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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젊은 피 '화합의 대결' 뜨겁다
제2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개막
1990년 통일축구 이후 15년 만에 남녘서 신명나는 한 판 축제




북한 축구대표님이 12년 만의 남북 A매치 대결로 기대를 모으는 2005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를 위해 7월 2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다. 북한 축구대표팀이 90년 남북통일축구 이후 다시 남녘 땅을 밟기까지 강산이 한번 바뀔만한 시간을 돌아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광복 60주년을 축하하듯 2005년 8월 남녘 땅에서 남북 축구경기가 세 차례나 열린다. 첫 무대는 지난달 31일 개막된 제2회 동아시아선수권대회다. 남자대표팀은 이달 4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여자대표팀은 같은 날 오후 5시15분 같은 장소에서 북한과 경기를 갖는다. 그리고 14일께 서울에서 8ㆍ15기념 남북통일축구로 신명나는 뒷풀이를 준비하고 있다.

남북 남자대표팀이 A매치를 펼치는 것은 지난 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한국 3-0승) 이후 12년 만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남녀 대표팀이 남북경기를 갖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90년 10월 평양에서 남녀대표팀이 남북통일축구에 함께 참가했지만 남자는 공식경기를 치른 반면 여자는 당시 북한의 실력이 월등해 합동훈련으로 대체했다. 남북 여자대표팀은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민족평화통일축전에서 마지막으로 맞붙어 북한이 4-0으로 이겼다.

북한 남녀 축구대표팀은 국내외 취재진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 지난달 26일 오전 11시10분 고려항공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에서 서해 직항로를 거쳐 인천공항을 통해 남녘 땅을 밟았다.

공항에 몰려든 100여명의 취재진 때문에 북한 선수단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숙소인 메이필드 호텔로 향하는 차량을 탄뒤 그제서야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네들의 모습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에스코트 차량과 경호 차량이 무려 11대나 따라 붙는 요란스런 행렬에 불편해 하던 시민들도 북한 선수단이라는 것을 알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열렬한 박수로 환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축구가 항상 남북 화합의 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북한축구는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충격받았다. 이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했다. 강제 스카우트로 인한 말썽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선수들을 모조리 이적시켰고 심지어 적령기의 미입대자 가운데 우수선수가 있으면 바로 입대케 했다. 감독 최정민, 골키퍼 이세연, 이회택 김호 김정남 김삼락 등 이른바 ‘양지’팀은 이렇게 탄생했다.

공포에서 화해의 장이 되기까지
한국 축구는 ‘양지’ 팀을 명실공히 국가대표팀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훈련으로 조련하며 심혈을 기울였지만 정작 남북 축구의 첫 만남은 성인대회가 아니라 태국 방콕의 제18회 아시아청소년대회(19세미만) 준결승에서 이뤄졌다.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 경기는 한국의 0-1 패배로 끝났다.

북한남자축구대표팀이 7월26일 서울상암월드컵 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연합>

결국 북한은 결승서 이란과 0-0으로 비겨 공동우승 했고, 한국은 태국을 누르고 3위를 했다. 당시는 현재 한일 대결 열기 이상으로 북한에 지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게 국내 분위기였다. 때문에 70~80년대 한수 위의 기량을 보이는 북한 축구는 한국에겐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런 두려움이 한국축구 사상 최대의 해프닝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이다.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북한과의 금메달 경쟁에서도 이겨야 하거니와 축구 맞대결에서는 더더욱 질 수 없었다.

한국은 예선 A조, 한웰?조에 편성되었? 한국이 태국을 1-0으로 이긴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을 2-0으로 이긴 뒤 이라크에 져 조 2위를 차지하자 비상이 걸렸다. 예선 마지막 경기 쿠웨이트전을 이겨서 조 1위를 차지하면 2차리그에서 북한과 한 조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한국 선수단은 북한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로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어처구니 없는 선택에 이르렀다. 쿠웨이트에 고의 패배를 당해서 조 2위를 차지, 북한을 피한다는 시나리오였다. 한국은 쿠웨이트에 0-4로 지는 수모를 당했다. 2차 리그에서도 불안은 계속 이어졌다. 북한은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거부해서 몰수패를 감수하며 2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이라크와 1-1로 비겼지만 홈팀 이란에 0-2로 져서 말레이시아와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았다. 얄궂게도 말레이시아를 이기면 2위를 차지해서 북한과 3·4위전을 치르게 되는 1차 예선 때와 같은 상황. 한국 선수단은 똑같은 고민에 빠졌고 선택은 다르지 않았다. 우승후보이던 한국은 결국 말레이시아에 져 메달권에서 탈락했다.

해가 바뀌면서 시대도 달라졌다. 북한이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경기 중 심판 구타 물의를 빚어 수년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당해 침체기를 걷는 동안 한국 축구는 중흥기를 맞았다. 그리고 90년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치른 남북통일축구를 계기로 서로 적대시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크게 누그러졌다. 오히려 선수들끼리 개인적으로 우정을 나누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자꾸 부대끼고 만나야 정이 드는 게 사람살이다. 스포츠가 정치 논리에 휩싸인다는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축구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평화의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축구는 평화의 언어
2002년 서해교전과 북핵문제로 냉각된 남북관계는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풀렸고, 올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는 이번 동아시아대회를 통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제 남북교류는 처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구유니버시아드 때의 일이다. 예천 주민들이 북쪽 선수와 응원단을 환영하느라 남북 정상회담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마침 비가 내리자 북한팀이 ‘장군님’ 사진을 비에 맞게 걸어놓았다며 내려버렸다. 물론 남쪽에서도 경기장 앞에서 북을 비방하는 가두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제 ‘만났다’는 흐뭇함만으로 서로를 껴안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을 차며 서로 뒹굴면서 하나가 되는 게 축구의 묘미다. 남과 북이 축구로 ‘작은 통일’을 이룰 8월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축구 교류사…경평대회가 효시
남북 축구교류는 일제시대 민족의 관심사였던 경평축구대회가 효시다. 경평축구는 1929년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가지면서 시작됐다. 매년 한차례씩 서울과 평양에서 열렸으나 1935년 일시 중단된 뒤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서울에서 재개됐지만 이후 분단이 고착화돼 명맥이 끊겼었다.

이후 남북한은 30년 넘게 그라운드에서 조우할 기회가 없었다. 북한이 아시아대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은데다 한국도 66년 잉글랜드월드컵 예선이나 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처럼 대결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단절됐던 남북축구는 76년 방콕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준결승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대결(북한 1-0승)을 펼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가대표팀 간의 첫 격돌은 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결승전으로 양팀은 연장 혈투까지 벌였지만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우승을 차지해 시상대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해외에서만 격돌했던 남북축구가 다시 한반도에서 만난 것은 90년 남북통일축구가 개최되면서부터. 이듬해 5월에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단일팀(‘코리아’) 구성을 위한 1,2차 선발전을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가져 6월 본선에서 83년 멕시코대회 4강 이후 가장 좋은 8강에 오르며 세계에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했다.



오미현기자 mhoh@sportshankook.co.kr


입력시간 : 2005-08-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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