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안느 퐁텐 감독의 '코코 샤넬'명품 브랜드 아닌 '인간' 샤넬에 포커스… 패션 통해 자유를 실천

아무리 패션에 관심이 없어도 '샤넬(Chanel)'이라는 브랜드는 안다. 어느 백화점에 가도 1층 노른자위 자리엔 'C'를 좌우로 겹친 고리 모양의 검정색 로고가 박힌 고급스런 매장이 있다.

소위 명품계의 퀸 오브 퀸 '샤넬'. 이 브랜드에 대한 감정은 다양하다. 진짜 금칠을 한 것도 아니면서, 할머니 장롱에서나 볼 법한 퀼팅 핸드백을 몇 백만 원에 파는 정신 나간 브랜드라고 볼 수도 있고, 자그마한 액세서리라도 꼭 갖고 싶은 동경의 브랜드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물론 "샤넬이 아니면 걸칠 수 없다!"고 말한 부유한 샤넬 애호가도 있겠다. 브랜드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서, 왜 샤넬이 이렇게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안느 퐁텐 감독의 <코코 샤넬>을 볼 필요가 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을 실컷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다면 조금 실망할 것이다. 이 영화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브랜드가 아닌 '인간' 샤넬이다. 영화 <코코 샤넬>은 가브리엘(오드리 토투)이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세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되기까지, 그 과정에 집중한다. 그 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랑이다.

가브리엘은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 버려진다. 어머니를 병으로 잃자, 행상인 아버지는 "곧 데리러 오겠다"고 그녀들을 고아원에 맡긴 뒤 다신 찾아오지 않았다. 고된 유년기를 마치고 성인이 된 가브리엘은 언니(마리 질랭)와 함께 캬바레에서 춤과 노래로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부유한 귀족 에띠엔느 발장(브누아 포엘 부르드)은 가브리엘에게 반해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발장은 이 반짝이는 검은 눈을 가진 여인에게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은 가브리엘, 코코" 가난한 고아원 소녀가 카바레 가수와 말단 재봉사를 거쳐,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안느 퐁텐 감독은 아마도 샤넬의 전기를 읽으며 "나는 성공에 목 맨 사기꾼에, 거짓말쟁이에 일 중독자였다"는 고백에 끌렸던 게 분명하다. <코코 샤넬>은 가브리엘이 스스로에게 '코코'라는 성을 선사함으로써, 그녀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에 가장 공을 들인다.

보통의 전기 영화는 위대한 인물의 굴곡진 삶을 드라마틱하게 나열하다가 그 인물이 마침내 운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코코 샤넬>도 처음엔 그 과정을 좇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브리엘이 '코코'가 되는 순간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코코를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만들어 준 힘은 '운명'이 아닌 '시대와의 끈질긴 싸움'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코코가 시대와의 싸움을 시작한 계기를 사랑의 좌절로 설명한다. 하나는 귀족과 사랑에 빠졌던 언니가 신분 차로 결국 사랑에 좌절한 사건이다. 코코의 언니는 그 시대의 여성의 억압된 삶을 대변한다. 언니의 불행을 목격한 코코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삶에 타협하는 순간 여성의 자유는 끝장난다는 걸 깨닫는다.

그 시대에 여성은 남성의 격을 높일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됐다. 규율과 예절을 지키는 방식은 숨도 못 쉴 만큼 갑갑한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고개를 가눌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모자를 쓰고, 위태로울 만큼 높은 하이힐에 몸을 싣고 남성의 옆에서 웃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코코의 눈에 그런 삶은 분홍색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덤 속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겪은 사랑의 좌절이다. 자신의 패션 세계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전적으로 이해했던 아서 카펠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코코는 그의 허망한 죽음 이후 일에 몰두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위대한 여성들은 일과 사랑을 다 가지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을 운명에 의해 빼앗긴 이후, 코코는 일과 결혼해 버린다(잘 알려졌다시피 코코는 평생 "가장 끔찍한 건 휴일이다"라고 말하는 일중독자로 살았다).

코코는 패션을 통해 '자유'를 실천한다. 코르셋이 없는 드레스를 만들고, 모자에서 깃털을 떼어내고 챙을 줄이며, 신발의 굽을 잘라냈다. 코코가 디자인한 '자유'가 처음부터 전 세계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아니다. 한 여인이 코코에게 불평을 던진다.

"당신이 만들어 준 옷이 너무 헐렁해요. 살이 흘러내린단 말이에요. 몸에 꽉 맞게 조여주세요." 승마복을 짧게 줄인 바지를 입은 코코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럼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여성이 숨 쉴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샤넬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원칙 '단순함'의 기초다.

샤넬은 장례식용으로만 사용됐던 '블랙'에서 단순한 섹시함, 치렁치렁한 긴 머리 대신 짧은 단발의 경쾌함, 승마바지를 줄이고 밑단을 잘라 만든 바지에서는 활동성을, 광택 없는 면 저지 소재에선 신축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짜 보석 대신 값싼 인조보석에서 반짝이는 '평등'을 고안했다.

그녀는 자신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이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다른 여성들 역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나를 꾸미고 싶은 여성이라면, 몸을 혹사시키거나, 돈 많은 남자의 지원 없이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비전이 바로 샤넬의 패션인 것이다.

샤넬이 팔고 싶었던 건 손바닥 만한 몇 백만 원짜리 핸드백이 아니라, 자신의 비전이었다. 당시 '중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샤넬 스타일이 현재는 가장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자리매김한 것은 결국 샤넬의 비전이 현대의 시대정신이 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기영화치곤 웃고 우는 드라마틱한 높낮이가 적고, 그녀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 러브스토리도 열정적이기보다는 차분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 미니멀한 삶의 샤넬의 스타일의 토양"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패션이 아닌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한 여인의 삶에 더 흥미가 있었다"는 감독은 패션 여왕의 전기 영화에서 휘황찬란한 패션쇼를 대폭 줄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시대와 끈질기게 동시에 우아하게 싸웠던 한 여성의 삶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코 샤넬>을 보고 나면, '브랜드 샤넬'과는 아무 상관없는 옷장 속 블랙 원피스 한 벌이 좀 더 의미 있게 보인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고 했던 '인간 샤넬'이 내 옷장에도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