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우즈벡 색시를 잡아라농촌총각 '피앙새 찾기' 고행

최근 한국영화계의 흥행 트렌드를 짚으라면 '올드 패션’이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손수건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고색창연한 신파 전략으로 대박을 터트린 <너는 내 운명>에 이어 연이어 터지는 멜로드라마의 면면을 살펴보면 약해진 심성을 자극하는 러브 스토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굳이 멜로가 아니더라도 구식의 감성은 2005년 한국 대중영화를 풍미한 강력한 경향 중 하나다. 1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나의 결혼 원정기> 역시 고루하지만 누구나 수긍할만한 전통적 감동의 코드를 동원한다.

영화는 '사랑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관념이 팽배한 이 시대에 우직한 진심이 담긴 낡은 사랑법을 역설한다.

우리 모두 결혼합시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결혼일 수는 있다.

혼기를 한참 넘겨 서른 여덟 살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본 농촌 총각 만택(정재영)과 나름대로 능숙한 택시 기사 희철(유준상)은 둘도 없는 죽마고우다.

결혼을 못 했건, 안 했건 싱글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두 친구는 농촌 총각이라는 신분으로 짝을 찾기 힘든 대한민국을 떠나 색시 구하기 해외 원정에 나선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름도 낯선 우즈베키스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나 한 번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낯선 땅에서 두 노총각의 결혼 작전이 펼쳐진다.

결혼 원정까지 갔지만, 만나는 여자마다 작업 걸기 바쁜 희철에 비해 만택은 소개 받은 여자들마다 퇴짜다. 급기야 중개업체 담당자 라라(수애)에게 마음이 꽂힌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지난 해부터 한국영화의 아이템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TV 다큐멘터리에서 소재를 취했다.

2002년 방영된 TV 시리즈 인간극장 ‘노총각, 우즈벡 가다’ 편을 본 황병국 감독은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결혼 상대를 구하기 위해 타국으로 날아가는 농촌 총각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류의 거리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는 우즈벡 결혼 원정 대원들과 3주간 동행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원정대의 실제 삶에서 추출한 생생한 에피소드와 현지 촬영이 영화에 현실 감각을 불어 넣었다. 이처럼 해외 로케이션을 하는 영화들이 노리는 바는 뻔하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웃음(이 영화에서는 주로 유의어의 어감 차이를 통해 웃음을 준다)과 낯선 해외 풍경이 주는 볼거리, 현지 촬영으로 인한 현장감 따위를 담기 마련이다.

<나의 결혼 원정기> 역시 이런 원칙에 충실하다. 단순 말장난으로 시작해 클라이맥스에서 중요한 감동의 요소로 작용하는 우즈벡 현지 언어, 이국의 풍광을 통한 풍속 묘사 등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구식 수법의 러브 스토리

황병국 감독은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를 졸업한 늦깎이 실력파다. 어릴 적 스티븐 스필버그의 를 스무 번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의지의 인물인 그는 실화에서 취한 소재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영화를 만들었다.

스필버그의 영화처럼 누구에게나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찾았다는 감독은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에서 묵직한 감동을 끌어낼 줄 아는 미더운 연출력을 과시한다.

특히 우즈벡으로 떠나기 전 시골에서의 삶을 묘사하는 전반부는 일상의 유머와 시골살이의 목가적 정겨움이 잘 배어난다. 주목할 것은 현실 속에 실재하는 다양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숙한 재주다.

웃음과 감동을 함께 추구하면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표나지 않게 녹여내고 있다.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촌 문제, 이농으로 인한 노령화, 농촌 총각 문제, 조선족, 제3세계 노동자, 탈북자 등의 문제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궁벽한 농촌의 현실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지만 어떤 대안이나 희망은 없어 보인다. 물론 이런 문제의식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쾌락을 해치지 않는 한도 안에서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한다. <나의 결혼 원정기>의 이야기와 형식은 모두 촌스럽다.

색시감을 찾아 이역만리까지 갔다가 소개소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부터 농촌 총각의 순정이 끝내 성사되는 로맨스까지 수없이 보아 온 패턴이 다시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쉰 내 나는 구식 로맨스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너는 내 운명>이나 <나의 결혼 원정기>류의 순정 로맨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부담 없이 만나고 질리지 않을 만큼 즐기다 빠이빠이 하는 '쿨한' 사랑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인간 관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보여진다.

사회가 강퍅할수록 눈물샘을 자극하는 진한 신파 멜로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는 영화계의 속설이 입증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같은 구식 사랑이야기가 감동을 자아내는 데에는 배우 정재영의 힘이 크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과 함께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이자 2005년의 기린아로 떠 오른 배우 정재영은 미련스러우리만치 외곬수지만 심지가 깊은 농촌 총각 만택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황병국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 일본 드라마 <백 한 번째 프로포즈>를 정재영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재영의 연기는 일견 과장돼 보이지만 통일성이 있으며 양식화된 연기를 할 때도 감정의 울림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영화에서 보편의 감동을 끌어내는 호소력을 발휘한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