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영화 '바보들의 행진' OST 골든포크 앨범 11집 1975년 신세계레코드'고래사냥' 젊은 세대의 주제가로판매금지 족쇄 해적판으로 풀며 송창식 가수왕 등극

바다로 향하는 완행열차 속에서 통기타를 치며 목청 높여 노래했던 70-80년대식 낭만은 당대 젊은 세대만의 차별적 특권이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춘천이나 먼 동해안까지 가는 열차 안은 공히 통기타와 노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열기가 오죽했으면 여름 청량리역은 압수된 통기타들로 산을 이루는 진풍경까지 연출했었다.

푸른 바다는 입시에 얽매이고 보수적인 사회의 통제에 숨 막혔던 당대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또한 야영장 텐트 앞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수많았던 별들과 모닥불에 둘러앉아 신나게 불렀던 캠프송들은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들에겐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되었다.

무수한 여름 명곡 중 송창식의 <고래사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노래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합창하는 순간, 이미 여행의 흥분은 온 몸을 휘감았고 시공을 초월해 하나가 되었다. 금지의 족쇄가 채워졌기 때문일까, 저항의 통쾌함까지 더해졌다. <고래사냥>은 신곡임에도 신세계레코드의 시리즈 음반인 ‘골든 포크 앨범 11집’으로 발매되었다. 당대의 시리즈 음반에 대한 선호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포크와 록 그리고 팝 음악이 주류를 점령했던 70년대는 시리즈 음반 전성시대였다. 유니버샬의 ‘별밤에 부치는 노래’, ‘영 패밀리’, 신세계의 ‘골든 포크 앨범’, ‘골든 히트앨범’, 오아시스의 ‘영 페스티발’, ‘포크 페스티발’, ‘팝 페스티발’, ‘톱 히트송’, ‘히트송 선집’, 힛트의 ‘포시즌 영 패밀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가족’, 지구의 ‘영 포크앨범’ 등은 당대 젊은 세대를 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대표적 시리즈 음반들이다.

한 가수의 노래만 수록된 독집보다는 소위 컴필레이션 음반의 인기는 그때나 요즘이나 여전하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백화점 식으로 많은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OST로 제작된 이 앨범은 연주곡 포함 총 10곡이 수록되었다. 영화의 25만 관객 대박행진과 더불어 음반 역시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지만 곧 레코드가게의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30분 분량이 사전검열에서 잘려나간 영화의 운명처럼 음반도 판매금지 철퇴가 내려졌던 것.

장발 단속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송창식의 <왜 불러>와 자살 장면에서 절규하듯 흐르는 <고래사냥>이 대학가 시위현장에서 자주 불려지자 공륜에 의해 금지되며 잠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주제가로 떠오른 노래들은 이 저주받은 걸작을 해적판으로 되살리는 마력을 발휘했다.

공식적인 공륜의 금지사유는 ‘시의에 맞지 않음’이었다. 하지만 군 입대를 기피하고 장발단속에 응하지 않고 도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곧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유와 가사 중 ‘고래 잡으러 가자’는 내용이 대통령을 지칭해 금지되었다는 소문이 난무했다.

하길종 감독은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혀 정보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당시 가수분과 위원장에게 폭행까지 당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송창식의 주옥같은 명곡 <고래사냥>, <왜 불러>, <날이 갈수록>이 전편에 흐르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암울한 시대현실을 자조적이면서도 경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7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장발단속, 음주문화, 미팅, 무기한 휴강, 캠퍼스, 군 입대 풍경 같은 70년대 청년문화가 다채롭게 녹아있다.

주인공 병태의 친구 영철이 절규하는 <고래사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동해바다 절벽 위에서 파란 물로 뛰어드는 장면과, 영자가 입영열차 창문에 매달려 키스하는 장면은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1975년 중요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대마초파동에 연루되어 활동을 중단했을 때 송창식은 이 음반의 히트로 그해 MBC 가수왕으로 등극했다. 그의 노래는 시대를 대변한 진솔하고 파격적인 양식으로 70년대의 문화아이콘으로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획득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