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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집단무의식 반영된 경성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
한일간 대립·갈등없이 온갖 욕망이 꿈틀대는 공간으로 묘사





김시무 영화평론가



경성(京城)을 무대로 한 사극(史劇), 아니 시대극(period film) 한 편이 제작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이다. 비슷한 배경이 처음은 아니다.

30년대 경성(京城)을 무대로 한 정용기 감독의 ‘원스 어 폰 어 타임’, 하기호 감독의 ‘라듸오 데이즈’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르기까지 제법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개봉되었고, 최근작으로는 정지우 감독의 ‘모던보이’가 그 맥을 이었다.

21세기가 도래하고 10여년이 흘렀는데, 왜 하필이면 경성일까? 사학자 김기봉 교수는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경성의 상품가치는 1930년대 경성의 이국적인 풍경을 재현하려는 욕망과 옛날의 향수에 젖고자 하는 욕망을 재현한다는 이중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성에 대한 ‘재현의 욕망’의 밑바닥에는 현재 우리 ‘욕망의 재현’이 집단무의식으로 내재해 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요컨대 경성을 과거 일제(日帝) 강점기 때를 상징하는 억압적 공간이 아닌 향수어린 환상적 공간으로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국사(國史)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려는 제스처라고 할까? 이들 작품들은 모두 외관상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일제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을 강조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했다. 일종의 탈 국사(脫 國史)였다.

나는 이 작품들이 모두 1930년대 경성의 모습과 사람들의 의상 등을 나름 고증에 입각해 충실하게 또는 화려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극(costume film)의 개념에 부합하는 영화들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이들 영화들의 첫 번째 주된 특징은 당시의 풍경(風景)과 장관(壯觀)을 스펙터클하게 스크린 상에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내용은 모두 픽션이다.

물론 이들 영화들 모두 일제 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적 관점을 표출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었던 일제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비록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는 대단히 희극적(喜劇的)이고 희화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저에 깔려있는 공통된 정서는 반일(反日)감정이라는 것이다.

소재 및 주제 상 민족적(民族的) 강박으로부터 많이 벗어났다고는 해도 이들 작품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민족 담론이다. 탈 국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쪽 발은 그 매트릭스에 담그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놈놈놈’을 제외한다면, 이들 작품들은 결말이 비장(悲壯)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스 어 폰 어 타임’의 경우 “이제 독립군의 시대는 가고, 사기꾼의 시대가 왔다!!”고 홍보했지만, 결국 독립군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며 막을 내린다. ‘라듸오 데이즈’의 경우 만사태평 타고난 한량 PD의 좌충우돌을 통해 당시 방송계 이모저모를 코믹하게 보여주는 듯했지만, 결국은 전파를 활용한 독립투쟁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모던보이’에서는 경성 최고 미녀댄서가 독립투쟁에 헌신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들 작품들 모두 대중적 오락영화를 지향한다면서도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지나치게 강박되어 있다. 그래서 여전히 경성은 우울한 공간으로 남는다.

‘그림자 살인’은 어떨까? 때는 고종이 아직 황제로 군림했던 시기의 경성이다. 저잣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그 활기찬 도시 경성에서 특이한 직업으로 먹고 사는 한 청년이 있었다. 떼인 돈 찾아주고 바람난 유부녀 뒤를 캐주는 사설탐정 홍진호(황정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배후에는 순덕(엄지원)이라는 양반집 부인이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는 각종 과학기기 제작 및 의술에 달통한 신식 여성이었다. 한편 서양 의학에 흠뻑 빠진 젊은 의사인 장광수(류덕환)는 밤마다 유기된 시신을 찾아 헤맨다. 해부실습용으로 쓰기 위함이다. 이 세 사람의 좌충우돌 활약상이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어느 날 고위관리인 내무대신의 자제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과 의사들이 사건현장에 투입되지만 오리무중이다. 광수는 자신이 해부했던 시신 중 하나가 바로 실종된 자제임을 알고, 진호에게 살인범을 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그리하여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진실들이 속속 밝혀진다는 것이 영화의 중심 얼개가 된다.

‘그림자 살인’은 대단히 심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진지모드의 무거운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은 몸 개그로 때우려는 얄팍한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영화는 경성이라는 거대도시를 온갖 욕망이 꿈틀대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불륜현장이 다반사로 목격되고 이따금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유랑서커스단의 공연에 관객이 환호하는 유희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성일보(漢城日報)로 대변되는 언론은 비교적 자유롭게 관리들의 비리를 폭로하는가 하면 가십거리를 여과 없이 내보내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일어로 소통되지만, 경찰청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이다. 돈을 밝히는 일본인 의사는 그러나 민족이 아닌 실력으로 후배를 평가한다. 범인을 당장 잡아들이라는 상부의 지시에 일선 경찰은 조작을 해서라도 범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한일(韓日) 간의 대립과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인은 피억압자요 일본인은 억압자라는 공식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가 상기 예를 든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설정 때문이다. 과거사에 강박된 경성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이 반영된 ‘경성’에 대한 재현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국사라는 매트릭스에 함몰된 채 경성을 바라본다면, 결론은 늘 한가지다. 일제의 마수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억압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원스 어 폰 어 타임’, ‘라듸오 데이즈’, ‘모던보이’에서 묘사되었던 경성이 그랬다. 일제 강점이라는 아픈 과거사를 이제 지워 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지배/ 피지배라는 강압의 역사는 일제 때만 국한 된 것도 아니다. 20세기 초반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국사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과 애환을 획일화하는 우를 범하게 될 뿐이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탐정추리극의 형식을 취한 ‘그림자 살인’는 그런 점에서 앞서 거론한 작품들의 성과를 훨씬 넘어선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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