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마그마 1집 '해야' 1981년 히트레코드창작곡 '해야'로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샤우팅 창법 한국 헤비메탈사 이정표 세워

1975년 군사정권이 날을 세웠던 사회정화운동은 곧 대중음악의 암흑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전조였다. 2년 후 대안적 개념으로 기획된 대학가요제는 캠퍼스 밴드 전성시대가 열리는 시금석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캠퍼스 밴드들이 구사한 말랑한 사운드는 록과 가요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획득했다. ‘긴급조치’로부터 살아남은 록 밴드 출신 기성가수들도 음악적 실험과 시대적 정서를 담은 카랑카랑한 사운드가 아닌 트로트 고고리듬을 차용한 ‘록뽕’이라 불린 퇴행적 사운드로 일관했다.

음악적 혼돈기인 1980년, 혜성처럼 등장한 캠퍼스 록밴드 마그마는 이전에도 들을 수 없었던 새롭고 강력한 음악으로 80년대가 헤비메탈 전성시대로 채식될 것임을 예고했다.

헤비메탈 록밴드 ‘마그마’는 서울대, 연대생으로 구성되었던 3인조 라인업이다. 단 한 장의 독집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들이 들려준 실험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는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도 찬사를 보낸 차별적 굉음이었다. 리드보컬 조하문은 연세대 2학년 때 5인조 록그룹 '아스펜스'를 결성해 각종 대학가요제에 출전했지만 번번이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79년 한양대에서 열렸던 대학가요축제 때는 창작곡 연주 규정을 모르고 외국 곡을 준비해 실격을 당했고 그해 가을, 해변가요제의 후신인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도 2차 예선에서 탈락했었다. 밴드 아스펜스의 해체 이후 연고전 응원연습 때 만난 김광현과 4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이들은 연습과정에서 3인조로 재편되었다.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는 이들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첫 무대다. 출전을 앞두고 팀 이름이 없어 3일 동안 다방에 모여 고민을 했다. 지질학을 전공한 조하문은 ‘폭발 일보 직전의 뜨거운 바위 녹은 물’을 의미하는 ‘마그마’가 자신들의 잠재력과 하드 록의 폭발적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고 제안해 팀명이 정해졌다.

출전 곡은 박두진의 시를 개사한 조하문의 창작곡 ‘해야’. 그해 대학가요제는 강력한 하드 록으로 한 바탕 소란을 벌인 참가 번호 10번 마그마의 독무대였다. 수려한 외모에 바이브레이션이 가미된 고음의 폭발적인 샤우팅 창법을 구사한 조하문과, 헤비한 기타 리프를 선보인 김광현의 신들린 연주는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결과는 은상 수상. 대상 수상을 당연시했던지라 장내는 술렁거렸다. 연주와 노래 실력은 최고였지만 순수 대학생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전위적인 무대 매너가 문제되었던 것. 그래서 대상은 경쾌한 포크계열의 노래 ‘꿈의 대화’를 부른 연세대 의대 듀엣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새로운 음악을 소음 정도로 생각했지만 당대 젊은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강력했다. 실제로 ‘해야’는 가요제 이후 연세대의 공식응원가로 널리 불리어졌다.

유명 캠퍼스밴드로 떠오른 마그마는 이후 수많은 공중파방송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획득했지만 직업 가수로 활동할 마음이 없었다. 졸업 전에 기념으로 음반을 남기자고 멤버들은 합의했다. 1981년에 발표된 마그마 1집은 대학가요제 무대를 뒤집어놓은 이들의 공력이 맛보기 수준이었음을 확인시킨 한국 록의 명반이다.

국내외 록음악 마니아들이 이 앨범에 보낸 열렬한 찬사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33위에 랭크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1집에는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연주곡 ‘탈춤’을 제외한 모든 곡은 조하문의 창작곡이다. 김광현은 ‘탈춤’에서 적절한 이펙터 활용을 통해 사이키델릭 곡 어법에 충실한 탁월한 연주력을 구사했다.

조하문의 도발적인 샤우팅 창법이 압권인 ‘아름다운 곳’은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시킨 명곡이다. 원제목은 ‘4차원의 세계’지만 심의에 걸려 제목이 바뀐 ‘잊혀진 사랑’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다.

기괴하고 묵직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타의 추종을 불허한 샤우팅 창법은 한국 헤비메탈 음악사에 이정표를 그었다. 마그마 1집은 그들이 왜 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 밴드로 회자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