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지중해'와 비잔틴 미술교회당 벽화처럼 속세와 거리 먼 행복한 삶

1) 전형적인 그리스 정교회 프레스코.
2) 비잔틴 벽화.
3) 그리스 정교회 벽화.

"Dedicato a tutti quelli che stanno scappando"

"도피하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영화 <지중해>(Mediterraneo, 1991)가 시작되면서 올라오는 자막이다. 도시생활의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부족할 것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일탈 꿈꾸게 된다. 쳇바퀴 같은 삶의 굴레 안에서만 가능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는 '문명의 야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벗어나려는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올가미는 강하게 우리를 조여오는 법. 그래서 삶의 무게는 버겁고 세상의 인연은 길고 질긴 것인지 모른다.

여느 영화의 운 좋은 청춘남녀처럼 문명과는 거리가 먼 마치 무인도 같은 유인도에 8명의 병사가 상륙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전략적으로 작은 섬들을 지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탈리아 사령부의 판단에 따라. 하지만 약속한 4개월이 지나지만 그들을 섬으로 보낸 고국은 그들을 잊고 그들 또한 조국을 잊고 섬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영화 <지중해>는 시작된다.

아마추어 화가인 소대장과 마초적인 선임하사, 당나귀를 데리고 군에 온 실바노 등등이 그들이다. 사실 이들 소대는 해산된 부대원이나 부상으로 후송되었다 완치되어 복귀 한 사람 등으로 급조된 오합지졸로 구성되었다.

섬에 상륙한 그들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 최소한의 규율과 질서를 유지하는 군인 아닌 군인으로 에게해의 아름다운 섬 생활에 동화되어 간다. 그러던 중 실바노의 당나귀가 적으로 오인되어 사살당하고 이에 상심한 실바노는 유일하게 바깥수단과 연결해주던 무전기를 집어던져 망가트리고. 이렇게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동시에 그들도 세상을 잊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섬을 침공했던 독일군을 피해 섬을 빠져나갔던 주민들이 섬으로 돌아오면서 이탈리아 군인과 그리스 사람사이에서 살짝 긴장감이 돌지만 이내 하나가 된다. 특히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에 용해되고 꾸밈없는 주민들의 순박함에 매료되어 섬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남을 것인가 고민한다.

하지만 투표를 통해 섬에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군인이란 신분은 지중해의 나른한 햇살에 녹아내리고 게다가 군인의 생명인 총까지 터키 장사꾼에게 빼앗겨 '당나라 군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원주민이 되어간다.

4) 영화 '지중해'의 포스터.
5) 영화 '지중해'의 낙오병 주인공들.
6) 영화 '지중해'의 바실리사의 집.
7) 영화 '지중해'의 무대인 Kastellorizo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소대장 몬티나 중위(Claudio Bigagli 분)는 그림 같은 섬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는다. 이를 본 정교회 신부가 전쟁으로 망가져버린 교회당의 프레스코 벽화를 수복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즐겁게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그리는 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군인들 앞에 몸을 파는 바실리사(Vanna Barba 분) 가 나타나 그들의 나른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몬티니 중위의 당번병이자 고아인 파리나(Giuseppe Cederna 분)는 바실리사를 탐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보다 당나귀를 더 좋아하는 스트라자는 자신의 죽은 당나귀를 대신할 새로운 당나귀를 만나 그를 돌보는 일에 빠져있고 또 섬 정상에서 해안경계 임무를 수행해야 할 뮤나론 형제는 염소를 키우는 섬 처녀와 꾸밈없는 사랑을 나눈다.

이들이 섬을 떠나올 때 언덕에서 손을 흔드는 그녀는 임신을 한 상태이다. 하지만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 소유욕이나 집착이 없는 머리보다는 몸이 시키는 대로 사랑한 결과이다. 이런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가 가능했고 모두에게 섬의 진정한 평화가 가능했다.

이렇게 행복하고 나른한 일상에 한 대의 군용기가 불시착하면서 조국이 잊어 행복했던 군인들은 꿈같은 섬 생활에서 깨어난다. 전쟁은 이미 3년 전에 끝났고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항복했으며 조국 이탈리아는 재건에 한창이라 젊은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현실로 돌아가게 된 그들은 떠나야 할지 남아야 할지 착잡하다.

이런 중에 바실리아를 사랑한 파리나는 몬티니 중위가 수복한 성당의 벽화를 배경으로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지만 떠나야 할 순간은 다가온다. 하지만 파리나는 올리브 통속에 숨어 이곳을 떠나기를 거부한다.

엄한 척하지만 넉넉한 주임상사 멋진 군인 로루소(Diego Abatantuono 분)는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하고 국가 재건의 역군이 되고자 고국으로 향한다. 이탈리아 침공으로부터 고국을 구하고자 군에 나갔던 마을 남자들이 돌아오고 침략군인 이탈리아 군인들은 돌아가는 앙갚음과 보복이 아닌 화해와 용서로 임무를 교대하듯.

자신의 삶에서 벗어난 일탈의 순간, 심각함과 고민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가 주는 행복한 삶을 이들은 불시착하듯 조국의 명에 의해 도착한 섬에서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그 행복한 순간은 몬티니 중위가 수복한 교회당 벽화처럼 속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로마에서 공인받은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많은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벽화를 비롯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우상파괴운동으로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다시 그려져야 했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작품들은 대개는 9C~13C 중에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에 나오는 그리스 정교회당의 벽화는 이즈음에 제작된 것일 것이다.

이들 그림을 비잔틴 프레스코라 하며 당시 미술을 비잔틴 미술(Byzantine Art)이라 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매우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최대한의 열정과 성의를 다해 그림을 그렸지만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몰랐던 당시로서는 역부족. 그래서 이들은 서투른 솜씨에도 불구하고 고대 오리엔트 미술의 장려함이나 엄숙함을 빌어 그리스도를 찬양하는데 사용했다.

따라서 이 시기 작품들은 매우 고졸하고 담박한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그런 때문에 아마추어 화가인 몬티니 중위가 영화 속에서 그 그림들을 손 볼 수 있었지 모르지만. 이들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성격의 내용과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했고 현실이란 언제나 덧없고 순간적이며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신의 정신이고 이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그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당의 벽화는 신의 세계이자 신에 대한 경배의 표상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전쟁을 잊고 살았던 한 군인이 쓴 수기 <나는 군대를 사랑해 (Armanta Sagapo)>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섬을 떠난 지 45년이 지난 어느 날 반백의 몬티니 중위는 섬을 다시 찾지만 자신의 낙원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잔해(?)들만 남아 그를 반길 뿐.

영화의 배경은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카스텔로리조(Kastellorizo)의 미기스티(Megisti)섬이다.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보시길. 그리고 영화를 보는 재미 하나 더, 영화 속 벽화에 얼굴들을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얼굴이 보인다. 결국 그곳은 천국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남아서 계속 꿈꿀 수 있는 길은 도피뿐이다."

앙리 라보리 (Henry Laborit) 영화는 이 말로 끝을 맺는다.



글/ 정준모 (문화정책, 국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