 떨어지는 변화구)’을 주무기로 들고 나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눈부신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박찬호는 올시즌 4경기에 나서 3차례의 퀄리티(Quality) 피칭을 선보였다. 퀄리티 피칭은 6이닝 이상을 3실점 이내에서 막는 것으로 선발투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박찬호는 모두 4게임에 등판, 23.1이닝동안 홈런 2개 포함, 20안타, 사사구 14개를 내주고 11실점으로 방어율은 4.24이며 시즌 2승1패를 기록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시즌 첫 경기는 불펜투수의 난조로 다 잡았다 놓친 승리여서 안타깝기만 하다.

성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홈런공장 공장장’, ‘초반 부진’, ‘볼넷 남발’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징크스들을 깨뜨리고 블라디미르 게레로(LA에인절스) 등 자신의 천적들을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16경기에 등판, 4승7패를 기록했던 지난해를 보면 홈런을 허용하고 이긴 경우는 4승 가운데 타선폭발의 도움을 받았던 5월13일 탬파베이전 한 경기밖에 없다.

홈런허용여부가 곧 그날의 승패와 직결됐던 것. 그는 홈런 허용 이후에는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는 약점이 드러냈고 그래서 더욱 벅 쇼월터감독의 불신을 받았다. 한마디로 멘탈, 즉 심리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던 그가 올 시즌 천적 LA에인절스전(4월14일)에서 이 징크스마저 깨뜨렸다. 벅 쇼월터 텍사스 감독이 에인절스전에서 3회 솔로홈런을 허용하고도 흔들리지 않은 점을 칭찬할 정도였으니 ‘더욱 강해진’ 박찬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박찬호는 올해 중요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94년 메이저리그 데뷔이후 12년만에 통산 100승을 바라보고 있는 것. 현재 96승 73패를 기록중인 박찬호는 현재 구위라면 상반기 중으로 메이저리그 현역선수로는 약 40번째로 대망의 100승 투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감 되찾은 최희섭, 서재응도 제구력 살아나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 최희섭의 초반 스타트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그는 올시즌 3경기 13타석만에 처음으로 마수걸이 안타를 기록하는 슬럼프에 빠졌고 첫 안타이후에도 방망이질은 미덥지 못했다. 특히 짐 트레이시감독의 플래툰시스템 전략으로 좌완투수 선발시 후보로 기용되면서 방망이 감각을 되찾기 어려운 게 사실. 하지만 지난 2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솔로홈런 포함, 5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감각을 완전히 되찾아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시즌 개막과 함께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던 서재응(뉴욕 메츠) 역시 지난 24일 워싱턴 내셔널즈를 상대로 깜짝 선발승을 따내며 뒤늦은 복귀의 한을 풀었다. 선발요원인 이시?가즈히사의 부상으로 이날 급하게 선발로 등판한 서재응은 칼 같은 제구력을 선보이며 6이닝 6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는 불꽃피칭으로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얻었다. 이시이의 부상으로 한 차례 더 선발등판이 가능해 이 결과에 따라 ‘붙박이 선발’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같은 팀의 구대성 역시 6경기 무실점 행진을 기록하는 등 불펜투수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잇딴 낭보를 보내오고 있고 반면 김병현의 계속된 부진은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시범경기도중 보스턴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한 김병현은 불 같은 광속구와 현란한 변화구를 선보이지 못한 채 불펜투수로서 시즌 3패를 안아 마이너리그행이 가시화하고 있는 실정. 보스턴 시절 입은 부상 이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한 채 구속도 떨어지고 제구도 안되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그가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절치부심' 이승엽, 명예회복 자신감
지난해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야구 수준을 보여준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망을 안겨준 이승엽(롯데 마린스)는 완전히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상승세를 보여 위안. 일본 스포츠전문지들은 지난해 이승엽의 이름앞에 ‘아시아의 대포’라는 닉네임을 붙였지만 사실 비아냥의 느낌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손가락 부상으로 시범경기 ‘5푼’이라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즌 개막부터 2군으로 떨어져 ‘삭발결의’를 했던 이승엽은 4월 중순 복귀 이후 맹타를 거듭하며 지난 시즌 초반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승엽은 28일 현재 19경기에 출장, 64타석 19안타 타율 2할5푼에 홈런 4개를 터뜨리며 규정타석 미달에도 불구, 팀내 홈런 공동 1위를 기록하는 등 완전히 적응한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무안타 경기가 이어지면서 2할대 타율로 떨어져 다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을 전망.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하겠다”며 국민타자라는 허울을 벗어 던진 그의 마음가짐으로 볼 때 슬럼프 탈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롯데 순회코치로 이승엽을 지도하고 있는 김성근 전 감독도 “일본투수들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입력시간 : 2005-05-03 20:01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