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울분을 토해낸 노래인가여인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인가귀에 감기듯 애절한 콧소리로 대중가요 전성시대 활짝 열어

유명 가수들의 사망소식은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들이 남긴 노래에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절감할 것 같다.

올해만 해도 지난 2월 14일 같은 날 80년대에 팝 발라드 장르를 도입해 대중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렸던 이문세의 황금콤비 작곡가 이영훈과 60년대 남성사중창단 전성시대를 이끈 남성보컬그룹 블루벨즈의 리더 박일호가 세상을 등졌다.

5월에는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권혜경이 자신의 노래가사와 판박이 삶을 살다 세상을 등져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귀에 감기듯 애절한 콧소리로 민족의 울분을 토해낸 이난영의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지독한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다. 그의 노래는 일제강점기하에서 고통 받는 민족의 슬픔과 울분을 대변하는 한의 가락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비련의 삶을 살다 간 한 여자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일수도 있다.

실제로 그녀는 첫 남편인 만능 뮤지션 김해송(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OST로 사랑받은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작곡가)과는 한국전쟁 때 생이별을 겪었고 연하의 애인이었던 당대 최고인기가수 남인수도 병으로 일찍 사별해 말년을 술과 벗 삼아 지냈다. 1965년 4월 11일 새벽. 알코올 중독으로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대중가요 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비련의 여가수다.

1930년대 초반 태양극장의 이름 없는 막간가수로 음악생활을 시작한 이난영은 단장 박승희로부터 예명을 얻었다. 그녀의 본명은 이옥례다.

일본공연에 나선 그녀는 생활비가 떨어져 배고픔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오케레코드 사장 이철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이후 17세 되던 1933년 '지나간 옛꿈', '향수', ‘불사조’ 등으로 단번에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조선의 가요팬들은 애교를 머금은 이난영의 독특한 코맹맹이 소리에 가슴 속에 쌓인 슬픔과 한을 정화시키며 눈시울을 흥건히 적시곤 했다. 이난영의 노래는 슬픈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 김해송과 함께 만든 작품 중에는 재즈 스타일의 경쾌하고 발랄한 작품도 많았다.

1934년 조선일보주최로 전국 6대도시 ‘애향가’ 가사 공모전이 열렸다.

전국에서 응모된 3천여 편의 작품 중 목포의 문일석 작품 ‘목포의 눈물’이 당선되었다. 오케 레코드는 고복수를 위해 만든 손목인 곡 ‘갈매기 항구’ 멜로디에 이 가사를 넣어 ‘당선 지방 신민요곡’을 목포출신가수 이난영에게 이 부르게 했다.

대중가요 전성시대를 연 1935년 8월 작 ‘목포의 눈물’이다. 특유의 콧소리에다 흐느끼는 듯 애간장을 끊어내는 느낌의 이난영 창법에는 남도 판소리 가락에서나 느낄 한의 정서가 그대로 배어났다.

단번에 가요계의 여왕이 된 이난영은 한 곡의 유행가로 식민지 조선을 흐느낌으로 잠기게 했고, 항구도시 목포를 애틋한 추억의 명소로 되살리는 마력을 발휘했다.

지금껏 애창되는 ‘목포의 눈물’은 대중가요 전성시대를 연 기념비적 이정표를 제시한 곡이다.

이 노래는 일제에 대한 한과 저항의 혼이 표현된 민족의 노래로 추앙받으며 이미자, 조용필, 남진, 나훈아, 문주란, 주현미, 김수희, 심수봉을 비롯해 루시드 폴 같은 최근 가수에 의해서도 리메이크된 불멸의 명곡이다.

현재 ‘목포의 눈물’ 오리지널 SP(유성기)음반은 부르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명반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확인하긴 힘들지만 발매이후 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는데 이제는 다 어디로 갔는지 실물구경조차 불가능한 초 희귀음반이 되어있다. 물론 LP. CD시대에 재발매된 이난영의 음반들은 무수히 많다.

1968년 가수 개인을 추모하는 가요제가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개최되었다. 난영가요제다.

1969년에는 최초의 노래비가 목포 유달산에 건립되었고 이난영, 남인수의 사랑과 인생, 노래를 소재로 영화 ‘이 강산 낙화유수’까지 제작되면서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2006년 3월 25일. 이난영의 유해는 41년 만에 경기도 파주에서 목포 삼학도에 조성된 ‘가수 이난영 공원’으로 이장되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