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하늘로 쏘아올린 부활포타격자세·자신감 회복, 5게임 연속 아치 그리며 완벽 회생
방망이 달구는 이승엽 5월의 하늘로 쏘아올린 부활포 타격자세·자신감 회복, 5게임 연속 아치 그리며 완벽 회생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의 영남대 야구장. 한 무리의 사내들이 허연 입김을 쏟아내며 간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야, 여기 비었다. 빨리 패스해.” 노란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인 한 남자의 목소리가 유독 크고 우렁찼다. 일본 프로야구 롯데 마린스의 이승엽. 경기가 끝나고 흠뻑 땀에 젖은 웃옷을 벗으며 기자에게 던진 첫마디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오셨어요.” 그리고 내뱉은 한숨이 태풍처럼 기자의 귀를 덮쳤다. 일본 진출 첫해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하며 타율 2할4푼, 14홈런에 그친 그에게 ‘국민 타자’의 당당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거듭 인터뷰를 사절하다 마지못해 몇 마디 툭툭 던지던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이런 꼴로 팬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내년 시즌에 좋은 성적 내면 확실히 인터뷰 해드릴게요.” 그렇게 5개월이 지난 2005년 5월. 잔뜩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그의 얼굴에 5월의 햇살만큼이나 밝은 웃음이 돌아왔다. 일본 프로야구 개막 초 홈런포를 가동하며 서서히 방망이를 달군 이승엽은 최근 5게임 연속 아치를 그려내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5월 26일까지 이승엽은 35경기에 나와 124타수 39안타를 때려내며 타율 3할1푼5리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매특허’인 홈런은 10개로 팀 1위에 올라있다.
장점 살려준 '김성근의 힘'이 큰 몫 그러던 이승엽이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팀에 새로 영입 된 김성근 인스트럭터의 차분한 지도였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기존에 이승엽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되살려주는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이승엽은 엉망으로 흐트러졌던 타격 밸런스를 찾았고 전성기 시절 보여줬던 특유의 물 흐르는듯한 부드러운 백 스윙도 함께 되찾았다. 이승엽은 “지난해에는 부진을 만회하려다 보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스윙 폼이 커져 덩달아 상체도 앞으로 쏠려 타격 자세가 엉망이 됐다”며 “이제 욕심 없이 힘을 빼고 편안하게 치니 자연스레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5경기 연속홈런을 때린 5월 22일에도 “힘주는 버릇을 없애니 더욱 좋아졌다”며 자신의 최근 상승세의 원인을 심리적 요인에서 찾았다. 김성근 롯데 인스트럭터도 “그 동안 이승엽의 스윙에 대해 고쳐줄 것이 많았는데 솔직히 이제는 더 이상 말해 줄 게 없다”며 만족했다. 이승엽의 안정된 타격 자세에 바비 밸런타인 롯데 감독도 한껏 고무되기는 마찬가지다. 밸런타인 감독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승엽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좋은 선수다. 하지만 좋은 스윙에 비해 타이밍이 늦다”고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었다. 현지 일본 기자들 역시 “이승엽은 아시아 홈런왕에 오를 만큼 좋은 스윙을 가졌다. 지난해에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올해는 서서히 전성기 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기대치를 높였다. 피나는 훈련도 최근 불방망이의 원동력으로 빼놓을 수 없다. 혹독한 일본 신고식을 치르고 한국에 돌아온 이승엽?겨울내내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오후에는 영남대와 경북고를 오가며 후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기본기를 다시 익혔다. 컨디션 난조로 2군에서 개막전을 지켜봐야 했을 때도 이승엽은 훈련을 계속했다. 하루 1,000개 이상의 배팅 훈련을 거르지 않았고, 1군에 올라와서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통역 이동훈씨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구단 연습장을 밤늦도록 환히 밝혔다고 한다.
이승엽을 반쪽 선수로 전락시킨다며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플래툰 시스템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플래툰 시스템이란 상대 투수가 어떤 선수가 나오느냐에 따라 타자의 출장이 결정되는 방식. 이에 따라 이승엽은 상대 팀 선발로 좌완 투수가 나오면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최희섭도 같은 케이스다. 만루홈런을 날리며 맹타를 휘두른 최희섭이 다음날 왼손 투수가 나오면 가차없이 선발에서 제외되듯 이승엽도 예외가 없다. 이는 밸런타인 감독이 신봉하는 데이터 야구의 결과다. 팀 운용에는 좋을 수 있지만 선수 개인으로서는 드문드문 경기에 나서다 보니 타격 감각을 유지하거나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김성근 롯데 인스트럭터는 다르다. 그는 “이승엽이 우완, 좌완을 모두 상대하며 타격 자세를 무너뜨리느니 오른손 투수 때만 선발로 출장하면서 집중력과 긴장감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이승엽 자신은 “선수 기용은 전적으로 감독 마음이다”며 “나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며 플래툰 시스템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눈치다.
외야수로 변신, 감독 신뢰가 숙제 현재까지는 일단 합격점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플라이볼의 낙하 지점을 읽는 센스가 뛰어나고 볼 송구 능력도 떨어지지 않는다. 김성근 인스트럭터는 “좌익수로 평균은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정도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재능 있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기자들 역시 “이승엽이 좌익수로서 실책하는 것을 한번도 본적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밸런타인 감독의 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전폭적인 신뢰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밸런타인 감독은 5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8회말 승리가 거의 확정되자 곧바로 이승엽을 뺀 뒤 그 자리에 수비가 강한 오오츠카를 집어 넣었다. 좌익수로서 큰 실책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빼어나게 잘 한 것도 없다는 것이 밸런타인 감독의 분석. 따라서 든든한 수비로 감독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것도 이승엽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입력시간 : 2005-06-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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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 기자 kev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