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채규엽- 유랑인의 노래 SP' 1930년 콜롬비아
1930년대 풍미한 유행가요 발표… 4개부문 최초 타이틀의 주인공
한국 첫 직업가수·싱어송라이터·학사가수·표절 시비 휘말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국내에 음반이 등장한 역사는 100년이 넘어선다.

1895년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10명의 한국 소리꾼들을 데려가 공연을 했다. 일행 중 한명인 경기명창 박춘재가 현지에서 취입한 레코드가 국내 최초의 음반으로 전해진다. 1910년대까지 국내의 음반들은 미국인들의 주도로 제작되었다.

그 후 30년대까지는 주로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희망가’를 발표했던 초기의 ‘님보노흥’이란 축음기 회사는 음반라벨에 태극을 그려 넣었다. 당시 대중음악에 일본 색채가 스며들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한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는 누구의 음반일까? 어느 장르나 최초 논쟁에는 여러 가지 논쟁과 가설이 난무하기 마련인데 이 부분에선 의외로 해답이 명쾌하다.

옛 가요를 연구하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목하는 성악가출신 채규엽이 주인공이다.

1926년 8월에 발표된 ‘사의 찬미’, ‘부활의 기쁨’의 윤심덕과 1929년 4월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공증된 ‘낙화유수’를 발표한 이정숙, 1930년 1월 ‘그대 그립다’, ‘종로행진곡’등 재즈풍의 노래를 취입했던 복혜숙등 채규엽 보다 앞서 대중가요를 발표한 가수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생전에 대중가요를 국내 무대에서 단 한 번도 부르지 못한 윤심덕, 동요가수로 알려진 이정숙이나 영화배우나 성우 활동기록이 선명한 복혜숙을 본격적인 직업가수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1930년대를 풍미한 많은 유행가요를 발표한 채규엽이 최초의 직업 대중가수로 공식화 되어 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채규엽은 대중음악사적으로 4개 부문의 최초 타이틀 월계관이 부여된 중요뮤지션이다.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를 시작으로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최초의 학사가수이면서 최초로 표절시비에 휘말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1927년 일본 도쿄 중앙음악학교 성악과에서 1년간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했던 그는 귀국 후 독창회를 개최했던 바리톤 성악가였다. 이 후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 극단 토월회와 취성좌의 공연에 막간가수로 출연했었다.

강한 억양의 함경도 사투리와 고집스럽게 느껴지는 외모의 그는 작은 체구였다고 한다. 그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다지 전해지지 않는다.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출생 연도초자 1905년, 1906년, 1907년, 1911년으로 엇갈릴 정도로 출생 년도가 정확치 않다.

최근 1906년으로 표기되어진 그는 함경도 원산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설과 경성에서 보성고등학교 전신인 보성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설이 있는 등 학창 시절에 대한 기록 역시 엇갈리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성악공부는 중학교 시절 독일인 교사에게 처음으로 배웠다는 설이 있다. 1949년 이후 그의 행적은 대중에게서 지워졌다. 1997년에 평양에서 출판된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라는 책에 그가 1949년에 고향 함흥에서 병사했다고 기록은 그가 월북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가 정식으로 음반을 취입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일본의 콜럼비아레코드가 경성 지사 설립 축하연 때 근화여학교 음악 교사였던 그가 일본어로 노래를 부른 것이 인연이 되었다.

콜롬비아 음반번호 40087인 그의 데뷔음반은 1930년 3월 발매되었다. 수록곡은 ‘유랑인의 노래’와 ‘봄노래를 부르자’ 2곡. 흥미로운 것은 ‘유랑인의 노래’다. 그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고 노래한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창작곡이기 때문이다.

사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실은 ‘유랑인의 노래’가 담긴 채규엽의 오리지널 sp음반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 또한 복각된 cd음원으로만 접했고 음반사진도 어렵게 입수했다. 그만큼 그의 데뷔sp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희귀한 음반이다.

당시 유성기 음반 라벨에는 대중가수를 ‘성악가’로 표기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대중가요와 성악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은 대중음악의 시생대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작사 작곡하고 스스로 노래까지 시도한 창작음반의 발매는 진정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2월 제2816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2월 제2816호
    • 2020년 02월 제2815호
    • 2020년 02월 제2814호
    • 2020년 02월 제2813호
    • 2020년 01월 제2812호
    • 2020년 01월 제2811호
    • 2020년 01월 제2810호
    • 2019년 12월 제2809호
    • 2019년 12월 제2808호
    • 2019년 12월 제2807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청주 삼겹살 거리 청주 삼겹살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