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독일월드컵서 우승못하란 법 없다" 자신감 충만압박과 질주로 그라운드 지배력 강화, 공수라인 한층 안정

“6월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을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주인공으로 만들겠다.”

지난달 27일 월드컵 우승국에게 돌아가는 진품 FIFA(국제축구연맹)컵의 서울 공개행사 식장에서 FIFA컵 트로피를 바라보던 딕 아드보카트 축구 대표팀 감독(59)의 눈길은 자못 의미심장했다. 명절을 앞두고 새로 채워진 학교 앞 문방구의 장난감을 바라보는 초등학생의 눈길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시선을 지켜보는 눈길을 알아챘는지, 아드보카트 감독은 “내 평생 꿈이 저 트로피를 한 번 들어보는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축구에서는 어떤 일도 가능하다. 2002년 한국이 그것을 잘 보여줬다. 2006 월드컵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축구의 대륙 유럽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 아드보카트 감독.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언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빤히 아는 그가 이처럼 자신 있는 말을 내뱉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의 확인이다. 지난해 9월 말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5개월 여의 시간 동안 대표팀을 맡아 자신의 축구철학을 이식해오면서, 특유의 빠르고 끈끈한 한국축구에서 성공의 단초를 발견한 것이리라.

아드보카트는 '3수생'

2006 독일 월드컵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세 번째 메이저 대회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이끌고 우승을 노렸으나 8강에서 ‘카나리아 군단’ 브라질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당시 데 보어 형제, 라이카르트, 코에만, 오베르마스, 베르캄프 등 스타들이 즐비했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는 실패를 맛봤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두 번째 도전은 지난 2004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유럽선수권대회) 2004였다. 다시 한번 네덜란드 사령탑에 앉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작은 월드컵’으로 불릴 만큼 중요성을 지닌 이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했다.

반 니스텔로이, 코쿠, 세도르프, 다비즈, 로벤, 스탐, 라이치거 등으로 구성된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초호화 군단’으로 불릴 만큼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결승진출 문턱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에 덜미가 잡혀 귀국행 짐을 싸야 했다.

그리고 맞이한 세 번째 도전의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유로 2004를 마치고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떠난 아드보카트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불명예 중도퇴진 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2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계약상 하자는 없었지만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다는 ‘독이 든 성배’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기까지. 메이저 대회 챔프를 향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의지와 집념이 한껏 배어나오는 대목이다.

세 번째 도전은 지난 두 번의 도전과는 사뭇 차이가 난다.

94 월드컵, 유로 2004 때에는 우승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팀이었고, 지금은 축구도박사들 조차 우승 가능성을 높이 쳐주지 않는 그런 팀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월드컵 우승을 향한 열망과 보람, 그리고 준비하는 재미는 더욱 클 것이다.

우승의 단초가 보인다?

그런데 우승후보를 이끌면서도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아드보카트 감독이 16강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한국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아드보카트 감독의 말대로 축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2002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올랐고 유로 2004에서는 유럽의 변방 그리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을 향한 첫 단계는 16강 진출. 그 이후로는 토너먼트식으로 치러지는 단판 승부. 어떤 이변이 일어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발견한 ‘가능성’은 순항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개조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부임 이래 국내에서 치러진 3차례 평가전에서, 한국대표팀이 평소 구사해온 전술로 임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중순부터 시작된 장기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자신이 그리고 있는 축구스타일로 개조작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축구가 그토록 도전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던 4(포)백 수비라인을 단번에 도입시켜 뿌리를 내렸다. 포백 전술은 히딩크 감독마저 두 손을 들었던 일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해외원정 첫 경기였던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경기 후반전부터 포백 전술을 시도해 지난 3·1절에 1-0 승리를 거둔 앙골라전까지 줄곧 포백 전술을 구사해왔다.

허점도 많고 과제도 남겼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의 집요한 포백 전술 고집에 한국 대표팀은 포백라인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게 됐다. 이제는 기존의 스리백에 포백까지 겸비하게 돼, 상대의 특징, 그리고 경기 양상에 따라 자유롭게 전술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시도한 또 하나의 변화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포진시키는 소위 ‘더블 볼란치’ 시스템이다.

이는 미드필드 중앙에, 수비에 치중하는 두 명의 미드필더를 포진시켜 수비의 안정은 물론 공수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전술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 전술로 유로 2004에서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LA 갤럭시와의 경기에서 한때 선의의 경쟁자 사이였던 김남일(28ㆍ수원)과 이호(22ㆍ울산)를 ‘더블 볼란치’로 나란히 투입해 성공을 거뒀다. 지금까지 이 전술은 한국 대표팀의 기본 시스템으로 이어오고 있다.

사실 월드컵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감독이나 선수, 심지어 팬들이 한국의 우승을 운운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일이자 성급하기 짝이 없는 처사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다. 현대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 못지않게 조직력과 함께 열정, 투지로 뭉친 정신력이 전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기에 소위 ‘약체’로 평가받는 팀들에게 기회는 더욱 많아질 수도 있다.

언론과 팬들과의 관계를 능숙히 처리해온 덕에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이 ‘액션 배우’에 가깝다면, 무던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성격파 배우’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의 우승발언은 의외의 사건에 가깝다.

국제무대에서 자신감의 중요성을 잘 아는 아드보카트 감독, 본인 스스로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세뇌작업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는 말이 한국에서 통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장치혁 기자 jangt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