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의 늪에서 헤매는 박세리, 정신적 안정 찾는게 급선무

요술공주 세리여, 승리의 키스를 다시 한 번!
부진의 늪에서 헤매는 박세리, 정신적 안정 찾는게 급선무

‘부활하라, 골프여왕 박세리.’

한국여자골프의 간판이자 세계 톱스타인 박세리(28ㆍCJ)가 작아지고 있다.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1998년ㆍ20년9개월7일), 메이저대회 최연소 4승(2002년ㆍ24년8개월11일), 역대 LPGA투어 20승 고지를 돌파한 3번째 어린선수(2003년ㆍ25년6개월30일) 등 한창 잘나가던 박세리의 모습은 요즘 찾아볼 수가 없다.

요술공주 세리의 ‘골프 신통력’이 작동을 멈춘 것이다. 그것도 1년이 넘었다. 원인 모를 고장에 본인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박세리는 아마추어시절 국내 무대 성적은 차치하고라도 세계골프의 최고 무대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낸 선수 중의 한명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신음 중에 있다.

박세리는 98년 LPGA투어 데뷔 첫해 메이저대회 2승 등 4승을 거두는 일대 사건을 일으켰다. 루키시즌 4승은 LPGA투어 역사상 78년 낸시 로페즈의 9승에 이어 2위의 기록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박세리를 두고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박세리는 이듬해에도 4승을 거두는 파죽지세로 2년동안 무려 8승을 올렸다.

2000년에는 무관에 그치며 처음으로 슬럼프를 맞았다. 운동선수들에게 흔히 있다는 2년차 징크스가 박세리에게는 3년차 징크스로 나타난 셈이다. 박세리는 당시 “미국에 간지 처음 1~2년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자신을 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달랐다. 견딜 수 없이 외로웠고 우승을 하지 못할 만큼 성적도 좋지 못해 매일밤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박세리는 2001년과 2002년에 다시 각각 5승씩 10개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2003년에도 3승을 보탰다. 박세리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않는 LPGA무대였다.

2004년 5월 이후 내리막길 계속
박세리는 2004년 5월 열린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얻었다. 7년새 LPGA투어에서만 메이저대회 4승을 포함해 통산 22승째. 그러나 이후부터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해 올해까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하게 부진이라는 말 보다는 ‘망가진 박세리’라는 표현이 맞다. 박세리는 지난해 우승을 차지했던 미켈롭울트라오픈에 이어 열린 사이베이스클래식과 켈로그 케블러클래식에서 연속 컷 탈락했다. 박세리는 부진이 계속되자 9월초부터 한달 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나 10월 휴식을 마치고 복귀한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박세리는 더욱 참담한 좌절을 곱씹어야했다. 3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치는 등 최종 합계 15오버파 303타로 출전선수 20명중에 꼴찌를 했다. 그것도 우승자인 아니카 소렌스탐과는 33타차, 심지어 19위(로라 데이비스)에게도 15타나 뒤진 최악의 스코어를 냈다.

부진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박세리는 지난 2일 끝난 프랭클린아메리칸모기지론챔피언십까지 올시즌 4개 대회에 출전,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거둔 공동 27위가 최고 성적이다. 그것도 1차례는 경기도중 기권했고, 또 한번은 컷 탈락했다. 특히 컷 탈락했던 프랭클린아메리칸모기지론챔피언십에서는 첫날 9오버파 81타의 아마추어 스코어를 내기도 했다.

박세리는 4개 대회 11라운드 동안 한번도 60대 타수에 진입하지 못한 가운데 평균타수 74.18타를 기록했다. 지난 7년 동안의 평균타수인 70.65를 크게 웃도는 기록이다. 박세리가 각각 5승씩을 거뒀던 2001년과 2002년에는 평균타수가 69타대를 기록했었다.

평균타수의 저조는 샷 내용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260야드에 달하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올해는 20야드가 줄어든 242야드로 짧아졌다. 또 평균 70%를 육박하던 드라이버샷의 페어웨이 안착률도 지난해 60%로 낮아진데 이어 올해는 49%에 불과하다. 드라이버 비거리와 방향성 모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아이언샷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언샷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그린 적중률도 2003년까지만해도 평균 71%대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68.3%로 떨어졌고, 올해는 57%에 머물고 있다. 퍼트도 지난해와 올해 홀당 평균 2퍼트에 가까운 32개 정도의 穉「?보이고 있다. 샷의 3박자가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박세리가 자가 진단하는 부진원인은 골프 집착증
박세리에게 특별한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되는 부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세리가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혀 관심을 끌었다. 박세리는 지난해 우승을 차지했던 미켈롭울트라오픈 개막 하루 전인 5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는 지금 골프 외의 즐거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지난 7년간 외국에 나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머리 속엔 온통 골프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많았고, 실수 하나하나가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골프에 지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골프가 아닌 다른 즐거움을 찾고 싶다”고 털어 놓았다.

망가진 샷이 단순히 스윙 결함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이 더욱 크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박세리의 경우 13살때부터 그동안 ‘골프기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과 함께 골프에만 몰두해왔다. 그러면서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까지 따내면서 본인도 모르는 목표상실의 슬럼프가 왔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세리가 첫 슬럼프를 겪었던 2000년 당시의 외로움과 성적의 관계에 견주어 보면 수긍이가는 대목이다. 박세리는 2003년까지만해도 최종목표가 이름석자가 영원히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명예의 전당 입회’라고 공공연히 말했었다. 그 최종목표를 지난해 마침내 달성했으니 앞으로 도달할 목표가 없어진 셈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한국 선수들이 경쟁적으로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LPGA투어가 ‘한국판’이 된 것도 박세리에게는 부담인 동시에 예전 같은 동기 부여를 주지 못하는 요인으로 한몫 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세리가 처음 LPGA투어에 진출했던 98년에는 한국인은 펄신과 단 2명이었다. 그러나 그 수는 매년 늘어 2004년에는 풀시드권을 가진 선수만 16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24명으로 급증했다. 매 대회마다 출전선수 5명 꼴 가운데 1명이 한국선수라는 뜻이다. 여기에 컨디셔널시드권자와 2부투어 선수까지 합치면 40명이 넘는다. 박세리 입장에서 볼 때 이제는 예전과 달리 잘해야 본전인 상황이다.

메인스폰서인 CJ측으로부터 2007년까지 5연간 매년 30억원씩 받는 박세리로서는 이에 걸맞는 몸값을 해야한다는 심리적인 부담도 떨칠 수 없는 입장이다.

박세리 자신이 뒤늦게 느꼈듯이 ‘우승만을 쫓아 가는 골프’에서 조금 더 편안해진다면 언제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샷 기록만 놓고 분석해 보면 스윙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전의 스윙감각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박세리에게는 새로운 목표 설정과 함께 공허함을 메울 뭔가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연애나 결혼도 한 방법일 수가 있다. 박세리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스포츠한국 정동철 기자


입력시간 : 2005-05-12 17:21


스포츠한국 정동철 기자 ball@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