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내공이 스토리를 전개한다분실 핸드폰 놓고 마초와 소심남의 한 판 승부

이번 호부터 김시무 영화평론가가 새롭게 리뷰 연재를 시작한다. 대중적 글쓰기라는 미명 아래 가벼운 영화평이 난무하는 지금,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해온 김시무 평론가의 리뷰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영화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리라 기대한다. (편집자 주)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은 어느덧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일종의 스릴러영화다. 우연한 실수로 핸드폰을 분실한 한 남자와 그것을 습득한 또 다른 남자 간에 펼쳐지는 치열한 두뇌싸움이 영화의 중심 얼개를 이루고 있다. 극중 매니저로 일하는 오승민(엄태웅)은 어느 날 한 지인으로부터 동영상이 첨부된 메시지를 받고 경악한다. 그 동영상에는 자신의 소속사를 대표하는 여배우 윤진아(이세나)의 정사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원본을 넘길 터이니 거액의 사례금을 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거친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승민이 호락호락 당할 리 없다. 그는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고 문제의 동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성공을 거둔다. 그리하여 이제 만사형통인가?

안도감에 도취된 승민은 그만 문제의 동영상이 내장된 핸드폰을 깜빡 잊어버리고 만다. 승민에게는 이제 그 핸드폰을 무사히 회수해야 할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진 셈이다. 만약 그 핸드폰을 습득한 사람이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문제는 간단했을 터이다. 핸드폰을 습득한 장본인은 대형마트에서 고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정이규(박용우) 주임이었다. 정주임은 고객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싹싹하기로 소문난 모범 사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관상의 이미지일 뿐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그는 겉으로는 고객들의 온갖 불만과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억압된 욕구불만으로 인해 마음이 시커멓게 타 있는 상태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폭발력을 내장하고 있는 문제의 핸드폰이 주어진 것이다.

결국 인생을 거침없이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외향적(extrovert) 성격의 오승민과 남에 대한 배려에만 신경 쓰고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내향적(introvert) 성격의 정이규 간의 피 튀기는 한판 승부가 영화 <핸드폰>의 핵심이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한 두 배우 엄태웅과 박용우의 도전 정신도 높이 살 만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핸드폰에 내장된 비밀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박솔미가 이 영화에 우정 출연한 이유는 아직 언급하지도 못했다.

이 영화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고루 갖추었다는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시사회 때 무대 인사를 나온 배우들은 그런 판정을 의식했음인지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려서 시사에 참석한 많은 영화 관계자들을 웃기기도 했다. 먼저 엄태웅 씨가 영화의 ‘폭력성’에 자신이 크게 한몫을 했다고 조크를 던지자, 극중 여배우를 맡았던 신인 배우 이세나 씨는 그 말을 받아 자신도 역시 ‘선정성’에 한 역할을 했다고 농을 건넸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소감은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닌데’ 하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필자는 핸드폰 액정을 통해 보인 여배우 정사장면이 의외로 소박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인기 여배우 섹스 장면의 유포라는 설정 자체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스크린 상에 가시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파격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 영화는 사실 선정성보다는 오히려 폭력성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고 봐야한다. 좌충우돌 파괴본능을 발산(發散)하는 마초 승민과 억눌린 욕구불만을 일거에 분출(噴出)시키는 소심한 정주임의 극한 대결이 아무래도 영화의 메인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정 자체가 그렇다는 데야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이왕 등급 문제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에 참여했었던 필자로서는 솔직히 등급부여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재 및 주제보다는 표현수위에 더 치중하여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예컨대 불륜(不倫)을 소재로 했지만, 화면상 선정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을 경우 전체관람가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십대 청소년들의 방황과 반항을 소재로 한 영화일지라도 폭력성의 정도가 아주 심하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소 폭력적인 설정의 영화 <핸드폰>이 상기 판정을 받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물론 이것은 한때 심의를 담당했었던 경험에 입각해 내린 소견에 불과하다. 필자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 나아가 일개 평론가의 입장에서 작품의 소재와 표현수위가 어느 정도 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요컨대 남녀 간의 애정을 소재로 삼은 영화라면, 소구대상인 성인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관객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미인도>와 <쌍화점>에서 그런 시도를 했고 일정하게 호응을 받았다.

필자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애당초 폭력성 및 선정성의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판정을 받았다가 문제된 부분을 자진 삭제하는 형식으로 재심에서 등급을 내려 받는 영화판의 오랜 관행이다. 이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목하 개봉 중인 <마린보이>, <작전> 등과 같은 영화들이 그런 케이스라고 한다. 마약밀매라든가 주가조작 같은 지극히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기 영화들은 표현수위를 낮추어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랄까. 이것저것 자르고 나면 18세 이상 성인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심심한 영화가 될 터이고, 10대 청소년 관객들한테는 지도가 요망되는 어정쩡한 영화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제작사 입장에서는 등급에 따라 흥행 지수에 큰 영향을 받게 되므로 불가피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핸드폰>의 제작사 측은 지나치다 싶은 폭력 장면 등을 자진 삭제하고 재심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애초 등급대로 개봉을 하겠다고 밝혔다. 너무나도 지당한 결정이다. 지난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하여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한민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핸드폰>으로 스릴러 분야의 실력을 다시금 발휘하고 있다. 분실한 핸드폰 하나를 매개로 하여 이처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이 단편 시절부터 쌓아온 내공 덕분이라 하겠다. 감독 자신이 극중 카메오로 출연하여 코믹한 재미를 주고 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