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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되돌리기] 리컨스트럭션
코펜하겐에서 사랑의 길을 잃다



90년대 중반쯤, 정말 무서운 공포영화라고 입소문이 난 영화를 대학교 강당에서 관람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미 유명인사가 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초기작 '킹덤'이었다. 영화는 덴마크 국립병원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심령사진처럼 흐릿한 영상과 북유럽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기운 때문에 여느 공포영화보다 오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 내내 가장 낯선 것은 난생 처음 듣는 덴마크어였다. 해독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불안감과 상상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한 막연함(덴마크란 나라는 고작 상상해봐야 안데르센 동화의 나라라는 얄팍한 이미지밖에 없으니)이 아마도 필자가 느낀 공포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 보게 된 또 다른 덴마크 영화 '리컨스트럭션'에서 덴마크는 더욱 신비롭고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중저음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 코펜하겐의 예스러운 거리 골목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지하철 역사(驛舍). 여기서부터 코펜하겐은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진입한다. 사랑에 대한 난이도 높은 이해가 요구되는 영화 '리컨스트럭션'에는 바로 미래형의 지능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덴마크의 현재가 있다.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복잡한 재구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줄거리는 간단하다. 애인이 있는 사진작가 알렉스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아메라는 여인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아메의 뒤를 ?는 알렉스는 그날 밤 그녀의 호텔방에서 사랑을 나눈다.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한 아메. 그녀는 소설가 남편을 따라 덴마크로 여행을 온 차였고 남편과의 관계에 이미 심드렁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일상이 권태로운 두 남녀에게 찾아온 열정은 위험한 쾌락이었다. 알렉스는 다정한 옛 애인을 버린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녀와 몸을 섞은 다음 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의 집은 이미 온데 간데 없고 옛 애인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조차 그를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고 했던가. 하지만 알렉스가 느낀 낯설음은 일종의 버림받음이다. 사랑은 때론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둘 만의 외로운 축제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축제의 흥분이 가시면 둘 사이에는 씁쓸한 공허만이 남을 뿐이다.

열정과 허무가 교차되는 사랑놀음의 무대 코펜하겐. 이곳은 영화 속에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예술적인 계획도시로 등장한다. 현재 '크로스로드 프로젝트(문화, 미디어, 통신기술을 결합한 도시)'를 진행시키고 있는 코펜하겐은 개인과 기업이 디지털로 네트워크화 되는 미래형 도시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덴마크의 이러한 비전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는 지하철 역사의 모습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운전사 없이 디지털로 운행되는 이 곳 전동차는 배차간격 90초에 24시간 운행을 한다고 한다. 또한 전동차와 역사 내부의 디자인을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 쥬지아로가 했을 정도로 예술성이 뛰어나 대중교통의 미래상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데 이런 덴마크의 건축기술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서울시에서 인공섬 위에 대규모로 지은 코펜하겐의 오페라 하우스를 벤치마킹해 노들섬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완공된 덴마크식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선 급한 대로 영화 '리큰스트럭션'을 통해서 예술과 건축기술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는 덴마크 건축미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5-07-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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