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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험 노래한 음유시인 이주원
[우리시대 명반·명곡] 따로 또 같이 3집 '내 님의 사랑은' 1985년 서라벌 레코드
'내님의…' 등 주옥같은 포크송 작곡
양희은이 불러 인기… 80년대 대중음악 부흥기 이끌어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한국포크계의 큰 별이 졌다. 향년 61세의 이주원. 1979년 결성한 포크그룹 '따로또같이'의 리더로 80년대에 록밴드 들국화에 필적할 뮤지션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90년대 이후 음악계를 떠났었다. 샹송 가수인 전마리는 그의 부인이다. 그는 생의 마지막을 강화도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부로 마감했다.

아티스트의 창작방식은 각기 다르다. 멜로디를 중시하는 이와 가사를 중시하는 이 그리고 멜로디와 가사를 동시에 비중을 두는 창작자도 있다. 삶의 경험을 노래한 음유시인이었던 ‘따로또같이’의 리더 이주원은 가사에 음악적 중심무게를 두었던 창작자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곧 자신의 삶의 반영이었다. 포크그룹 ‘따로 또 같이’의 3집은 이들에게 진한 존재감을 부여한 최고의 역작이자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을 부흥기로 이끈 포크 록의 명반이다.

이주원의 대중적 인지도는 양희은을 통해 획득되었다. 양희은의 히트곡 '네 꿈을 펼쳐라', '한 사람', '내 님의 사랑은', '들길 따라서' 등은 모두 그가 창작한 주옥같은 포크송들이다. 그 중 '내 님의 사랑은'은 이미 1968년에 창작한 노래다.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노래이기보단 교회 다닐 때 만났던 여학생이나 짝사랑의 대상으로 인해 경험한 외로운 정서를 그려낸 노래였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7년 밴드 블랙스톤을 결성해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소위 미8군 출신 뮤지션이다. 당시 그는 보컬과 베이스 연주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통기타 가수로 변신한 그는 재수생시절에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윤형주, 송창식을 만났고 1971년 한국 포크가수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울YWCA 청개구리에서 양희은, 김민기, 서유석 등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포크 신으로 진입했다.

함께 어울리면서도 음악적으로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의 독자적인 작업방식은 말 그대로 ‘따로 또 같이’였다. 3년 정도 뒤늦게 서울대 체육학과에 진학하면서 YWCA 청개구리에서 만난 양희은에게 히트 넘버를 선사하게 되었다.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이름을 먼저 떨치게 되기까지의 사연이다.

당시 양희은은 이주원의 노래를 불렀다하면 어김없이 히트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주원은 양희은 전속작곡가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주원은 한대수나 조동진처럼 작곡가로 대중적 인지도를 먼저 획득했지만 1976년에 독집 '외로움에'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다. ‘한사람’, ‘내 님의 사랑은’을 비롯해 총 9곡을 담은 그의 1집 앨범은 희소가치로 인해 수 십 만원을 호가하는 콜렉터스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적 정점은 1979년 전인권, 강인원, 나동민과 함께 결성한 4인조 포크 록 그룹 '따로 또 같이'라 할 수 있다. ‘따로 또 같이’는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적 감성으로 80년대 대중과 가슴으로 소통한 음악집단이었다. 이들은 포크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구사했지만 장르를 구정하기 힘든 다양한 음악적 실험까지 선보였다. ‘따로’또‘같이’의 1집은 조동진 1집과 더불어 197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시대 마감적인 의미를 지닌 음반이다.

전인권이 이 앨범에 참여했다. 한동안 공백기를 거치고 전인권이 탈퇴하고 3인 그룹으로 발표된 1984년 2집은 1980년대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알린 예고 탄이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세션, 편곡의 중요성을 확인시킨 한 차원 다른 개념의 선구적 앨범이었다. 객원보컬로 참여한 우순실의 ‘커텐을 젖히면’은 최고의 트랙이다.

강인원마저 탈퇴하고 이주원, 나동민 2인 체제로 1985년에 발표된 3집은 ‘따로 또 같이’가 발표한 4장의 음반 중 당연 베스트다. 들국화 1집과 같은 해에 탄생된 이 음반은 '따로 또 같이'를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중요 뮤지션들로 각인시킨 명쾌한 증명서다.

이처럼 ‘들국화’ 1집과 이주원이 주도한 ‘따로 또 같이’ 3집은 80년대를 대표할만한 명반이라는 공통점과 한국대중음악의 최대 부흥기를 그려나갈 ‘청사진’과 같았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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