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할배들과의 기막힌 동거

[영화 되돌리기] 세컨핸드 라이온스
엽기할배들과의 기막힌 동거

흔히 한때 누리던 권력을 잃고 푸대접을 받는 사람을 일컬어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부른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맹수다운 위용을 발휘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이는 위험한 착각이다. 우선 호랑이의 최대무기는 이빨이 아니라 뭐니뭐니해도 위압적인 앞발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이빨이 빠지면 대개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신 사람 고기를 즐긴다. 즉, 사람만 먹는 무시무시한 식인 호랑이는 이빨이 성치 않은 놈인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이빨 빠진 호랑이도 나름대로 대접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이빨 빠진 호랑이가 있다면 미국에는 ‘세컨핸드 라이온(Secondhand Lion)’이 있다. 영화 제목인 이 말은 ‘퇴물, 노땅 사자’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백수의 왕 다운 면모를 잃지 않으려는 두 명의 ‘세컨핸드 라이온’이 등장한다. 텍사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두 노인 허브와 거스. 비록 남들 눈에는 볼품없는 노인네들이지만 둘 다 여전히 배짱과 완력 하나는 끝내준다.

엽기 할배로 통하는 이들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든다. 바로 철부지 엄마 때문에 여름 동안 생전 처음 보는 친척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월터(할리 조엘 오스먼트). 하지만 이 할아버지들이 ‘오냐 내 강아지’하며 조카 손자를 반갑게 맞이할 거란 예상은 금물이다. 이 고집불통 할배들은 라이플총을 쏘며 방문 판매원을 위협하기 일쑤고 사냥을 하듯 총으로 낚시를 즐길 만큼 괴팍하다.

이제 불청객 조카 손자와 엽기 할아버지들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과연 이들은 그들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 소통할 수 있을까. 성장하는 소년과 퇴화되는 노년이 어디서 접점을 찾으며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가 제시하는 해답은 간단하다. 소년은 할아버지들이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를 그려나가고 할아버지들은 자신의 왕년지사를 전해주며 현재를 살아갈 의미를 되찾는다. 그렇게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는 공유된다. ‘A boy should have an adventure.'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굳이 멀리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이미 오래 전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 사람을 통해 시공을 넘어선 모험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비록 그들이 존재가치를 서서히 상실해 가는 퇴물들이라도 갈퀴가 듬성한 사자라 할지라도 모두들 이제는 세상 일이 별반 두렵지 않은 넉넉한 호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에서 간파할 수 있듯 영화는 상당히 건전한 축에 속하는 PG 등급(부모의 지도가 필요)을 받았다. PG 등급은 우리나라 영화로 치자면 15세 관람가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섹스 코드가 강한 ‘연애술사’나 잔혹성이 간혹 드러나 보이는 ‘천군’이 15세 관람가를 받은 걸 감안하면 이 영화의 상영등급은 진실로 건전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미국의 한 재단에서 야하고 잔인한 영화보다 가족 영화가 평균 수익이 11배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더 넓은 나이대가 관람할 수 있는 전체 관람가의 관객수가 높은 것은 산술적으로도 당연한 결과지만 상대적으로 R등급 영화의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제작자들이 점차 수익성 개선을 위해 건전, 교육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동기가 어떻든 간에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영화 속에서라도 조금은 명랑한 세상을 만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신구 세대가 교감하는 ‘세컨핸드 라이온스’같은 영화가 총성과 에로가 난무하는 극장가에서 새삼 반가운 이유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8-11 18:54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