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날 명승부패기 앞세운 고교야구의 진수, 숨막히는 접전과 역전승부로 야구팬 열광

제 3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개막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날 명승부
패기 앞세운 고교야구의 진수, 숨막히는 접전과 역전승부로 야구팬 열광


일본에서는 매년 이맘때면 고교야구열기로 들썩인다. 국내 야구팬들에게 고시엔(甲子園)대회로 더 잘 알려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전국 4,000여 개의 고교 팀 중 지역예선을 거쳐 본선 진출권을 따낸 50개 팀이 참가, 고교야구의 왕중 왕을 가리는 대회로 전경기가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때만큼은 일본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도 고교야구에 밀린다.

‘각본없는 드라마’ 봉황대기 28일 개막
일본의 고시엔 대회에 비견되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7월28일부터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오전 10시 세광고-배재고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8월13일까지 17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올해로 35회를 맞는 봉황대기는 서울에서 열리는 고교야구대회 중 유일하게 지역예선 없이 전국의 57개 학교가 참가해 명실상부한 고교야구의 제왕을 가리는 국내 고교야구 최고의 대회다.

봉황대기의 역사는 명승부의 역사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고교야구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매 대회 봉황대기는 고교야구 특유의 짜릿함과 패기를 앞세워 숨막히는 접전과 역전 승부로 야구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왔다. 그래서 매해 이맘때쯤 동대문구장은 서로 어깨 걸고 모교의 교가를 목청껏 부르는 동문들과 야구팬들로 한바탕 걸진 잔치판이 벌어진다. 올 여름, 미완의 대기들이 펼치는 이변과 파란의 드라마로 뜨겁게 달궈질 고교야구의 메카 동대문구장에 가 보자. 거친 함성을 찾아서 아련한 추억을 찾아서.

초록봉황은 누구 품에
봉황대기는 여느 대회와 달리 지역 예선이 없다. 따라서 어느 팀이나 봉황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봉황은 아무 팀에게나 그 영광을 주지는 않는다.

우승 후보로는 지난해 우승팀 동성고와 2위 팀 광주일고를 비롯해 인천고 부산고 동산고 대구고 북일고 진흥고 상원고 유신고 덕수정보고 성남서고 신일고 군산상고 경기고가 꼽힌다.

디펜딩 챔피언 동성고는 초고교급 괴물투수 한기주를 앞세워 4월 대통령배 야구대회 정상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기아에 지명된 한기주와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수투수상을 받은 양현종이 마운드를 이끌고 박성남 최주환 노진혁 등이 주도하는 타선의 폭발력도 위력적이다.

지난해 동성고에 결승전에서 아깝게 무릎을 꿇은 광주일고는 6월 황금사자기 대회 패권을 거머쥐며 정상 재도전에 나선다.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상(MVP)를 받은 걸출한 투수 나승현이 선봉에 선다. 또한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수훈상과 타격상을 싹쓸이한 좌익수 김강, 최다 안타상(10안타)의 김성현, 최다 타점상(7타점)의 강정호가 중심 타선이다.

6월 청룡기를 움켜 쥔 동산고도 초록 봉황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청룡기 MVP를 받은 투수 현천웅과 우수투수 류현진이 짠물 투구로 마운드를 지키고 포수 최승준이 방망이를 책임진다. 이 대회에서 홈런 3개를 터트리며 홈런왕에 오르며 차세대 거포로 우뚝 선 최승준은 최다 안타상(9개) 타점상(11타점) 타격상(5할2푼9리) 등 공격 부문 4관왕에 등극했다.

이 밖에 인천고는 4월 열린 야구100주년 기념 최우수고교야구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천안 북일과 상원고는 각각 지역 대회인 무등기와 대붕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신일고와 군산상고 덕수정보고 부산고 등도 언제라도 우승을 꿈꿀 수 있는 전력을 갖춘 강팀이다.

봉황을 빛낼 예비 스타들
봉황대기는 미래의 한국야구를 이끌고 나갈 유망주들의 경연장이다. 대회 내내 동대문구장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재목을 고르려는 프로 스카우트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펼쳐진다.

