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패션의 매력속으로

‘하늘거리는 쉬폰 소재에 알록달록 물방울 무늬’, ‘얼굴을 뒤덮는 커다란 선글라스에 복고적인 초록색 하이힐.’

올 여름 영화 속에서 가장 주목을 끈 의상은 단연 금자씨의 레트로풍(복고) 의상이다. 도대체 이 보다 더 촌스러울 수 있을까 할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촌스러워서 더욱 세련된 느낌이 드는 의상이었다.

이는 요즘 최신 트렌드 중 하나가 레트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의상이 캐릭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의상에 대한 관객들의 호감도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영화 의상은 배우의 이미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초기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에 있어서 의상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배우들이 스크린 상에서 자신들의 결점을 커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그쳤다.

1916년 최초의 의상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얻은 루이 가스니에에 이어 할리우드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아드리엔은 넓은 어깨를 가진 여배우 조안 크로포드의 단점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어깨 패드를 디자인해 1930~40년대 유행을 이끌기도 했다.

그 후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 에디트 헤드가 오드리 헵번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의상을 맡으면서 의상 디자이너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한 때 1960~70년대 기성복의 등장으로 의상 디자이너의 활약이 조금 주춤하기도 했지만, 점점 영화의 스케일이 커지고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때로는 시대적 고증을 위해, 때로는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보다 창의적인 의상 디자이너가 요구되고 있다.

동서양의 이미지를 섞어서 ‘스타워즈’의 ‘아미달라’ 의상을 만들어낸 트리샤 비가나 ‘반지의 제왕’에서 신화적인 캐릭터를 의상으로 표현한 엔길라 딕스, ‘시카고’에서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무대의상을 창조한 콜린 앳우드 등이 요즘 주목 받는 의상 디자이너들이다.

화제작 ‘다빈치 코드’의 의상을 맡고 있는 다니엘 오란디 역시 스타일리쉬한 영화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 가운데 하나다.

특히 그는 르네 젤 위거와 이안 맥그리거가 주연한 영화 ‘다운 위드 러브’에서 1960년대의 레트로풍 의상을 감각적으로 창조해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오란디는 이 영화 속에서 단역 배우의 의상 하나하나도 직접 제작해 6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재연했다.

르네 젤 위거가 ‘여성성에 대한 찬사’라고 한 마디로 표현 한 바 있는 이 영화 속에는 상어가죽, 앙고라 염소털과 같은 60년대 유행 소재를 이용한 파스텔 색상의 의상과 오버 사이즈의 모자가 등장한다.

이 둘은 영화 속에서 마치 뮤지컬이라도 찍듯이, 패션 쇼라도 하듯이 근사하게 차려 입은 모습으로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긴다.

영화는 단연 스타일이 스토리를 압도한다. 솔 바스 풍의 독특한 타이포그라피를 이용한 타이틀에서 감각적인 분할 화면에 이르기까지 프레임 하나하나는 마치 보그나 하퍼스 바자, GQ 등 패션 화보집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의상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 디자이너 오란디는 레트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연출하는 데 분명 성공했다.

하지만 관객은 패션잡지를 스크린에서 만나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사브리나’의 오드리 헵번이 지방시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었다고, ‘애니홀’에서 다이안 키튼이 랄르 로렌의 중성적인 스타일의 옷을 멋스럽게 소화했다고 해서 그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사랑 받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를 살려주는 의상만으로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