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변한 '신의 도시' 거리의 갱이 접수하다

2002년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에 모인 영화 관계자들은 “브라질에서 온 영화 <시티 오브 갓>을 보았느냐?”고 묻곤 했다.

각지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도 해마다의 유행이 있기 마련인데, <시티 오브 갓>은 그 해 영화제 손님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던 최고 화제작 중 한 편이었다.

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브라질 영화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흥분했고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을 월터 살레스(<중앙역>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더불어 브라질 영화를 짊어질 희망으로 추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믿음에 마침표라도 찍듯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비롯, 감독상과 촬영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시티 오브 갓>은 충격적인 드라마와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단박에 보는 이의 눈을 홀린다.

비열한 거리의 아이들

에필로그에 나오는 ‘실화에 근거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가 묘사하는 사건들은 충격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때 '신의 도시'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약탈과 강간, 살인이 일상화된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의 로켓이다. 핏덩이 10대 갱의 총격에 형을 잃는 로켓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침착한 소년이다.

영화는 로켓이 바라보는 무지비한 거리의 갱들과 그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따라간다. 1960년대 시작된 갱들의 이권 전쟁은 10년을 주기로 주인공을 달리 하면서 이어진다.

1960년대 ‘모르테스 삼총사’로 불리던 소년 갱들의 시대에서 1970년대 마약 상권을 두고 벌어진 갱들의 전쟁, 그리고 남자다운 갱의 세계를 꿈꾸었던 제뻬게노와 베네가 신의 도시를 지배하게 된 1980년대로 나뉘어진다. 각 시대마다 신의 도시를 장악하기 위한 갱들의 전쟁이 있고 그들의 돈줄인 마약이 있다.

갱들의 전쟁은 복수에 복수를 낳고 거리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제빼게노가 거리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영화계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브라질에서 제작된 <시티 오브 갓>은 신과 인간이 반목하게 된 땅 브라질의 오늘을 말한다.

신이 선택한 땅 리우데자네이루는 더 이상 관광 엽서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어부 보다 폼나는 해양구조대가 되고 싶어하고 “갱과 경찰은 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할 수 있는 건 비리 경찰이 되거나 마약 운반책을 거쳐 악랄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신이 선택한 땅이 어떻게 마약과 범죄에 물들어가는 지를 통시적으로 훑어가는 이 영화는 무능과 비리가 만연된 브라질의 현대사를 갱들의 전쟁을 통해 우회적으로 통찰한다.

그러나 ‘신에 의해 버림 받은 도시와 인간’이라는 종교적 알레고리에도 불구하고 <시티 오브 갓>은 한 편의 현란한 액션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거리를 부랑하는 아이들을 잡아내는 카메라는 탐미적이고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재현하는 화면은 관능적이다.

이 기묘한 불협화음을 통분해야 할 지, 즐겨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극사실주의적인 이야기와 경쾌한 이미지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기이한 인상을 자아낸다. 비통해마지 않아야 할 참담한 폭력을 가벼운 영상 유희로 포장하는 스타일에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다.

복수와 폭력의 끊어지지 않는 고리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휘말리기 쉬운 논란은 실제 사건을 개작해 내용을 왜곡하거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시티 오브 갓>은 실제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소개함으로써 이런 오해의 소지를 봉쇄한다. 이 무자비한 도시 빈민가의 모습은 과장이나 왜곡이 아니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성공한 원작 소설에 기초한 이 영화에는 폭력으로 점철된 삶에 대한 번득이는 성찰과 구원의 가능성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어두운 비전이 담겨 있다. 페르난도 감독이 밝힌 영화의 목표는 리얼리티의 극한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거리에서 촬영된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촬영의 첫 번째 원칙은 실존하는 ‘시티 오브 갓’의 현실에 최대한 밀착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채운 비전문 배우들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뽑힌 사람들이다.

<중앙역>에 잠깐 출연한 직업 배우를 제외하면 오디션조차 처음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출내기 비전문 배우들에게 이런 연기를 뽑아냈다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시티 오브 갓’에서 진행하려던 촬영은 실현되지 못했다. 갱들을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그들의 허가를 받지 못했고 경찰들 역시 촬영을 보장하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칠게 살아가는 갱들의 현실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베쩨게노 일당과 상대 갱단의 최후 전쟁 장면이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갱들 간의 총격전과 그 순간을 잡아내는 로켓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누구를 응원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이 전쟁에서 파괴돼 가는 것은 신과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 순간부터 신이 이 도시를 주관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거리의 아이들은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복수를 위해 상대편의 뒤에서 총질을 해댄다. 그리고 영화는 그 대물림 되는 폭력의 고리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갱들의 일상과 폭력을 담은 로켓의 카메라는 이 모순적인 세상을 기록하는 수단이다. 그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이 장구한 갱들의 전쟁에 카메라를 들이 댄 이유이기도 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