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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닌 '어미'
[시네마] 봉준호 감독의 '마더'
본능적 야수성으로 새끼를 지키려는 모성





김시무 영화평론가



영화가 시작되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갈대밭 사이에서 다소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이 이상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 것이 보인다.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 여인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연기의 달인 김혜자임은 물론이다. 바로 전 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호연을 보임으로써 그해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던 바로 그분이다.

그분이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마더 Mother’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부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콘텍스트(context)적인 것으로 유사한 소재 및 제목의 영화에 그분을 출연시킴으로써 선행 드라마의 후광을 이어가려는 모종의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다.

이를테면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가 떴을 무렵, 송혜교 주연의 ‘황진이’가 제작됐다. 또한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하여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송되고 있는 시점에서 김민선 주연의 ‘미인도’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는 순전히 텍스트(text) 내적인 것으로 김혜자가 과연 드라마와는 차별되는 독특한 캐릭터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다. 요컨대 ‘엄마가 뿔났다’와 ‘마더’ 간에 얼마만한 거리가 놓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양자 간에 동일성이 크면 클수록 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반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영화는 성공할 터이다.

본 평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 만약 이 영화가 자타가 공인하는 김혜자의 연기력에만 의존한 캐릭터 중심의 영화에 머물렀다면, 영화사적 가치와 의미는 크게 반감됐을 것이라고 예단을 했었다. 물론 이 같은 나의 기우는 아주 간단히 해소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작품 간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연기 자체부터가 전혀 달랐다. 다 알다시피 ‘마더’는 한 엄마가 몸뚱아리만 컸지 정신연령은 여전히 미숙아인 한 아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아들이 동네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체포되어 수감되자, 엄마가 나서서 아들의 무죄를 밝혀내려고 불철주야 동분서주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솔직히 이정도의 이야기꺼리면 이미 정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들은 물론이고, 구명을 책임진 유능한 변호사마저도 아들을 진범으로 확신하고 있는 마당에 아들의 누명을 벗어주고 감옥에서 빼낼 중차대한 임무를 띤 유일한 사람은 바로 엄마밖에 없으니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엄마는 무슨 수로 범인을 찾아낸단 말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 다 알 수 있다.

‘마더’에서 김혜자가 맡은 엄마 역 혜자는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사실 착한 엄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김혜자는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엄마가 어느 순간 자신이 해온 역할을 돌아보면서 회의하고 반항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 현모양처의 전형을 연기했었다.





이따금 가족들한테 실망하여 화도 내고 심지어 가출까지 감행하지만, 그래도 속내는 모성애(motherhood)로 똘똘 뭉친 정겨운 엄마였다. 하지만 ‘마더’에서 그런 기존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역할모델까지도 폐기된다. 대신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적 야수성을 간직한 어미로서의 역할만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렇다.

엄마와 어미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의 차이만큼의 간극이 ‘엄마는 뿔났다’와 ‘마더’ 사이에 놓인 차별성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엄마란 사회적으로 순치되고 학습된 모성애의 일반화된 표현이라면, 어미란 새끼를 낳은 동물의 암컷이란 뜻으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야생적 사고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 야수성을 김혜자는 예의 그 탁월한 연기력으로 섬뜩하리만치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어미의 야수성을 일깨워준 새끼 역할을 맡은 원빈은 또 어떤가? 영화 속 도준은 스물여덟 살이지만, 정신적 미성숙으로 늘 따돌림을 당하는 가여운 청년이다. 이 어수룩한 청년 역을 샤프한 캐릭터 역할을 주로 맡았던 원빈이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아이러니컬하게 여겨지지만, 그는 나름대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여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도준의 캐릭터가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2003)에서 최초 용의자로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치렀던 백광호 캐릭터의 환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의외성은 더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영화 ‘마더’는 백광호를 따로 분리해내어 그의 개인적 삶을 새롭게 재구성해내었다고 해도 될 만큼 전작인 ‘살인의 추억’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백광호의 비극적인 삶과 도준의 희비극적 삶의 여정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차이와 반복이라고 할까. 극중 혜자와 절친한 관계에 있는 사진관 주인인 미선(전미선)의 표현대로 도준이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는 순박한 청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끼의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야생의 청년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어미와 새끼의 야수성 속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내장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마더’에는 영화적 미덕이 또 있다. 영화의 매혹 중 하나인 정교하고 디테일한 공간 창조(creative geography)의 묘미가 바로 그것이다. 봉테일(즉 디테일에 능한 봉감독)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컷이 바뀌면 도(즉 지리적 공간)가 바뀔 만큼 전국적인 로케이션을 통하여 매우 사실적인 공간을 연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공간 속에 생동하는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도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도준의 둘도 없는 친구지만 왠지 믿음은 가지 않는 진태(진구), 혜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만큼 친근함을 과시하지만 사감에 얽매이지 않는 비정한 형사 제문(윤제문), 그리고 원조교제로 온갖 구설수에 올랐다가 살해당하는 비운의 소녀 아정(문희라) 등등은 조연급 연기자들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놀라운 연기 앙상블이다. ‘마더’에는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급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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