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액션이 만든 한국형 느와르

[영화 되돌리기] 달콤한 인생
핏빛 액션이 만든 한국형 느와르

1980년대 중반 주윤발이 바바리코트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성냥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등장했던 영화 ‘영웅본색’.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봉되었을 때만해도 별 반응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적 여건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청소년들이 비디오 대여 시장으로 몰리면서 ‘영웅본색’은 그제서야 ‘홍콩 느와르’ 상륙의 서막을 올렸다.

대도시를 배경으로 범죄와 연결된 주인공의 비극적 몰락을 화려한 권총액션으로 무장한 이른바 ‘홍콩 느와르’는 당시 10대들에게 액션과 모험 그리고 남자들만의 멋을 한껏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홍콩 영화시장은 같은 내용의 영화들을 재탕, 삼탕으로 제작하는 등 스스로 몰락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 틈새를 노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형 느와르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1994년 박중훈 주연의 ‘게임의 법칙’이 대략 첫 타자였다.

이후 한국형 느와르를 표방한 이른바 조폭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였지만 한국형 느와르에 대한 견해는 분분했다. 총기를 구하기도, 소지하기도 불가능한 나라에서 느와르라고 표현한 영화는 ‘무늬만 느와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느와르 형식을 차용한 한국 액션 영화들은 조금씩 진화하였고, 2005년 ‘한국형 느와르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영화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한국형 느와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겠다고 나선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강 사장(김영철)이 운영하는 조직의 2인자 선우(이병헌)는 보스의 젊은 애인(신민아)을 감시하던 중, 한 순간의 선택으로 조직 전체를 상대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의 ‘달콤한 인생’은 한 마디로 강한 남자들의 영화다.

영화는 ‘멋진 남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모티브로, 주인공의 분노, 걷잡을 수 없는 파멸 등을 담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달콤하지 않은 ‘달콤한 인생’이 주는 역설적인 제목의 아이러니에 있다. 달콤했던 한 남자의 인생이 첼로 선율의 ‘로망스(Romance)’를 타고 결코 달콤하지 않은 결말로 치닫는 과정을 음미해 보면 좋다.

제목에서 풍기는 멜로적 느낌 때문일까. 그렇게 ‘달콤한 인생’의 액션은 여느 액션과 다른 묘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는 ‘홍콩 느와르’를 보고 자란 10대들이 이젠 30대 초ㆍ중반이 되어 느와르 영화의 장르적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자기 삶을 점검하면서 인생의 어둡고 쓴 맛을 생각하게 한다.

굳이 옥의 티를 꼽으라면 섬세한 리얼리티가 2% 부족한 것이 큰 아쉬움이다. 하지만 어둡기만 한 느와르 영화들과 달리, 유머와 감성이 골고루 배치된 김지운표 느와르 액션은 김지운 감독의 저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연기 잘하는 풍성한 출연진들이다. 선우역의 이병헌 외에 그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김영철, 김뢰하, 황정민, 김해곤, 오달수, 이기영, 에릭 등 선 굵은 남자배우들의 무게감은 영화 ‘실미도’의 그것과 맞먹는다.

특히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바람난 변호사 연기 이후 단숨에 송강호와 설경구의 대를 이을 재목으로 부상한 황정민의 악역연기가 일품이다. 백사장 역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황정민은 2005년 올해가 ‘황정민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상반기에만 ‘달콤한 인생’, ‘여자, 정혜’ 두 편이나 개봉했고, ‘천군’을 기점으로 후반기에는 전도연과 함께 출연하는 ‘너는 내 운명’‘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달콤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황정민. 충무로에 새로운 별이 탄생되는 과정을 이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9-07 11:49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