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인권영화제' 등 심사탈락 고배… 기념사업엔 관심

1-작년 넥스트플러스여름영화축제 참여한 예술영화전용관 미로스페이스
2-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3-웹진 넥스트플러스
4-작년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 포스터
5-인디포럼 2009 포스터
6-제13회인권영화제

<워낭소리>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독립영화 개봉 지원과 예술영화전용상영관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아직 빛을 못 보았을지 모른다. 다양성영화 감독과 관객에게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나마 영화진흥위원회가 멍석을 깔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독립영화 개봉 지원사업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이후 다양성영화의 멍석을 거두는 영진위의 손길이 바빠졌다.

2009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 불발

지난 12일 한국예술영화관협회는 ‘2009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에 불참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는 미로스페이스, 필름포럼, 스폰지하우스 등 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 소속된 전국의 예술영화관과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 등 다양성영화 전용관에서 매년 열려온 일종의 다양성영화제다.

일정 기간 동안 고전 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영화, 애니메이션영화 등 일반 상영관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들을 모아 상영한다.

한국예술영화관협회는 공동 주관처인 영진위의 진행이 원할하지 못해 지난 14일부터 2주간 열리기로 계획된 이 행사의 개최 시기가 연기되고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라고 밝혔다. 한국예술영화관협회의 최선희 사무국장은 “영진위 측에서 합의된 날짜를 지키기는커녕 정확한 개최 시기도 알려주지 않아 이 행사를 고려해 프로그래밍을 해온 극장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협회에 소속된 한 극장 관계자는 “지난 4월 1차 회의를 통해 올해 행사의 개요를 잡아놓은 상태였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세부적인 운영 사항이 결정되지 않아 ‘여름’ 영화축제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이 사업 담당자는 “행사는 예정된 대로 진행하겠다”며 “다음주 초 간담회를 갖고 극장들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 극장별 프로그램 기획과 작품 수급, 홍보 등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할 때 행사가 열린다고 해도 연말에나 가능하다.

올 여름 다양성영화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가 서울뿐 아니라 지역을 순회하는 행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영진위와 극장 간 합의 부재가 원인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극장들은 영진위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일처리가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영진위는 지난 3월 기존에 해왔던 대로 행사가 열리는 아트플러스 소속 극장과 관련 단체만 신청할 수 있는 지명경쟁입찰을 통해 아트플러스 소속 극장의 연합체인 한국예술영화관협회를 사무국으로 선정했다. 4월에는 참여 극장들과 기획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6월에 갑자기 공정성을 이유로 기존의 선정 결과를 뒤엎고 영화 관련 단체는 어디든 신청할 수 있는 공개입찰 방식으로 재입찰을 했다.

영진위 측은 “규정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예술영화관협회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선희 사무국장은 “이 행사의 특성상 사무국은 작품 수급에서 홍보, 상영까지 전과정을 다 맡아야 하는 만큼 전문성이 필요하다. 행사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지난 행사를 운영했던 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 맡겨야 한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개입찰이 최선의 결과를 담보한다는 보장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가 영진위의 단순한 지원 사업이 아닌 다양성영화 전용관들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영진위의 다양성 영화 배급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중요 독립영화제 소외된 영진위 지원사업

다양성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는 소규모 영화제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영진위의 2009 영화단체사업지원 심사결과는 이들 영화제를 지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디포럼’과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대표적인 다양성영화제들이 탈락했다.

각각 13회에서 15회를 맞는 영화제들이다. 인디포럼의 프로그래머 윤성호 감독은 “인디포럼은 부산국제영화제보다 더 오래된 독립영화제다. 웬만한 독립영화감독은 다 거쳐갔다. 이렇게 전통과 실적이 있는 영화제를 지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영화문화를 풍성하게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이자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 역시 “관련된 독립영화단체들이 적은 예산으로 고생하며 이끌어온 영화제들이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영진위의 판단을 비판했다. 이들 영화제가 사업 내용이 아닌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가 심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영화인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기존의 사업들이 탈락한 기준이 형평성 있게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정치적 이유가 있다면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영화제가 지원 받아 왔던 몫은 신생 영화제에 돌아갔다. ‘대한민국 어린이, 청소년 연기대상’, ‘제1회 2009 왓이즈시네마 페스티벌’, ‘제1회 S3D 영화제’, ‘제1회 한국영화기자협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 ‘제1회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등 새로 시작하는 영화제들이 지원 대상이 됐다.

이중 시상식 형식의 영화제들은 영화 상영 자체와 관련이 없고, ‘제1회 S3D 영화제’와 ‘제1회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는 각각 3D영화와 초단편영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다양성영화의 통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양성영화 대신 기념사업

올해 들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진위에 제기된 핵심적인 비판 중 하나는 ‘비전과 원칙이 없다는 것’이지만 다양성영화를 유통 배급하는 데에 큰 뜻이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념사업’에 쏟는 영진위의 관심이다. 지원하는 정책사업 5개 중 4개가 기념행사와 시상식이다. ‘영화인 명예의 전당 헌액’과 ‘대종상 영화제’, ‘춘사대상영화제’는 작년에 비해 지원금도 올랐다. 신생 단체인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지원 신청한 ‘국제영화기자 네트워크결성과 한일영화기자세미나’, ‘한국영화기자협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 ‘연간지 ‘영화기자’ 발간’ 사업 중에서도 시상식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문화조성팀의 최원규 과장은 “지원하는 시상식의 갯수나 전체 사업에서의 비율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모든 사업은 그 성격을 종합적으로 보고 지원한다”고 말했다.

영화인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시상식 등의 일회성 행사보다는 지속성 있는 문화 사업에 지원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디포럼은 다음달 초 영화제를 여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한 일일호프 형식의 ‘채무파티-그렇다면 십시일반’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최선희 사무국장은 “영진위 사업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아서 극장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 다양성영화 지원 확대 공염불 아니길"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최선희 사무국장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는 영진위의 다양성영화 유통 배급 지원을 상징하는 사업이었다

이 축제는 다양성영화와 상영관 모두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넥스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 축제 외에도 아트플러스 기획전 지원, 공공라이브러리 판권 구매 지원, 다양성영화 홍보 마케팅 지원, 격주간지 '넥스트 플러스' 발간, 홈페이지 운영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사업비 삭감으로 거의 중단된 상태다. '넥스트 플러스'는 웹진 형태로 발간되고 있다. 원래는 다양성영화 관객이 전체 영화관객의 5%에 이를 때까지 진행되기로 했었던 것이다.

지금 영진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뚜렷한 지향점과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다양성영화에 대해서도 지원 확대를 공언했는데 실제 수행하는 사업 내용과는 맞지 않는다. 또 극장 등 영화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이번에도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공식적인 해명이 없었다.

아트플러스, 넥스트플러스는 단순한 지원 사업이 아닌, 영진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장기 사업이었다.

하지만 영진위 직원들은 순환보직제이기 때문에, 담당자가 바뀌는 바람에 연속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아트플러스의 필요성에 대해서조차 의견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문화조성팀이 문화관광부, 감사원, 기획재정부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사업을 축소해야 한다고 설명하더라. 우리 생각엔 영진위는 문광부 산하에 있더라도 특수 단체에 가까워 오히려 윗 제도를 설득하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 같다.

강한섭 위원장의 사퇴로 영진위 위원장 자리가 비어 있다. 다음 위원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나.

한국사회에 다양성영화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획일적인 영화만 본 사람은 그것이 영화의 전부인 줄 알지 않나. 다양한 영화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소화할 수 있고, 그것을 관객에게 접할 수 있게 만들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