올해는 투수들이 풍년이다. 계약금 10억원에 기아 유니폼을 입을 동성고 투수 한기주가 가장 눈에 띈다. 186cm 92kg의 우완 정통파 한기주는 최고 구속이 152km에 육박할 정도의 광속구를 무기로 가진 괴물 투수다. 타자를 압도하는 빠른 볼과 함께 경기 운영능력도 뛰어나다. 프로야구 두산에 지명된 투수 남윤희(신일고)는 구대성(뉴욕 메츠)을 이을 차세대 ‘왼손 특급’이다. 좌완으로는 드물게 직구 구속이 140km를 넘는데다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송곳 제구력까지 겸비했다. 광주일고 투수 나승현도 140km대 묵직한 직구와 예리한 변화구로 프로구단 관계자들에게 무력시위를 할 각오다.

왕년의 프로야구 거포 유승안 전 한화 감독의 아들 유원상(북일고)도 대어급 투수다. 한화에 입단할 유원상은 187cm 90kg의 체격에 최고구속 148km의 패스트볼과 낙?큰 커브가 일품이다. 지난해 대통령배 야구대회 MVP를 수상한 인천고 에이스 김성훈은 최근 슬럼프에 빠져있긴 하지만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관심 대상 명단 맨 윗 줄에 자리잡고 있다. 왼손 투수 차우찬(군산상고ㆍ최고 구속 140km) 류현진(동산고ㆍ최고 구속 145km)도 봉황대기 무대에서 대형 사고를 칠 준비가 돼 있다.

타자 중에도 대형 선수로 성장할 재목들이 즐비하다. SK에 지명된 인천고 포수 이재원은 파워 히터로서 박경완의 뒤를 이을 차세대 거포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고 유격수 손용석은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롯데에 지명된 상태다. 덕수정보고의 민병헌은 발빠른 기교 타자로 야구센스가 뛰어나며 왼손잡이 민병헌은 전형적인 슬러거의 자질을 갖췄다.

광주일고 2학년생 김강은 정교한 타격감각을 뽐내며 올 황금사자기 대회 타격왕에 올랐다. 프로야구 롯데 출신 유두열 성수의 아들인 유재신(북일고 유격수)은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정확한 타격감각을 뽐낸다. 또한 광주진흥고의 양의지(포수), 휘문고 유재의(2루수), 제물포고 윤영윤(유격수)도 봉황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방망이를 곧추 세우고 있다.

봉황이 낳은 진기록들
올해로 35회를 맞는 봉황대기는 그 동안 각종 진기록을 쏟아내며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초 고교급 스타들이 만들어 낸 값진 기록들은 아마야구의 눈부신 성장을 일궈내는 든든한 뿌리가 됐다.

투수 부문 진기록은 1971년 2회 대회에서 시작된다. 마산고 투수 강정일이 광주 숭의실고를 상대로 볼넷 3개만 허용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칭으로 대회 첫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80년 10회 대회에서 광주일고 에이스 선동열이 경기고를 상대로 1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노히트 노런 대기록을 작성했다.

박동희의 ‘방어율 0’도 봉황대기를 빛낸 눈부신 기록이다. 15회 대회에서 부산고 박동희는 140km대의 광속구를 뿌리며 5게임에 등판, 34이닝 동안 10안타(탈삼진12개)만을 허용하는 위력적인 피칭으로 아마야구 사상 초유의 방어율 0을 세웠다.

‘싸움닭’ 조계현은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의 주인공. 12회 대회 때 군산상고 2년생 조계현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앞세워 8강전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삼진을 무려 18개나 뽑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타자쪽에서는 이종두의 기록이 돋보인다. 10회 대회에서 대구상고 이종두는 세광고와의 경기에서 고교야구 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했다. 89년 19회 대회 때는 휘문고 강타자 박정혁이 당시 공주고 1학년생이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상대로 3,6,8회 홈런을 뽑아냈다. 기세가 오른 박정혁은 다음날 진흥과의 경기에서도 첫 타석에서 아치를 그려내며 고교야구 첫 4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렸다.


김일환 기자


입력시간 : 2005-07-29 16:07


김일환 기자 kev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