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상품화·선정적 장면 성과는 미비예술성 보다 신윤복의 여성미와 사제지간 애정 행각 치중

영화의 첫 장면은 책의 표지나 목차와 같다. 한 장면이 주인공의 성격을 제시하거나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기도 한다. <미인도>는 첫 장면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그것은 바로 신윤복의 상처와 재능이다. 상처는 남성 화가였던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둔갑시키는 영화적 설득 장치로 사용되며 재능은 당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와 사제 관계를 맺게 해준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결별하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우선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다. 유홍준은 김홍도를 ‘단군 갑자 이래 최고의 화가’라고 평가했다.

김홍도의 스승은 표암 강세황이다. 문인화가 강세황과 그의 제자 김홍도의 관계는 “어렸을 때는 사제로 관계로 만났고, 중년엔 직장의 상하관계로 만났으며 나중에는 예술로 만났다”고 기술하면서 스승과 제자가 예술의 경지 안에서 서로 교류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홍도의 예술적 경지와 성장을 우회적으로 찬미하고 있다. 스승 표암이 기술한 김홍도에 대한 인물평은 높은 인품과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제자에 대한 칭찬이 배어있다.

표황은 “단원의 인품을 보면 얼굴이 청수하고 정신이 깨끗하여 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상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 <미인도>에서 김홍도는 제자 신윤복에 대한 예술적 지지와 동시에 제자에 대한 연정을 자제하지 못한 정염에 지배된 스승으로 돌변한다. 영화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를 사제 관계에서 연인관계를 넘나들게 하여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영화 <미인도>는 신윤복에 대한 두 가지 영화적 수정을 가한다. 하나는 남성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성전환이며 다른 하나는 김홍도와 연인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신윤복의 남장 여자로 등장하는 것도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적 사실을 수정한 것이다. 미술 사학자 이태호는 “신윤복은 누가 뭐래도 멋진 ‘남자’이다. 자가 입보(笠父)이며 입보는 삿갓 쓴 남자를 이르는 미칭”이라고 한다. 신윤복은 <미인도>에서 오빠의 삶을 대신해야 하는 일생의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상처는 예술가의 성장을 촉진하는 영양제이다. 니체는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회복된다”는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상처는 정신의 성장도 돕지만 오히려 예술가의 성장을 돕는 채찍과도 같다. 신윤복은 여성으로서 화인의 삶을 살 수 없어 유년시절 오빠 대신하여 그림을 그렸던 일종의 고스트 화가였다.

그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오빠는 자살하고 화원 출신 부친 신한평은 신윤복에게 김홍도를 넘어선 화가가 되어 오빠의 죽음에 대한 부채를 청산하라고 명령한다. 그때부터 신윤복은 남장 여자로 살아가면서 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화가의 길을 걷는다.

신윤복은 그의 붓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실적인 풍경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고 갔다.

영화는 신윤복의 예술적 성장보다는 감정의 길을 따라서 카메라를 앞세웠다. 카메라는 결국 예술의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장한 여자인 신윤복의 몸과 기방(妓房)에 모여든 조선 후기의 사대부들의 문란한 음행의 현장에 몰래 머물다 말았다.

영화는 결국 예술가의 초상보다는 풍속화를 그린 화가의 연애 행각과 조선 시대의 뒷골목을 담아내는 일에 더 치중하고 말았다. <미인도>는 역사의 상품화와 선정적 장면과 한국 자연의 스펙터클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역부족일 것 같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도 연인관계로 축소하여 예술을 사이에 둔 사제의 내밀함보다는 여성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욕망의 시선이 과잉된다. 신윤복과 강무의 정사 장면을 바라보는 김홍도의 시선은 자신의 아내와 정을 통하는 정부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처럼 질투의 먼지가 꼈다.

사랑하는 강무를 위해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감정까지 희생하는 신윤복의 선택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감정으로 설득력이 덜하고 예술에 대한 자긍심과 스승에 대한 의리는 빛나지만 영화적 서사의 뒷받침이 약해 맥락을 잃고 만다.

파이어 아벤트는 “모든 예술은 왼손에서 탄생한다”고 했다. 철학자 이왕주 선생은 이 말에 적절한 각주를 달았다. 그는 “예술은 이미 만들어지고 틀 지워진 것에 양떼처럼 순종하는 정신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저항정신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이 말을 신윤복과 여타의 작가에게 대입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윤복도 화원의 신분이면서 그 당시 화풍에서 벗어나 풍속화를 그리고 성을 과감하게 한국화의 세계로 편입시켰다. 최순우 선생은 신윤복의 <밀회>를 평하면서 “실감이 가는 실생활 주변의 주제를 다룬 것으로 금제된 성(性 )의 담장을 몰래 넘어야만 했던 시대의 숨가쁜 여인상의 일면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극찬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금제된 성의 담을 넘었다는 것이다. 신윤복은 허용된 금 안의 소재를 거부하고 금 밖의, 담장 밖의 세계로 예술의 힘으로 넘어갔던 왼손잡이 예술가의 행보를 선택했던 것이다.

유홍준은 “앞 시대의 예술은 단원이라는 호수 속에서 종합되고 이후의 화가들은 단원이라는 호수로부터 흘러나와 너나없이 단원을 본받는 형상”이 되었다고 했다. 김홍도는 조선 예술의 집대성이며 조선 예술의 주류의 대표주자이다. 김홍도가 오른손잡이 화가의 대표성을 지녔다면 신윤복은 왼손잡이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왼손잡이 화가로서 신윤복은 주류 편입보다는 담 밖의 세계를 지향하였으며, 예술보다 사랑을 선택하여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곳에서, 사랑과 예술의 문 밖에서 작품 ‘미인도’가 완성된다.

미인도를 그려서 강물에 띄우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이 영화의 백미이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 사실과 결별하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신윤복의 예술과 상처라는 쌍두마차를 이끌고 온 감독의 땀과 열정은 엿보인다.



문학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