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박찬욱의 '박쥐'장르적 관습 벗어난 흡혈귀 영화 새 유형 창조

올 상반기 최대의 화제작인 박찬욱 감독의 ‘박쥐 Thirst’가 전문가 시사회 직후 일주일 만에 전격 개봉했다. 보통 2~3주 정도 여유를 두고 시사회를 하는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의외라 여겨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나쁜 입소문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 관객몰이를 하자는 의도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에 일반시사회 다 생략하고 곧바로 공개에 들어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어쨌든 평론가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분분했던 ‘박쥐’는 개봉 5일 째에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드보이’가 세운 기록을 넘어설 전망이다.

평자들로부터 작가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라고 평가받는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박쥐’의 흥행 여부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르영화와 작가영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오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실험이 ‘박쥐’에 이르러서 한 정점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영화의 성패는 대중관객의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박쥐’는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있을법하지 않은 소재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무엇보다도 눈길을 끈다. 요컨대 ‘박쥐’는 뱀파이어를 메인 캐릭터로 내세우고 있는 유서 깊은 공포영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소재의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종래 국산 뱀파이어 영화들은 외국 영화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번안(案)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부실할 뿐만 아니라 비주체적이고 몰개성적으로. 김수로가 뱀파이어 역을 맡았던 ‘흡혈형사 나도열’(2006)은 그 단적인 예다. 개그맨들이 출연했던 쌈마이 영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알겠지만, 이점에서 박찬욱 표 ‘박쥐’는 전혀 색다르게 다가온다. 일단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박쥐’의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늘 기도 속에서 자신의 육체가 썩어문드러지더라도 주님의 은혜만 받으며 된다는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는 신실한 사제였다. 특히 병원에서 근무하며 일상적으로 환자의 임종(臨終)을 지켜보던 상현 신부는 어느 날 고해성사를 통한 위무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실천적인 사제의 길로 투신하기로 작정하고 외국 생화학 연구소의 피실험자를 자처한다.

그 실험에 참가한 대상자들은 온몸에 수포를 일으키다가 결국 뼈와 살이 타들어가 사망에 이르는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것. 상현은 결국 실험 도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하지만, 정체모를 수혈 덕분에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일종의 부활이었던 셈이다.

위험천만한 실험에 참가했던 신부가 500분의 1의 확률로 소생하여 귀환하자 열혈신도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강림한 듯 상현을 떠받들지만, 그는 남의 피를 흡수해야만 목숨을 지탱할 수 있는 흡혈귀(吸血鬼)에 불과했다. 부지불식간에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이 어렸을 때 교류가 있었던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그로 인한 파국적 귀결이 영화의 핵심 얼개를 이루게 된다.

그러니까 상현이 뱀파이어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모종의 간지(奸智)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직업상 명백한 신부였던 상현이 뱀파이어로 환생하면서 온갖 욕망의 화신으로 돌변을 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이상이 생긴 그에게 우선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일용할 약식(즉 피)과 원초적 본능(섹스)의 해소가 그것이다. 평소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따르던 상현 신부는 당장 두 가지 계명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 번 째 인 “살인하지 말지니라”와 일곱 번 째 인 “간음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야심작인 ‘박쥐’의 특이점은 이 같은 소재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나가는 그의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늘 비평적 관심사가 된다. 요컨대 박찬욱 감독은 뱀파이어라는 아주 낯익고 친밀한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에 끌어 들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아주 사적인 인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상현은 태주의 육체를 갈망하면서 자기가 신부라는 것은 직업일 뿐이며 흡혈귀가 되었다는 것도 일종 질병으로 이해해 달라며 자신의 일탈적 행동을 변명한다. 게다가 그는 종래 뱀파이어들이 희생양의 목덜미에 이빨을 꽂아 피를 빠는 습관에서 벗어나 수혈도구를 역으로 이용하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저 갈증(thirst)에 목마른 박쥐였던 것. 이는 물론 박찬욱 감독의 의도다. 그는 ‘박쥐’를 통하여 그 자신만의 특유한 뱀파이어의 한 유형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할리우드에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는 1980년대 들어 사실상 그 장르적 수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시점을 전후로 하여 세계적으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공포가 확산되었는데, 에이즈야말로 수혈로 전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동종의 공포영화의 복권(復權)을 주도한 두 편의 영화가 있었는데, 프랜시스 코폴라(Francis F. Coppola) 감독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 Dracula’(1992)와 닐 조던(Neil Jordan) 감독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the Vampire’(1994)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신실한 기독교도였던 드라큐라 백작이 어째서 적그리스도가 되었는가를 원작에 충실하여 탐구하고자 했다면, 후자는 오늘 날 여전히 도시를 배회하는 뱀파이어들의 속내를 심층 취재 형식으로 그린 수작들이다. 아직 단언할 수 없지만, 본 평자는 박찬욱 감독의 개인적 취향이 최고도로 농축된 ‘박쥐’야말로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뱀파이어 족보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시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