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시네마디지털서울 집행위원장CinDi 도쿄, 베이징 등 만들어 아시아 전역서 동시 진행하는게 목표

지난 18일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만난 정성일 집행위원장은 올해 시네마디지털서울의 경쟁작 목록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프로그래머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한 평가였다.

올해 “쏟아져 나오다시피”한 아시아의 훌륭한 디지털영화 중에서 추리고 또 추린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영화가 진화하고 도달한 지점들을 짚으며 그는 종종 “발견했다”거나 “경이롭다”는 표현을 썼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한국디지털영화의 언어가 다른 아시아 국가의 그것보다 모호하다고 비평했다.

그래서 올해에는 지난 10년간 한국디지털영화를 정리하는 섹션을 준비했다. 디지털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한번도 이 영화들을 체계적으로 돌아보거나 심도 깊게 토론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영화에서 ‘디지털영화=저예산영화’라는 공식이 아직도 공고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제작비 때문에 디지털을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영화에서도 디지털영화가 주를 이루는 시대가 올 것이 라는 뜻인가.

나 스스로가 LP가 CD로 급격히 대체된 변화를 겪었기 때문인지 디지털영화로의 전환도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년에 CGV와 메가박스 등이 극장 체인이 상영 방식을 디지털로 바꾼다. 필름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정해놓은 목표가 있나.

대부분의 영화제는 열리는 지역을 이름 앞에 내세우는데 CinDi는 ‘서울’을 뒤에 뒀다. 이유가 있다. CinDi 도쿄, 베이징, 홍콩 등 형제 영화제를 만들어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지리적 경계가 중요했던 20세기적 사고방식을 디지털 기술로 극복한다는 의미다.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문제는 비용인데 그 부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마다 다른 검열 제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사법적, 정치적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각국 심사위원단이 각자의 수상작을 뽑으면서 디지털영화의 비전과 감독들의 재능을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영화제를 지향한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이 영화의 개념도 변화시켰나

내가 디지털 기술의 등장을 반기는 것은 이를 통해 비로소 영화에 대해 개념적, 철학적, 존재론적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문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것은 그 개념이 시, 소설, 에세이 등의 여러 양식들을 점유하고 대표하고 있어서다. 각 양식의 가능성이 곧 ‘문학’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film’이라는 단어로 불렸던 데에서 알 수 있듯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단어였다. 철학적으로 사유하기에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가 필름과 디지털영화 두 가지로 갈라지면서 이 개념은 확장되고 질적으로 전환해 비로소 예술적 질문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만난 영화 중 스스로의 '디지털영화' 개념을 깨고 나간 작품이 있나.

디지털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이뤄낸 사례는 자오 리앙 감독의 <고소>라는 영화다. 정부에 청원을 하러 온 사람들을 13년 동안 찍어 중국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원맨밴드 영화’인 셈이다. 디지털 매체가 물리적 시간 속에서 이미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영화가 등장한 후 나타난 신기한 점 중 하나는 롱테이크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새로운 롱테이크의 개념이 발명되고 있다. 예를 들면 처음부터 어떤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찍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럴 때 디지털 카메라라면 세워 둔 채, 원하는 리액션이 나올 때까지 진행할 수 있다. 그 순간을 4시간째 얻으면 이전의 촬영분은 버리는 것이다.

이는 앞의 3시간59분을 지나온 새로운 롱테이크의 가능성을 실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의 작법, 과정이 변하고 있다. 디지털 영화에서는 필름 영화에서는 없었던 순간들을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호수길> 같은 경우가 그렇다.

<호수길>은 한국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문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액션 다큐멘터리가 많았다. 주장을 담아내고 행동을 따라가는. 필름 다큐멘터리는 참거나 기다릴 수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디지털 다큐멘터리는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림을 배움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순간까지 다가갈 수 있게,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는 명제는 좀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편집 등 기술적 문법 때문에 시간의 예술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시간의 누적적인 두께를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침점의 쇼트’에서 발견한다.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는 원뿔의 침점과도 같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