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그림 천재들의 불행한 만남뮤미주의적 환상이 아닌 현실에 기초한 사실주의적 유머와 그림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와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90년대 중반 경 설날이나 추석 등 연휴가 이어지는 기간이면 어김없이 안방을 찾아드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미스터 빈'(Mr. Bean)이라 불리는 사나이로 언제나 우리의 무료한 연휴를 달래 주는 역할을 했다. 그 프로그램은 바보 같은 몸짓과 눈알을 굴리는 연기, 얼굴표정이 일품인 그의 극중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미스터 빈' 시리즈는 영국의 TV 시리즈물로 요즘말로는 시트콤이라 하는 것이었다.

영화 <미스터 빈>
미스터 빈의 일상은 엉뚱하면서도 호기심 가득 찬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이 웃음을 던져주는 동시에 그에게 연민까지도 느끼게 하는 묘한 분위기의 TV물이었다. 얼굴표정과 동작만으로 웃음을 주는 그의 바보스러운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혹시 그의 지적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시청자도 있었다. 그런데 시청자들을 한 번 더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옥스퍼드를 졸업한 수재에다 전 블레어 총리와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TV 시리즈물의 성공에 힘입어 극장판 <미스터 빈>이 처음 제작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미스터 빈>(1997년작, 멜 스미스 감독)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멜 스미스((Mel Smith, 1952~ )도 옥스퍼드 동문이고 보면 수재들이 모여 바보 캐릭터를 만든 셈이다. 아무튼 이 영화의 배경은 비록 가상적이지만 미술관이 배경이어서 그림과 미술관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 출연, Rowan Atkinson, 1955~ )은 영국 왕립 미술관 (Royal Academy of Arts)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미술관에는 오직 큐레이터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체제가 아니라 많은 전문 직종들이 모여서 일하는 협업체제이다. 즉 관장과 큐레이터 외에도 재무담당관(Business Manager), 교육담당자(Educator), 작품등록담당자(Registrar), 수복보존담당자(Conservator), 전시디자이너(Exhibition Designer),홍보섭외담당자(Public Relations Officer), 자금조달담당자(Development Officer), 사서(Librarian), 박물관/미술관후원회관리운영자(Membership Officer), 시설관리자(Superintendent), 소장품관리자(Collection Manager), 편집자(Editor), 사진기사(Photographer) 등 최소한 15개 이상의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미술관 최악의 직원 빈의 직책은 분명하지 않다. 기껏 한쪽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참견하고 기웃거리거나 빈둥대는 것이 그의 업무이자 일과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관내에서 왕따 중 왕따.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더욱 더 '문제적 인간'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직원들 모두는 그를 꺼리고 피하지만 미술관 이사회 회장(존 밀스 분, John Mills, 1908~1995)만이 그를 감싸고 각별히 지지한다. 그래서 왕립미술관 이사회와 직원들의 목표는 그를 미술관에 ?아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빈을 보낼 절호가 기회가 찾아온다. 미국 최고의 걸작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의 <어머니의 초상>을 본국에 돌려보내기 전에 미국 로스엔젤리스에 자리한 그리어슨 미술관(Grierson Art Gallery, L.A, 가상의 미술관으로 실재 존재하지 않는다.)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한다. 미국출신의 작가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휘슬러 미술의 전문가를 초청해서 학술세미나를 열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영국 왕립 미술관에 저명한 휘슬러 연구자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골탕만 먹던 이사회는 앙갚음을 할 목적으로 미스터 빈을 대신 보내기로 결정한다.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미국에 도착하지만 사고뭉치 빈은 공항에서부터 불법 총기 소지자로 오인받아 공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가 지나는 곳은 모두가 풍지박산이 나고 휘슬러의 명작 중 명작인 <화가 어머니의 초상>(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1871, 유화, 144.3×162.4 cm ,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국 왕립미술관이 추천한 휘슬러 전공의 최고의 미술사학자가 된 미스터 빈을 모시고 그리어슨 미술관은 소수의 관계자들만이 모인 가운데 고국에 돌아온 <휘슬러의 어머니의 초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그리고 잠시 모두가 자리를 비운사이 미스터 빈은 휘슬러의 그림을 들여다보다 재채기를 하게 되고 그림에 분비물이 튄다. 황급히 그것을 닦아내려하자 유화물감으로 그린 휘슬러의 명작이 동시에 닦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또 황당한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1-휘슬러 <화가 어머니의 초상> (1871) 2-<모지를 쓴 자화상> (1958년) 3-백색 교향곡-제2번 <하얀꽃의 작은 소녀> (1864) 4-백색교향곡-제1번 <하얀옷의 소녀> (1862) 5-<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 (1863~1864)
1-휘슬러 <화가 어머니의 초상> (1871)
2-<모지를 쓴 자화상> (1958년)
3-백색 교향곡-제2번 <하얀꽃의 작은 소녀> (1864)
4-백색교향곡-제1번 <하얀옷의 소녀> (1862)
5-<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 (1863~1864)
다소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휘슬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미스터 빈의 미국행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휘슬러는 우리의 박수근이나 이중섭처럼 미국의 국민화가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러시아의 철도고문으로 일하게 되면서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러시아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며 예술적이고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 후 부모의 뜻에 따라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했지만 화학과목에서 과락을 받고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원하던 그림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휘슬러는 에콜 드 보자르를 포기하고 자유스러운 챨스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등록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고 루브르와 거리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보헤미안적 삶에 빠져들어 방탕하고 어지러운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일관했는데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원제 <그레이와 블랙의 어렌지먼트; 화가의 어머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그가 뉴욕의 첼시에서 67세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원래 서있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지만 그의 탐구적 태도 때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어 노모가 힘들어 하자 자리에 앉은 채로 그렸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할 때는 엄격했지만 평소에는 허풍과 자기과시를 좋아하는 이중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그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미국미술과 유럽을 잇는 가교로서 역할을 했다 그런 때문에 미국미술이 유럽미술과 동시대를 호흡했다고 믿고 싶은 미국인들에게 그의 존재는 더욱 더 각별하다. 회색과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은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야위고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한없는 사랑과 희생을 감지시키는 작품으로 마치 세상을 떠난 후 후회하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 오히려 자식들을 위로하려는 듯한 단아한 느낌의 표정은 이 작품의 압권이다. 그런데 삶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 그림이 미스터 빈을 만나 지상최대의 수모를 당하면서 얻는 교훈은 그의 그림이건 빈의 웃음이건 유미주의적인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사실주의적 유머이며 그림이라는 사실이다.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