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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폭력의 시대를 해부하다
'제1회 키노아이 감독열전'
'삼거리…' '아메리칸 좀비' 등 감독들의 다양한 시선 보여줘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일정 수의 관객을 늘 담보할 수 있는 건, 화면에서 보여지는 통쾌한 ‘폭력의 미학’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폭력이 픽션의 세계를 능가할 때, 영화의 폭력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때의 폭력은 관객에게 다른 종류의 공포와 서스펜스로 다가온다. 지금 스펙타클로서의 ‘폭력 영화’들이 예전만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해부터 대중이 상업영화 대신 독립영화에서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업영화가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폭력은 이제 관객에게 참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사랑의 면면이 수없이 많고 인간 본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폭력도 문명과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같은 폭력의 속성을 조명하는 것은 전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업영화보다는 역시 독립영화 특유의 날선 시선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부터 8월 5일까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키노아이’가 개최하고 있는 ‘제1회 키노아이 감독열전’에는 이 시대의 폭력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독립영화만의 장점이 잘 살아있다. 그동안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라고 하면 자연스레 ‘인디스토리’라는 이름만 떠올랐지만, 지난해 ‘키노아이’와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 ‘시네마 달’이 문을 열면서 관객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하늘을 걷는 소년>, <슬리핑 뷰티>, <가벼운 잠> 등을 시작으로 독립영화의 새로운 창구로 나선 키노아이는 이번 감독열전을 통해 이 시대의 폭력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몇 번의 장편작업을 거친 감독들의 작품에선 예리한 통찰 못지않은 상상력이 빛난다. 흥분하면 성기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잘 알려진 남기웅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동네 건달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괴짜 과학자의 도움으로 ‘성기 총’을 장착한다. 사정을 하면 정액 대신 총알이 발사되는 총 덕분에 주인공은 복수에 성공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싶게’ 만드는 성능 때문에 의지와 무관한 살인을 저지르면서 비극이 발생한다. 남성성과 주류 사회를 향한 시선이 담긴 이 작품은 통제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을 폭력의 집약체인 ‘성기 총’에 집약시켜 B급 감수성으로 풀어낸다.

필름메이커 매거진’(Filmmaker Magazine)에서 ‘독립영화계의 신인 25인’으로 선정하는 등 현재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레이스 리 감독은 <아메리칸 좀비>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그려낸다. 전작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에서 소수 인종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를 시도했던 그는 이 작품에선 그들을 ‘좀비’로 표현하며 또 한 번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의 시선을 대변한다.



1, 2-<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3-<아메리칸 좀비>
4-<세리와 하르>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좀비’는 사랑과 꿈, 예술혼 등을 가진 복합적인 존재들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좀비’로 몰리는 소수자들의 정체성과 그 부조리에 대한 항변을 기발한 페이크 다큐로 코믹하게 비꼬고 있다.

장수영 감독의 <세리와 하르>는 한국판 ‘좀비’들의 이야기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바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베트남 출신의 엄마를 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세리’와 필리핀 불법 체류자 아빠와 함께 불안 속에서 사는 ‘하르’.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이야기는 ‘법’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

사회의 편견과 법의 폭력 앞에 무력한 이들은 박세리처럼 유명인이 되거나(세리), 주민등록증을 받아 당당히 사는 것(하르)을 꿈꾸지만 한국사회는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장수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문화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기를 권하고 있다.

한편 이서 감독은 장편데뷔작 <사람을 찾습니다>로 인간 사이의 권력관계와 지배관계를 비틀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극한까지 끄집어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장편경쟁부문 최우수상인 ‘JJ-STAR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등장하는 지적 장애인에 대한 반인륜적 폭력을 보다 충격적으로 다룬다.

핍박을 넘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지적 장애인과 그를 학대하는 ‘개 같은’ 인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나브로 역전되고 만다. ‘개를 찾습니다’로 시작했던 영화는 어느새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말하며 상실되고 있는 이 시대의 ‘인간성’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첫 번째 해를 보내고 있는 ‘키노아이 감독열전’은 이번 상영에서 딱히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들만을 선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를 반영하고 싶어하는 독립영화와 작가들의 예리한 시선은 층위마저 다양해진 폭력을 포착하고 이를 다시 세상에 되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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