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도미니크 아벨·피오나 고든·브루노 로미 감독의 '룸바'연극적 아이디어와 연기, 영화적 비주얼 겨합한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

보기엔 만만하지만, 사실 코미디는 매우 비정한 장르다. "관객을 웃기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이상, 팔짱끼고 스크린 앞에 앉은 다양한 취향의 관객과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눈물은 강요할 수도 있지만, 웃음은 자발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매우 똑똑해야 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들이 꼭 필요한 순간,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작동하다가, 웃음이 잦아들 때 즈음 재빨리 사라지기를, 러닝타임 내내 반복해야 한다. 잽으로 끝내 판정승을 얻어내는 권투선수인 셈이다.

절제도 필수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 사람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면 김이 빠지듯, 코미디 영화도 스스로 잔뜩 웃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관객은 허탈해진다. "완벽한 바보를 연기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천재다"라는 말은 충분히 일리 있다. 벨기에 산, 프랑스 발 코미디 <룸바>도 '천재과'에 속한다.

이 코미디 영화엔 한껏 과장된 표정연기도, 야심차게 한 방을 노리는 톡톡 튀는 대사도 없다. 대신 만국 공통어인 음악과 몸짓, 참신한 아이디어와 사랑의 춤 룸바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피오나(피오나 고든)와 체육교사인 돔(도미니크 아벨)은 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다. 이들이 본업보다 더 열성을 바치는 취미는 룸바. 눈맞춤, 입맞춤이 특기인 부부 댄서는 동네 룸바 경연대회 수상을 목표로 맹연습을 펼친다. 드디어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를 잃는다. 로맨티스트 돔의 기억과 열정적인 댄서 피오나의 한 쪽 다리.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운명은 막무가내 불법추심원처럼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만 매몰차게 빼앗아 달아난다.

보통의 '춤'영화들의 드라마는 대회를 향해 달려간다. 춤에 재능이 있는 주인공이 숨은 스승의 눈에 띄고, 맹연습을 거쳐 결국 대회에서 감동적인 무대를 펼친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주인공들이 날듯 놀듯 춤을 추는 무대. 하지만 <룸바>는 정 반대다. 주인공 피오나와 돔은 시작부터 룸바에 반쯤 미쳐 있다.

돔과 피오나는 분명 '룸바 교본'에 그려져 있을 것 같은 정확한 동작을 보여주며 슬슬 웃음의 발동을 건다. 예의바르고 소심한 피오나와 천진난만하고 다정한 돔이 룸바음악만 들리면 180도 변신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때 즈음, 교통사고가 터진다. 기억을 잃은 남자와 한 쪽 다리를 잃은 여자. 코미디 주인공들을 지독히 비극적인 상황에 몰아넣고, <룸바>는 진짜 승부를 시작한다.



웃음을 잃은 사람들의 코미디 영화이자, 춤을 출 수 없는 댄서들의 춤 영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해 성공한 '천재'들은 벨기에의 다이나믹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3인방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브루노 로미다.

15년간 연극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이들은 자신들의 두 번째 영화 프로젝트 <룸바>에서 연극적 아이디어와 연기를 영화적 비주얼과 결합시켜 독특하고 신선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완성했다. <룸바>가 2008년 프랑스에서 개봉했을 때, 평단은 프랑스 희극영화계의 대부 자크 타티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

강압적인 환경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데다, 여타의 프랑스 코미디 영화와는 달리 전혀 수다스럽지 않다는 점이 그랬다.

주인공들 대신 대사를 전담한 건, 음악 '룸바'다. 리드미컬한 타악기과 반복적인 멜로디가 섞인 라틴 아메리카의 춤곡 룸바는 처연한 장면에선 어깨를 들썩이게 흥을 돋구다가도, 슬랩스틱이 펼쳐지는 순간에도 아련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침묵과 무표정의 댄스 코미디 <룸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직선의 영화가 아니라 매 시퀀스가 짧은 콩트의 모음집 같은 수평적 영화다. 빼어난 연기 뿐 아니라 놀라운 연출력을 선보인 세 감독의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건 이 부분이다.

마치 그림처럼 평평한 배경 화면 위에 주인공들이 목각인형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장면에선 꼭두각시 인형극을 보는 듯 하고, 잠시 시간이 멈춰 선 듯 영화가 정지하는 장면에선 원색과 파스텔 톤이 섞인 인상파 화가들의 화폭을 보는 듯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슬랩스틱 연기조차 절도 있게 표현하는 배우들이다.

마치 '각진 모딜리아니 그림'처럼, 무표정한 긴 얼굴과 더 긴 팔 다리를 가진 배우들이 흐느적거리는 듯 절도 있게 팔 다리를 움직일 때면, 마냥 웃을 수 없는 처연함이 배어나온다. 이 막무가내 해피엔딩 코미디 <룸바>를 응원하게 되는 건, 주인공들이 고난을 '이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견디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고난이 끝났기에 웃는 사람은 없다. 고난이 끝날 때까지 웃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해주는 <룸바>는 웃음의 여운이 긴 코미디 영화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