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전향 선언, 폭발적 장타력으로 PGA 무대 넘볼 슈퍼 루키

미셀 위 신드롬, 세계 골프계 강타
프로전향 선언, 폭발적 장타력으로 PGA 무대 넘볼 슈퍼 루키

1994년 만 4세였던 한 여자 아이가 아버지의 지도로 골프채를 처음으로 손에 잡았다. 이제 겨우 만 16세.

하지만 183㎝의 큰 키와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긴 팔다리, 골프 선수로서는 최적의 신체 조건을 타고난 이 소녀는 6일 프로 전향을 선언하면서 세계 골프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국계 미국 골퍼인 미셸 위(위성미)가 마침내 프로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분홍색 나이키 상의에 힐을 신은 성숙한 모습으로 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6일(한국시간) 새벽 하와이 호놀룰루의 칼라만다린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부터 프로가 된다는 사실을 발표하게 돼 정말 행복하다”며 프로 전향을 공식 선언했다.

“제가 처음 골프채를 잡는 순간 앞으로의 인생은 골프가 전부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후 마침내 프로로 전향하게 됐고 그래서 무척 흥분됩니다.”

미셸 위 자신이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흥분되는 것은 세계 골프계와 골프팬들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성적을 거두고 얼마나 많은 돈을 거머쥘지 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돼서다.

“그는 아마 타이거 우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골프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즈에게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그에게 매혹될 것이다.”

세계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아놀드 파머(74)가 현역 최고의 골프스타 타이거우즈(30ㆍ미국)보다도 스타성이 높은 재목으로 꼽은 이 선수는 다름아닌 한국계 소녀 골퍼 위성미(미셸 위)다.

스타성·천부적 재능 고루 지닌 유망주

프로 전향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위성미는 여자무대는 물론 드라이브샷 최대 비거리 300야드 이상의 폭발적인 장타력을 바탕으로 남자골프의 최고봉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까지도 호령할만한 잠재력을 갖춘 대형 유망주다.

골프 실력 뿐 아니라 미모와 군살이 보이지 않는 늘씬한 몸매, 훤칠한 키는 그의 스타성을 더욱 높인다. 이는 부모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어머니 서현경(39ㆍ부동산중개업)씨는 1985년 미스코리아 서울 진과 미스보령제약 출신이다. 고등학교(우신고) 시절 학생회장(당시 연대장)을 지냈을 정도로 인물이 좋은 아버지 위병욱(45ㆍ하와이대 교수)씨도 그 나이대에서 보기 드문 187㎝의 장신이다.

여기에 위성미의 할아버지도 한국 항공 우주분야의 태두인 위상규 박사다. 자녀 및 사위까지 박사가 많아 위씨의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는 ‘박사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89년 10월11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푸나호우스쿨에 재학중인 위성미는 전 과목 A학점의 성적표를 받을 정도로 학업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말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잘 하는 편.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와 일본어도 집에서 배우고 있다.

독서와 그림, 컴퓨터, 쇼핑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교생인 그는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한국의 인기TV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한때 소지섭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03년 한국 방문때는 남대문 시장을 휩쓸고 다닐 정도로 쇼핑광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입맛을 따라 홍어도 즐겨 먹을 정도로 식성도 좋은 편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평범한 여고생 같지만 위성미는 골프에서만큼은 ‘신동’의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위성미가 처음으로 18홀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친 것은 겨우 만 7세였던 96년. 골프입문 3년 만에 18홀 14오버파의 좋은 스코어를 내며 ‘골프신동’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만 10세가 된 2000년부터 위성미는 아마추어대회에 본격적으로 출전하며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다.

2000년 미국골프협회(USGA) 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선수권대회에서 선전을 펼치며 사상 최연소 USGA 아마추어챔피언십 출전자격을 획득했고, 이듬해 11세부터는 각종 주니어대회 우승을 싹쓸이해 두각을 나타냈다.

2002년에는 LPGA 투어 다케후지클래식 월요예선에서 83타를 쳐 투어 사상최연소 통과 기록을 세웠고, US여자아마추어퍼블릭에서 대회 사상 최연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위성미는 여세를 몰아 2003년 1월 PGA 투어 대회인 소니오픈 월요예선에도 도전했으나 예선통과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아픔을 딛고 같은 해 3월 열린 LPGA 투어 메이저대회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정상급 프로골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9위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LPGA 투어 사상 최연소 컷 통과 기록도 당연히 위성미의 몫. 당시 위성미는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보다 무려 20야드나 긴 평균드라이브샷 비거리 280야드의 장타(최장거리 300야드)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었다.

상승세를 탄 위성미는 전년도 4강에 올랐던 US여자아마추어퍼블릭에서 최연소우승을 차지했고, LPGA 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도 28위에 올랐다.

하지만 남자대회인 캐나다투어 베이밀스오픈플레이어스챔피언십과 네이션와이드투어(PGA 2부투어) 앨벗슨보이시오픈에서는 여전히 컷오프를 면치 못했다.

세계 골프계 지각변동 예고

위성미는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 1월 PGA 투어 소니오픈에서 비록 컷 통과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2라운드 합계 이븐파 140타로 남자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남자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성 골퍼의 남자무대 진출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조금씩 바뀐 것은 위성미가 2004년 소니오픈에서 불과 1타차로 탈락하면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는 4위에 올랐고, 미국-유럽간 아마추어 팀 대항전인 커티스컵에서 최연소 미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위성미는 올 시즌에도 남자대회 컷 통과의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LPGA 무대에서는 만 15세의 나이로 SBS오픈,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에비앙마스터스 등 모두 3차례나 준우승을 차지해 더 이상 아마추어 신분으로 남을 이유가 없어졌다.

‘빅 이지(The Big Easy)’ 어니 엘스(남아공)에 비견되는 멋진 스윙으로 ‘빅 위지(The Big Wiesy)’라는 별명까지 얻은 위성미지만 그의 우상은 엘스가 아닌 골프황제 우즈.

TV에서 우즈의 경기를 지켜보며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다는 위성미는 자신의 침실 벽면을 우즈의 사진으로 도배할만큼 그의 광 팬이다.

프로 전향을 선언한 위성미가 기대대로 장차 자신의 우상을 넘어설 만한 업적을 세울 수 있을 지 또한 앞으로 골프계 최대의 이슈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박원식기자


입력시간 : 2005-10-11 19:08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