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행복의 재발견

지난해 미국의 영화연구소(AFI: The American Film Institute)가 선정한 '올해의 사건(Moments of significance)에 세 편의 영화 '우주전쟁','굿 나인 앤 굿 럭','펭귄-위대한 모험'이 선정되었다.

그 가운데 영화 '펭귄'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공동체의 일부가 되자'는 건전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흥행성과 무관하게 평단의 호응을 받았다.

삭막한 세상에 온정이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은 일본이 지난해 ‘올해의 한자’로 '사랑 愛'를 선정한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허리케인 피해와 같은 자연재앙이 잇따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무의미한 구호로서가 아닌 실질적인 인류애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살아가기가 녹록하지 않은 지구인의 삶. 올 설연휴에는 우리 모두 친절한 지구인이 되고, 좀 더 즐겁게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전 인류애적이고 전 가족적인 영화를 감상해 보자.

바로 공동체주의의 긍정의 힘을 믿게 만드는 영화 세 편을 추천한다. 지구를 재발견하는 영화, 생명의 경외감을 재발견하는 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삶의 피붙이를 재발견하는 영화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멸망한 지구를 탈출한 인간의 삶 그린 SF

첫 번째, 지구를 재발견하는 영화는 이름부터 흥미진진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컬트적인 감수성을 지닌 독특한 SF영화라는 점 때문에 마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야기는 지구가 은하계 대통령의 어이없는 실수로 멸망하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은하계 지역발전 계획에 따른 4차원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지구가 철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주인공 아서 덴트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는 친구 포드의 도움으로 지구를 탈출하게 된다. 탈출 방법은 날아다니는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얻어타는 것.

제목이 왜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인지 이쯤 되면 이해가 된다.

은하수를 여행하면서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우주인들이 지구인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

도저히 참고 들어줄 수 없는, 자작시 읊기 고문을 감행하는 우주인 보곤족을 피해 다른 우주선으로 탈출을 하는 주인공들은 포드의 사촌이자 은하계 대통령인 자포드와 그의 지구인 여자친구 트릴리언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의욕상실증, 만성우울증에 시달리는 머리 큰 로봇까지 합세해서 이들은 예기치 않은 은하계 여행을 시작한다.

은하계 포퓰리즘 정치를 선동해 인기는 많지만 무능력하기 그지 없는 대통령 자포드. 그는 두 개의 얼굴에 두 개의 인격을 가진 외계인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평범한 지구인이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외계인들만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소품들에서부터 매머드급 컴퓨터 그래픽 작업까지, 코믹 SF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시종 기상천외하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은하계 세상의 화려한 눈요깃 거리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고 새로이 건설되는 지구에 도착한 주인공 아서 덴트는 은하계를 여행하면서 그동안 찾을 수 없었던 절대적 진리에 대한 답을 깨닫는다.

그렇게도 소박했던 지구인의 삶, 살며 사랑하며 함께 숨쉬었던 모든 평범한 일들이 전 우주 차원에서 보면 ‘절대적 행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주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교훈이 있다. 우주인을 자멸시키는 가장 큰 무기는 다름아닌 무기력증과 권태라는 것.

펭귄·위대한 모험

펭귄가족의 숙명적 사랑과 시련

혹시 연휴 기간에 나홀로 지내며 자기파괴적 권태에 시달리고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경외심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또 한 편 보면 좋겠다.

생존을 위해 항상 긴 여정을 떠나는 펭귄의 숙명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이 바로 그것이다.

뒤뚱거리는 걸음과 귀여운 생김새로 인간들에게 친근한 동물로 여겨지는 펭귄.

하지만 사실 이들도 알고 보면 자기 새끼들 앞에서는 지독하게 독한 놈들이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짝짓기 시기 때마다 영하 100도의 맹추위를 견뎌내며 남극의 오모크로 여행을 떠나는 황제 펭귄들의 부성애와 모성애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 모인 수천 마리의 황제 펭귄 무리들은 혹독한 겨울 바람에 맞서 귀한 생명들을 잉태한다.

하지만 출산 후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어미는 홀로 바닷가를 찾아 떠나야만 하고 남겨진 아비는 어미에게 알을 안전하게 받아 수개월 동안 굶주림 속에서 알을 품고 있어야만 한다.

행여나 차가운 얼음땅에 떨어져서 깨어지지나 않을까, 맹렬하게 몰아치는 눈보라 앞에서 알을 품은 아비들은 서로 몸을 부대끼며 간신히 새끼를 지켜내지만 추위를 못이겨 부화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새 생명을 이들도 어쩔 수가 없다.

어느덧 알이 부화되면 다시 아비는 먹이를 찾아 떠나고 어미는 새끼를 돌본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영화는 한 마리의 새끼 펭귄이 태어나고 살아남기 위해 펭귄 가족들이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펭귄들이 때로는 인간 못지 않은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지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아 있음은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경외롭고 때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처럼 내 삶 자체가 소중한 기적인데 어떻게 인생을 무료하다 말할 것인가.

붙어야 산다

샴 쌍둥이의 '따로 똑같은' 인생

마지막 영화는 기적같은 일을 경험하는 형제의 이야기다. 제목은 ‘붙어야 산다'. 코미디 영화의 귀재 패럴리 형제가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함께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샴 쌍둥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장애인 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을 법한 소재를 갖고도 유머와 감동 모두를 잃지 않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다.

샴 쌍둥이 밥과 월트는 나름대로 둘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해 32년간을 붙어서 살아왔다. 하지만 월트가 배우로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할리우드 행을 결정하면서 이들의 동고동락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밥과 무대 지향적인 월트. 이 둘은 어쨌든 할리우드로 떠난다. 하지만 몸이 붙은 이들을 쉽사리 받아줄 에이전시는 없다.

가까스로 찾아간 곳에서는 포르노 영화만 찍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방송사와 드라마 계약이 있던 배우 셰어가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이들 형제를 상대배우로 추천한 것.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드라마도 뜨고 이들 형제도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결국 자신들의 꿈을 위해 이들은 분리 수술을 결정한다.

바라던 바대로 각자의 몸을 갖게 된 밥과 월트는 다른 곳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게 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감은 느끼지는 못한다.

이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32년간 붙어있던 22센티미터의 살 사이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다시 함께 일하는 일터로 돌아가면서 끝이 난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거추장스럽지만 이들에게 가족이란 한 몸처럼 편안한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에 처해서 살건 간에 삶이란 끊임없이 흥미진진하고 활기찬 일이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는 삶이 너무나 권태롭다면, 매일 매일 지긋지긋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에 숨이 막힌다면, 지금 이곳 보다 확실히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언제나 곧게 믿고 싶다면, 먼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어 보자.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지구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펭귄-위대한 모험’을 통해 우리의 부모, 가족의 삶 속으로 천천히 들어와 ‘붙어야 산다’를 깨닫자.

파랑새를 찾으러 너무 먼 길을 돌아왔으니 이제는 그 품속에서 편히 쉬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