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악역은 스타로 가는 지름길?안티팬 각오하고 열심히 소리지르고 욕했는데 열혈팬이 늘어나네'귀가의 유혹' 애칭 얻으며 시청률 40%육박 일등공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악역'을 맡은 배우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기 힘들 때도 있었다. 시청률이 30%를 웃돌던 SBS <조강지처 클럽>에 출연한 배우 오대규는 악역 때문에 단골식당에서 조차 외면을 당했다. 오대규는 당시 "나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다니던 매니저마저 위염에 걸렸다. 드라마로 인해 하도 눈칫밥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소연했다.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악역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앞장서 악역을 소화하는 배우의 건강을 챙기는 가하면, 악역이 하고 나온 의상과 액세서리가 유행이 되기도 한다. '멋진 악역은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배우 김서형이 바로 그 경우다.

김서형은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극본 김순옥ㆍ연출 오세강)에서 악역을 멋지게 소화한 덕분에 스타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었다. 김서형은 "안티팬을 각오하고 시작한 드라마에서 열혈팬을 얻으니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악역도 열심히 하면 완소 배우 된다."

김서형은 극중 '막장 악녀'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김서형이 연기하는 애리는 은인이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남편을 빼앗는다. 조강지처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갖가지 음모술수로 친구를 곤경에 빠트린다. 방송 4개월 여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애리는 표독스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의 악행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

"시청자들이 처음부터 좋아해 주신 것은 아니다. 극 초반에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입에 담지 못한 욕도 많았다. '애리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글도 봤다.(하하) 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소리지르고 욕하며 몰입하니 어느새 팬이 늘어나더라. 처음에는 애리를 많이 미워하셨는데 지금은 측은하게 보시는 것 같다."

김서형도 마음 편히 악역을 맡은 것은 아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의 김서형에게 표독스러운 애리는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였다. 2년 여의 공백기도 캐릭터 몰입을 힘들게 했다. 김서형은 "악역이라 욕먹는 것보다는 연기 못해서 욕 먹는 것이 더 창피한 일이다"고 생각하고 역할에 몰입했다. '애리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할까' 반문하면서 쉬는 날도 대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작품을 시작한 지 4개월 여, 김서형이 애리를 이해했을 무렵 대중은 김서형이라는 배우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유혹> 방송 초반 시청자 게시판에는 "아이고~ 세상에 저런 못 된 년. 은혜를 복수로 갚네" "애리 년, 꼴도 보기 싫다. 화면에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등의 원성이 자자했다. 최근의 모습은 다르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매일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이젠 목소리가 많이 약해졌다. 몸을 챙겨야 할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 애리 때문에 화가 나는데 김서형의 연기는 정말 볼만하다"는 칭찬의 글이 계속되고 있다. 김서형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다.

"팬들이 내 건강을 많이 염려해 주신다. 과거 선배들은 식당밥도 못 먹을 정도로 미움 받았다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미움 받을 걸 각오하고 시작한 드라마에서 오히려 팬들이 사랑을 느껴져 신기하다. 뭐든지 열심히하면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알아주시고 사랑해 주신다."

#"노력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아내의 유혹>은 현재 40%의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귀가시계' '귀가의 유혹'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김서형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애리 역에 몰두하고 있다. 한 달에 하루 이틀 주어지는 쉬는 날조차 손에서 대본을 떼지 않는다.

'애리 캐릭터가 강해 다음 작품 선정에 쉽지 않겠다. <아내의 유혹> 전에도 공백기가 2년 이나 있었는데…' 기자의 물음에 김서형이 장난스레 눈을 흘긴다. "물론 나 역시 '이렇게 표독스러움의 극치를 보여드리고 있는데 이후에 들어오는 역할이 계속 악역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내의 유혹> 이후 활동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매일매일 소리 지르다 보며 온몸에 진이 다 빠져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김서형은 어깨를 으쓱한다.

"애리 역할에도 불구하고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건 대중에게 미움 받는 걸 두려워 하지 않고 연기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노력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해 주신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게 될 지는 모르겠다. 어떤 역을 소화하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런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겠다."



문미영 기자 mymoo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