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그 빛좋은 개살구

[영화 되돌리기] 나를 책임져, 알피
싱글, 그 빛좋은 개살구

두 해 전에 독일에서 독신자들을 위한 벽지를 제작, 판매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품은 간단하다. 벽지에 실물 크기의 이성이 그려져 있어 상상의 애인으로 여기며 살라는 것.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http://www.single-tapete.de) 첫 페이지에 이 제품의 장점이 실려 있다. 동거인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이나 싱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처럼 이미 외국에서는 외로운 독신자들을 위한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가 많아지고 있다. 독신자의 삶을 이성의 결핍이 아니라 당당한 홀로서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이들은 그 옛날 구박덩어리 노처녀 노총각이 아니라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도전적으로 인생을 즐기는 쿨한 싱글족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연애의 목적이 아니라 연애가 도달하는 해피엔딩의 하나일 뿐이다. 섹스 앤드 시티의 캐리가 ‘나는 나 자신과 결혼했다’고 외치며 이성과의 결혼에 콧방귀를 뀌듯이.

하지만 결혼제도를 하찮게 여기는 남자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자의식이 강한 독신남이라면 괜찮지만 간혹 지독한 바람둥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에 나오는 쥬드로처럼 매력적인 남자라면 더욱 주의요망이다. (‘어바웃어 보이’의 철없는 독신남, 결혼 말고 연애만 하자는 ‘연애 목적남’ 도 블랙리스트다.)

영화 속에서 쥬드로는 기품있는 외모에 럭셔리한 구찌 수트를 입고 총 5명의 여자를 농락한다. 농염한 유부녀, 외모는 딸려도 편안한 미혼모, 화끈한 몸매를 가진 친구 애인, 방탕해서 놀기 편한 플레이 걸, 나이든 재력가. 이들이 리무진 운전사 알피의 마수에 걸려 든 안타까운 여인들이다. 쥬드 로가 연기한 주인공 알피는 필요에 따라 여자를 바꿔 사귀며 인생을 즐긴다. 그가 여자를 보는 기준은 FBB(Face, Breasts, Bum), 즉 얼굴, 가슴, 엉덩이일 뿐이다. 그녀들의 몸과 화끈한 보드카 한 병. 그가 인생에서 최고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자를 맘껏 선택하며 즐길 줄 알았던 알피도 뒤통수를 맞는다. 나이든 재력가에게는 더 젊은 남자가 들러붙었고 편안한 미혼모에게는 안정적이고 무난한 남자친구가 생겼다. 농염한 유부녀는 더욱 충실한 애인을 찾아 떠나고 친구 애인은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모두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알피는 알고 보면 모두에게 버림당하고 만다.

섹스에는 쿨하지만 관계 맺음에서는 비굴해지는 싱글남 알피. 그는 결국 모든 연애가 부질없음을 느끼고 완전한 혼자가 된다.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이쯤 되면 알피가 독일산 싱글용 벽지 구입도 한번쯤 고려해보는 것도 좋겠다. 관계 맺음에 서투른 것을 구속 없는 자유연애라 믿고 습관적 이별을 쿨하다고 오해하는 나르시시즘 강한 싱글들에게는 벽지 속 그림이 차라리 적당한 연애상대다. 기분마다 데이트 상대를 바꾸듯 방마다 원하는 상대를 바꿔 그려놓고 늘 그렇듯이 혼자 방백을 하면 그만일 테니까. 물론 간간이 밀려오는 허탈함과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애처로운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고달픔은 있다.

하지만 과연 외로운 싱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영화 제목처럼 모든 싱글들은 속으로 세상을 향해 ‘제발 나를 책임져’라고 소리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외침에 기꺼이 화답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외로운 싱글을 만날 때 까지. 아무래도 다른 한 켠에서 이 모든 아픔을 겪어낸 자만이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8-03 16:2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