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뒤의 엇갈린 명암

[영화 되돌리기] 친구
영광 뒤의 엇갈린 명암

2005년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충무로 영화 시장이 초토화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한류열풍의 중심 충무로는 예전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이미 아니었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특급배우 하나 없는 <웰컴투 동막골>, 배우 차승원이 각종 TV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눈살 찌푸릴 정도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박수칠 때 떠나라>등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할리우드 영화들을 밀어내고 있다. 또한 섬뜩한 포스터로 이미 화제가 된 <가발>이나 욘사마의 출연만으로도 한껏 기대되는 영화<외출>역시 관객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한국영화의 부흥기가 다시 찾아왔다며 연일 떠들어대고 다시 한 번 1,000만 관객시대를 기다리는 눈치다.

충무로의 부활찬가를 부르짖는 가장 큰 이유는 올 하반기에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과 이정재가 주연을 맡은 영화<태풍>은 12월15일 개봉을 앞두고 벌써부터 1,000만 관객을 동원할 기대작 1순위로 꼽히고 있어 한국 영화 부활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영화 ‘태풍’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는 감독 곽경택. 그는 영화 ‘친구’로 2001년 당시 국내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친구’는 총 119일간 전국 818만, 서울 266만 관객 동원, 개봉 5일 만에 전국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대부분의 흥행 기록을 석권했다. 그러나 기록보다 더 값진 것은 영화 ’억수탕’으로 가능성을 보인 곽경택 감독이 영화 속에 담아낸 특유의 색깔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 간 흥행대박을 노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은근히 남북한 문제, 범국가적 당면과제의 흥행공식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한국영화 흥행 랭킹5위안에 남북한 소재의 영화들이 4편(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이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틈바구니 속에 영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내는 최루성 영화도 아니었고 우리나라가 처한 슬픈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창한 소재도 아닌, 경상도 사투리로 여자의 성기를 나타내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내뱉는 우리 주변의 친구 이야기였다.

이 영화의 파급력은 한반도를 뒤흔들어 경상도 사투리를 친근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오래도록 유행어가 되어 30~40대 남성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있을 때,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친구들은 ‘친구’를 기점으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장동건은 ‘친구’에서 ‘마이 묵고’난 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장 확실한 배우로 성장한 반면 ‘비트’,‘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이미 간판급 배우였던 유오성은 ‘친구’ 후 잇따른 흥행실패로 지금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에 복귀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 주역이었던 서태화, 정운택은 아직 상택이와 중호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단숨에 대박감독의 대열에 올라선 곽경택 감독 또한 유오성과의 불화설, 조폭자금 연루설에 휘말려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더니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우성을 구질구질한 ‘똥개’로 변신시켰지만 관객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만다.

일반인은 평생 한번 맞을까 말까 한 칼침을 수없이 ‘마이 묵고’ 사라져간 동수가 저주를 건 것일까. ‘내가 니 시다바리가’하며 눈알 부라리던 동수역의 장동건만 뜨고 있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저 그렇게 관객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올 겨울 곽경택 감독은 장동건과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친구’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친구’ 이후 엄청난 인생의 부침을 경험한 이 둘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겠지만 부디 더도 덜도 말고 ‘친구’ 같은 개성강한 영화, 개성강한 캐릭터가 탄생하길 바란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8-29 19:1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