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탁월한 멜로디 라인 원초적 한의 정수영화 '고래사냥' 대박으로 동반 히트대학가 스타서 온 국민 사랑받는 가수왕으로 수직 상승

80년대의 김수철은 요즘의 '비'에 견줄 만했다. 깡충깡충 발차기하며 뛰는 장난스런 동작과 스피디한 기타실력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유효한 그만의 트레이드다.

조용필과 더불어 '작은거인'이란 애칭을 지닌 김수철. 용산공고 1학년 때 록밴드 '파이어 폭스'를 결성했던 그는 고3 때 명동성당에서 최초로 록을 연주했던 괴물 고교생 록커였다. 귀청을 얼얼하게 하는 하드코어 록 사운드로 경건한 성당을 뒤집어 놓았던 것.

1978년 4인조 대학생 밴드 '작은거인'으로 공식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 한양대에서 열렸던 제1회 전국 대학가요 경연대회에서 동요 풍의 밝은 곡 '일곱 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하며 대학가 최고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대학가의 재주꾼 김수철은 1979년 이광조에게 '행복', 80년엔 김태화에게 '변덕스런 그대', 81년엔 송골매에게 '모두 다 사랑하리'를 작곡해 주며 3년 연속 MBC 국제가요제에 입선하며 무한의 작곡재능을 과시했다. 특히 송골매의 빅히트 곡 '모두 다 사랑하리'는 10분 만에 곡을 만들어준 일화로 유명하다.

1981년 타의에 의해 밴드 멤버들의 팀 이탈이 시작되었고 본인도 군 입대로 공백기를 가졌다. 제대 후 부친의 강력한 권유로 음악을 잠시 접고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노동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작곡해 둔 100여 곡이 아까워 기념음반을 한 장내고 그만둘 생각으로 1983년 광복절 날 솔로 1집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발표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앨범이 아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발표한 이 앨범이 자신에게 본격적인 음악행로를 제시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수록곡은 그의 창작곡들로 구성되었고 편곡까지 스스로 처리했다. 수록곡은 '세월' , '정녕 그대를', '별리', '내일', '다시는 사랑을 안할테야!', '두 보조개' 등 총 7곡. 타이틀곡 '못다 핀 꽃 한 송이'는 김수철만의 탁월한 멜로디라인과 원초적인 한의 정수를 동시에 제시한 한국 대중음악의 명곡이다.

'정년 그대를' 또한 타이틀곡에 견줄 만한 싱글이다. 또한 이미 작은거인의 앨범에 실렸던 '별리, '내일', '세월' 등은 팝 스타일의 편곡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앨범은 핵심은 보컬 곡 뿐 아니라 연주곡으로도 발표된 '못다 핀 꽃 한 송이'와 '별리' 2곡이다. 특히 2면에 수록된 무려 10분 10초의 연주곡 '별리'는 국악에 경도되는 김수철의 향후 음악행보를 암시한 예고편 같았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그때까지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담아 음반을 발표했지만 1년 동안 대중은 별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기존의 김수철의 밝고 파격적인 이미지와 상반되는 진지하고 어두운 음악들이었기 때문. 그리고 음악 또한 록이 아닌 팝 스타일이었기에 록 마니아들의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1984년 영화 '고래사냥'의 병태 역을 할 배우를 찾던 배창호 감독과 작가 최인호에게 우연히 픽업되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영화음악까지 맡은 김수철은 영화의 대박을 주도했고 그해 백마영화제에서 신인연기자 상까지 수상했다. 이에 모든 매스컴에서 김수철을 대서특필하는 신드롬이 일어났다.

이미 발매한 그의 기념음반도 뒤늦게 재평가되며 동반 대히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1984년 그해 KBS 가수왕, 내ㆍ외신기자상, MBC 10대 가수상을 비롯해 무려 16개 가요관련 상을 휩쓸었다. 솔로 1집은 그를 대학가의 스타에서 온 국민이 사랑하는 가수왕으로 수직 상승시켰다.

국악은 그에게 영욕을 함께해준 음악이다. 당시 조용필의 맞수로 떠오른 그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 소리의 세계화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악기인 전기기타로 우리 가락인 산조를 연주하는 그의 음악핵심은 양악과 국악의 끝없는 담금질이다.

"오래전 발표한 국악음반이 575장밖에 팔리지 않아 1억 원 정도 빚을 떠안았죠. 1주일 뒤에 레코드회사로부터 음반 폐품처리 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상처를 받았어요."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김수철 국악 3부작 앨범을 완성하며 한 우물을 파오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