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돌리기] 모래와 안개의 집
이민자의 허망한 아메리칸 드림

이민자들의 부질없는 사상누각 2003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악의 축’으로 지목된 나라 이란. 이 이란에서 지난 8일 아마디네자드 새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했다. 아마디네자드는 테헤란 시장으로 재직할 무렵 미국을 상징하는 패스트푸드 식당을 모두 철거했을 만큼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반서방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핵 문제로 맞서고 있는 미국과 이란. 아마디네자드의 취임으로 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제 사회 뿐만이 아니다. 이란 내 이슬람 원리주의의 부활은 미국 내 거주하고 있는 이란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중동과의 불화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은 자국 내 거주하고 있는 아랍계 미국인들에게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의 악몽’이라는 양면을 지닌 나라 미국. 이민자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아랍계 이민자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반미 성향을 꿈틀거리게 하는 영화 ‘모래와 안개의 집’이다. 주인공 베라니 대령은 1979년 일어난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망명을 선택한 전직 비밀경찰이다. 사바크로 불리는 이란 비밀 경찰은 미국의 지원아래 탄압정치를 일관한 팔레비 왕조의 하수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 온 그에게 미국은 더 이상 보호막이 아니다. 그는 낮에는 공사장 인부 밤에는 편의점 점원으로 일하는 서글픈 이방인일 뿐이다. 그러나 하급 인부를 자처하는 그지만 부인과 자식들에게만큼은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다. 비싼 임대료의 최고급 아파트와 외제차의 사치는 호화로웠던 이란에서의 추억을 되살려주고픈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라니는 경매에 나온 집을 싼 값에 사는 행운을 거머쥔다.

리모델링 후 비싼 값에 되팔고자 하는 베라니. 그는 이 집을 종자돈 삼아 꿈에 그리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매에 나온 집이 실상 행정 관청의 실수였다는 점. 잘못 부과된 세금으로 인해 연체료가 밀리면서 이 집 주인인 캐시가 강제 퇴거 명령을 받게 된 것이다. 캐시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와중에 청천벽력같이 노숙자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가 30년 동안 벌어 마련한 집을 빼앗긴 캐시와 아메리칸 드림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일 수도 있는 집을 얻은 베라니는 모두 절박한 마음으로 집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런데 팽팽한 이들의 싸움에 갑자기 캐시의 새 남자친구인 보안관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파국을 맞는다.

여자친구를 돕기 위해 부당한 공권력을 이용하는 그는 캐시에게 연민을 갖고 갈팡질팡하던 베라니를 위협하고 불안한 이민자의 신분인 베라니는 이들에게 마지막 협상 카드를 제시한다.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폭력적인 이미지가 투영되는 보안관 레스터. 그는 정의로운 시민의 경찰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형평성을 잃고 사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향해.

그에 비해 베라니 대령은 발전적인 아랍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평화로운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그에게서 극단적인 테러조직의 과격함을 엿볼 수 없다. 그는 단지 삶이 버거운 힘겨운 이민자일 뿐이다.

영화 제목인 ‘모래와 안개의 집’. 사상 누각과도 같은 이 집은 위태로운 사투 끝에 결국 그 누구의 소유도 되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모래와 안개의 집’이 왠지 아무리 뿌리를 내리려 해도 거품처럼 사라질 듯한 이민자들의 부질없는 아메리칸 드림을 말하는 듯하다. 위태로운 사투 끝에 그래도 삶을 연명하는 건 결국 미국인들 뿐이기 때문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8-17 19:4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