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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정서와 흥겨운 리듬 절묘한 조화 묘한 중독성
[우리시대의 명반·명곡] 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년 뮤직 런뮤직 上
한국 여성 블루스 보컬의 적자 평가
잡초 같은 강인함으로 희망을 노래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우리의 판소리와 흑인의 블루스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두 가락은 질박한 민초들의 삶의 고갱이를 녹여낸 진솔한 가락이란 점에서 닮은꼴이다. 고된 삶을 반영한 노래는 대부분 슬프다. 하지만 두 장르에 각기 신나는 장단과 리듬이 살아 꿈틀거리는 이유는 삶이 버겁고 힘겨워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은 잡초 같은 강인함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자체가 곧 블루스로 평가받는 강허달림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흥겨운 리듬이 공존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사와 리듬이 절묘하게 합체된 그녀의 노래는 묘한 중독성을 발휘하며 절망이 아닌 희망을 그려낸다. 강허달림은 지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담은 블루스 트랙들을 통해 한국 여성 블루스 보컬의 적자로 평가받는다.

임희숙의 데뷔시절을 연상케 하는 감칠맛과 빌리 할러데이의 처연한 슬픈 바이브레이션과 닮은 그녀의 보컬은 독특하다. 2008년 발표된 강허달림의 1집 [기다림 설레임]은 테크닉만이 넘실거리는 요즘 음반들과 차별적인 삶의 진솔한 향내가 ‘감동’적인 명반이다.

강허달림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강은 아버지 성이고 허는 어머니 성이다. ‘달림’이란 이름은 밤하늘에 떠있는 그 ‘달님’이 아니라 씩씩하게 '달리는' 달림이다. 그녀는 2008년 1집 앨범을 내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무명생활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의 가수다.

그녀는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인 승주군 상사면 용계리 죽전마을에서 태어났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수몰마을이다. 시냇가와 집 뒤에 있던 야산의 대나무 숲은 그녀의 자연친화적 인성을 조성시킨 음악적 DNA들이다.

그녀는 명절 때마다 당산나무 밑에서 열린 ‘동네 노래자랑대회’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부른 꼬마 인기가수였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리듬감각은 동네잔치에서 장구를 치며 흥을 북돋았던 아버지의 한량기질을 되 물림 받은 자연산이다.

가수라는 평생의 꿈을 품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 라디오에서 접한 가수 이선희의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를 듣고 난 후부터. 중학교 때 순천시로 나와 ‘기타 중창반’이 있는 순천여상에 진학한 것도 음악을 배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타를 살 돈이 없어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의 김선정은 처음으로 창작노래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친구다.

시골소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다. 일생일대의 용기를 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기타 하나를 둘러매고 무작정 상경했던 것. 작은 회사의 경리, 아르바이트는 물론 입시학원에서 근로 장학생을 하면서 신문배달을 하며 2년간 서울예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했지만 낙방했다. 좌절감이 컸지만 막 생겨난 서울 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입학했다.

그는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악보조차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서구의 팝과 테크닉을 중시하는 동기들과 달리 자기 스타일의 판소리 발성을 고집했기 때문. 실제는 그녀는 공연 때 마다 자신은 늘 ‘왕따’였음을 고백한다. 학창시절 내내 시험지 답안지 유출 같은 사건이 터지면 무슨 이유에선지 선생님들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수업 중에도 홀로 먼 산을 쳐다보기만 했던 3차원적 감성의 소유자였던 것. 고등학교 때 담임은 그녀를 ‘썩은 사과’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기타실력이 마음이 들어 교류했던 재즈아카데미 동기 김용희의 소개로 이태원의 카페 ‘저스트 블루스’에 오디션을 보러 가 채수용을 만났다. 그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이중산을 능가하는 재야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오디션 후 프로젝트 밴드 풀 문을 결성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12마디 블루스(스탠더드 재즈곡)를 주로 하는 레퍼토리에 곧 공허함이 밀려왔다. 창작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 연주 욕심이 강한 멤버들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또 왕따가 되었다. 이후 밴드에서 독립한 그녀는 오랜 기간 클럽 무대를 거치며 2003년 마침내 관록의 블루스 밴드 ‘신촌 블루스’의 보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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