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명반·명곡] 어떤 날 1집 '1960 1965' 1986년 서라벌레코드격변의 80년대 차별화된 음악 선보여포크록 기반 재즈·팝 요소 가미… 새로운 녹음 편곡에 세션 개념 정립

정치사회적 암흑기였던 70년대는 김민기, 한대수, 신중현이라는 음악영웅을 탄생시켰다. 온 나라가 민주화의 열기로 들끓었던 80년대는 어땠을까? 더욱 다채로운 장르와 음악성으로 무장한 뛰어난 뮤지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명곡과 명반을 쏟아내며 오버와 언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한국대중음악사상 최대의 부흥기를 일궈냈다.

구호소리가 드높았던 격동의 80년대와 완벽하게 차별적인 음악으로 존재감을 인정받은 남성듀오가 등장했다. 느릿하고 정적인 이들의 음악은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맑은 감성에 덧칠된 세련된 연주와 새로운 녹음방식으로 막강한 음악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주인공은 단 2장의 정규앨범으로 대중음악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조동익과 이병우의 프로젝트 남성듀오 ‘어떤날’이다.

90년대 최고의 세션맨이자 편곡자로서 명성이 높은 조동익은 한국 포크음악의 거장 조동진의 친동생이다. 이병우는 말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다. 1984년 후배가수 최진영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팻 메스니의 음악을 좋아하는 닮은 꼴 음악성향에 끌려 조동익이 조동진에게 줬던 곡 <어떤날>을 팀명으로 정해 뭉쳤다. 1985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 전시회 I’에 실린 ‘너무 아쉬워 하지마’는 이들의 첫 음악적 접점이었다.

멤버들의 태어난 해를 타이틀로 내세운 이색적인 1집 ‘1960 1965’는 신인의 공력이라 믿기 힘든 음악완성도 로 ‘젊은 거장’이란 어마어마한 별칭을 대중에게 헌사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격변의 시대에 탄생된 이 앨범이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분위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잘 다듬어진 편안한 트랙들은 일반 대중가요에 익숙한 청자들에겐 십중팔구 깊은 잠으로 인도할 ‘자장가’로 평가절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의 맑고 정제된 새로운 사운드는 불후의 명반이라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어떤날의 1집은 애절한 보컬이 중시된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널찍한 간극들 둔다. 연주와 편곡에 무게중심을 둔 서구의 팝과 록에 부러움을 느껴본 청자라면 이 앨범을 통해 우리 음악의 수준에 자긍심을 가질 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다. 더욱 깔끔해진 음악적 공력을 선보였던 2집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폭넓은 대중적 파급력을 획득하지도 못한 이들의 1,2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순위에 4위와 11위에 폼 나게 이름을 올렸다.

어떤날의 음악은 장르구분이 쉽지 않다. 소박하고 맑은 감성이 느껴지는 포크 록을 기반으로 퓨전 재즈와 팝 적인 요소가 다양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총 9곡이 수록된 1집은 ‘하늘’, 1년 먼저 들국화 1집에 수록된 ‘오후만 있던 일요일’등 이병우의 창작곡 5곡과 ‘오래된 친구’, 김장훈이 리메이크한 ‘그날’ 등 조동익의 창작곡 4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지금 그대는’과 ‘겨울하루’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보컬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트랙들이다. 티 없이 맑은 소년의 일상을 조용하게 속삭이는 것 같은 이병우의 곡들은 하나같이 포크 특유의 질감이 가득하다. 반면 퓨전재즈와 록을 기조로 한 조동익의 곡들은 이병우의 수려한 기타연주를 통해 깊은 여운이 담긴 다양한 음악어법을 제시한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간혹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같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통해서 수록곡들이 나오긴 했지만 입소문을 통해서 앨범의 존재가치가 전파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급력을 발휘했고 동시대의 그 어떤 뮤지션들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후대에 발휘했다.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방식의 녹음, 편곡 그리고 세션의 개념정립이라는 빛나는 업적 때문이다.

어떤날은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해체했다. 지금은 긴 휴면기에 들어간 조동익은 김광석, 안치환, 장필순 등 80-90년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수작들을 직조해낸 최고의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날렸고 이병우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로 우뚝 서 있다.



글=최규성 대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