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교황 선출 둘러싼 종교적 기만 폭로결국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없는가? 댄 브라운(Dan Brown)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의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일종의 추리영화다. 론 하워드 감독은 이미 댄 브라운의 야심작인 ‘다 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를 영화화해서 카톨릭 교단의 거센 비난을 초래한 적이 있었다.

동명의 원작 및 영화에서 예수의 후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을 제기해서 예수의 신성(神聖)을 모독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들 작품들에서는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묘사된 성배(聖杯)가 실제 술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번에 개봉된 ‘천사와 악마’도 교황의 선종(善終)과 선거(일명 : 콘클라베)를 둘러싼 모종의 음모를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시 카톨릭 교단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소재로 삼은 탓에 최첨단을 달리는 세계 최대의 과학연구소(CERN : 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와 10억 신도의 보루인 바티칸 공국이 작품 속에서 대척점을 이루는 무대가 된다. 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에서는 모종의 빅뱅 실험이 진행 중인데, 물리학자 비토리아(아예렛 주어)와 동료 학자 실바노는 이 실험을 통해 강력한 에너지원인 반물질(anti-material)의 개발에 성공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네 가지 요소들(흙, 공기, 불,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제5원소라 할 수 있는 반물질은 지구 탄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쓰면 대재앙을 초래하는 흉기이기도 했다. 이 반물질이 도난당한 시점에서 차기 교황의 유력 후보들인 네 명의 추기경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유일한 단서라고는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상징인 앰비그램(ambi-gram : 양쪽으로 읽을 수 있는 문서) 뿐이었다. 그리하여 교황청은 종교기호학(semiotics of religion)의 권위자인 로버트 랭던 교수(톰 행크스)에게 사건과 관련된 암호해독을 의뢰한다.

이 영화에서 일루미나티는 종교의 비과학성을 알리는 작업에 투신했던 이른바 계몽적 지식인들의 결사체를 의미하는데, 이들이 교황청에 의해 낙인이 찍힌 채 살해되고 수백 년 후 그 계승자들이 복수혈전을 펼친다는 것이 작품의 주된 얼개가 된다. 실제로 일루미나티는 중세 독일의 자연신교(自然神敎)를 신봉한 공화주의의 비밀결사 및 16세기 스페인의 기독교 신비주의 일파 등을 일컫는 용어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파도 일루미나티라고 한다. 요컨대 계몽(illumination)을 뜻하기도 하는 일루미나티는 본래 빛이라는 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 빛과 더불어 교황청이 소멸하리라는 것이 ‘천사와 악마’의 핵심 화두가 되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기피인물로 찍힌 랭던 교수가 사건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는 비토리아와 단짝을 이루어 사건의 단서를 풀어나간다.

전작 ‘다 빈치 코드’에서처럼 박식한 기호학자(semiotician) 답게 ‘계몽의 길’을 따라서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참고로 소설이 쓰인 것은 ‘천사와 악마’가 먼저이나, 영화화는 나중에 되었으므로 극중 교황청이 랭던 교수의 행적에 의구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천사와 악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 빈치 코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다 빈치 코드’가 개봉되면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주된 이유는 우선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팩션(faction) 장르라는 점 때문이었다. 팩션이란 말 그대로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을 결합한 소설형식인데, 여기에서 허구적 요소보다는 팩트가 더 강조됨으로써 소설 및 영화에서 묘사된 내용들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템플기사단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 기사단이 면면히 이어오면서 예수의 후손을 보위했다는 가설(픽션)이 덧붙여지면서 ‘다 빈치 코드’가 논란을 초래했던 것이 아닌가? 한편 외관상 교황 선출과정을 팩트에 입각하여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 그 이면에서 꿈틀대는 종교적 기만을 폭로하고 있는 ‘천사와 악마’는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천사와 악마는 결국 동전의 양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갈릴레오가 종교적 미망을 깨는 계몽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들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는 부분적인 팩트에 휘말려서 영화가 펼쳐 보이고 있는 허구적 세계를 현실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기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신앙과 이성에 관한 정의다. 극중 궁전총관이 랭던 교수에게 신을 믿느냐고 질문한다. 랭던 교수는 머리(이성)로 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가슴(감성)으로도 믿기 힘들다고 대답한다. 학문(과학)을 신봉하는 학자다운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선거를 관장했던 추기경은 랭던 교수가 교황청에 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덕담을 건네는데 랭던 교수는 이 말에도 역시 거부의사를 분명히 한다. 그는 어떤 신적인 섭리(攝理)에 따라 사건을 해결해가는 사도가 아니라 그저 기호의 논리에 따라 사태를 관찰하고 추리했던 일개 학자였던 것이다.

이는 추기경들을 납치하여 살해했던 테러리스트가 악마(사탄)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도그마에 빠진 종교 지도자의 사주에 따른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신의 섭리가 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바로 이 대목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가 있을 터이다. 반전의 묘미는 둘째 치고.

‘천사와 악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을 적대적으로 보고 배척했던 종교적 과오에 대해 새삼 반성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결국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역 자체가 다르므로 비교우위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론 하워드 감독의 전작인 ‘다 빈치 코드’가 원작 소설의 센세이션에 힘입어 영화화가 되었을 때, 막상 원작의 향기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천사와 악마’는 파격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극적 완성도는 전작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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