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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되돌리기] 쉬핑뉴스
영혼의 자유로운 항해법



“말투란 코르셋이 자세를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배우의 연기를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영화 ‘빅 피쉬’에서 사투리 자문을 맡았던 칼라 메이어가 밝힌 자신만의 사투리 철학이다.

칼라 메이어는 1980년대부터 할리우드에서 사투리 코치로 일해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담 강사를 둬 가며 사투리 연기를 배우는 배우들이 있는 걸 감안하면 할리우드 배우들이 사투리를 배워가며 연기하는 게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르네 젤 위거도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영국식 악센트를 발음하기 위해 전문강사 바바라 버클리에게 교습을 받았고,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조니뎁 역시 코치의 도움으로 정통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익혔다.

이처럼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사투리 연기가 주목 받는 것은 사투리로 표출되는 지역색이 영화를 더욱 사실감 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관객들은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억양처럼 미묘한 사투리까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투리가 전해주는 양념 같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특히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쉬핑 뉴스’처럼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독특한 사투리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독특한 지역색을 제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영화 ‘쉬핑 뉴스’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뉴펀들랜드 지역은 영국과 아일랜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독특한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사투리는 단지 독특한 말씨에 그치는 게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듯한 이들의 언어에서 이민족의 유입으로 점철돼 있는 뉴펀들랜드의 기구한 역사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원작자인 작가 애니 프롤스가 이 지역의 독특한 지명, 예를 들어 ‘죽은 자의 만(灣)’, ‘절망의 만’, ‘약탈의 해변’ 등을 보고 이 섬이 간직하고 있는 어둡고 거친 역사의 흔적에 매료되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듯이, 뉴펀들랜드 지역은 그 자체로 소설 같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리고 뉴펀들랜드의 판타지 같은 전설은 주인공 퀘일의 굴곡 많은 가족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소극적인 아이로 자라나는 퀘일은 퍼킵시 신문사에서 윤전기 기사로 일을 한다.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서는 팜므 파탈형인 여인 페탈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출산 후 아내는 노골적으로 외도를 하고 결국 정부와 도망가다가 사고로 죽는다.

절망의 끝에 서게 된 퀘일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고모 아그니스. 그녀는 퀘일에게 아버지의 고향 뉴펀들랜드로 돌아가서 새 삶을 살자고 제안한다.

5월에도 눈이 오는 이 어촌 마을에 도착한 퀘일은 얼떨결에 지역 신문사에 기자로 취직하게 되고 선박뉴스를 담당하게 된다.

선박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 일을 하게 된 퀘일은 점점 뉴펀들랜드에 숨겨져 있던 조상들의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그 비밀이란 뉴펀들랜드에 정착하게 된 자신의 조상들이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해적이었고, 잔혹한 피를 물려받은 퀘일의 아버지가 고모 아그니스를 강간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영감을 주었던 뉴펀들랜드는 노르웨이의 바이킹이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킹들은 깎아지른 절벽과 거친 바닷바람, 그리고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 이 곳은 '빈란드'라고 불렀다. 이들이 그 후 원주민과 동화되었는지 모두 살해당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이킹의 문화와 토속문화가 그 후에 유입되는 유럽 문화와 결합돼 이 곳만의 고유성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500년이 넘도록 조상의 땅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뉴펀들랜드. 이 곳에서 영화는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끌어안기 힘든 상처를 직시하면서 혐오와 미움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 닻을 내리고 묶어 놓았던 로프를 풀어 먼 바다로 항해를 하는 삶 속에서 업보의 닻을 내리고 마음의 짐을 풀어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5-12-2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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