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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치고 달리기

서울독립영화제2009
끊임없이 움직이며 한국영화의 활력 불어넣겠다는 의지 담아
  • 장률 감독의 '중경'
2009년은 한국 독립영화사에서 한 계기로 기록될지 모른다.

<워낭소리>의 300만 관객 동원 이후 <낮술>, <똥파리> 등이 호응을 얻어 '독립영화'라는 '장르'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대중화라는 현상은 제작 배급의 어려움이 숙명과도 같은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한편에서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낳았다.

세간의 관심은 독립영화의 정치적 의의나 미학적 성취뿐 아니라 산업적 가능성까지 포괄했기 때문이다. 후자가 주목받을수록 이는 부메랑처럼,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독립'영화다. 자본을 포함한 모든 권력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핵심이다.

10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서른다섯 번째 서울독립영화제의 고민도 그 지점에 있다. 14일 열리는 세미나 '독립영화, 세상 속에 길찾기'는 한국사회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의 갈림길에서 독립영화의 지향을 묻는다.

시장뿐 아니라 정치 권력과의 관계도 문제다. 지난 10여 년간 독립영화가 공적 지원의 대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문화 정책을 좌우하는 정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도 '독립'이라는 정체성을 겸연쩍게 하는 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 siff2009 포스터
그러므로 근래 발생한 대중적 호응이든, 생존의 한 조건으로 작용해온 정치적 지원이든 편승하기보다 성찰하는 독립영화 본연의 자세를 강조하는 게 서울독립영화제2009의 모토다. 슬로건은 '치고 달리기 Hit & Run'로 정했다. 타자가 공을 치는 동시에 주자가 달리는 야구 전략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영화는 물론 한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주의를 발령하겠다는 의지다.

경계의 주변인, 장률이 온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의 대표 인사는 장률 감독이다. 국적은 중국, 민족은 조선족인 재중동포 3세 감독으로 그의 영화에는 늘 국가와 언어 등 사회의 인위적 분류와 체계들을 드러내고 흩뜨리는 태도가 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경계의 주변인, 장률'이라는 타이틀로 그의 영화 세계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총 8편의 작품이 상영되며 장률 감독이 내한하여 12일 2시 서울 중구 인디스페이스에서 대담을 갖는다.

<장률>은 우해경 감독이 장률 감독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신작 <두만강>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데, 고향인 중국 연변과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 현재 거주하는 베이징을 오가는 장률 감독의 행적은 그대로 경계인의 삶을 상징한다. 영화의 들머리에는 자크 데리다의 말이 인용된다. "강제 이주자들, 망명자들, 고향 상실자들, 유목민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한을, 두 가지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죽음과 언어이다."

2007년작인 <중경>과 2008년작인 <이리>는 제목이 가리키는 두 도시 안 경계인들의 삶뿐 아니라 두 도시 간 경계를 담아낸다. '이리 열차 폭발사고'가 매개다. <이리>는 30년 전 40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화차가 폭발한 이 사고를 소재로 삼았다. 바뀐 지명 '익산'에 묻혀버린 옛 지명 '이리'와 더불어 잊힌지 오래인 이 사고를 굳이 불러낸다. 그리고 그때 가족을 잃고 중국에 간 한국인 캐릭터가 <중경>에 등장한다.

  • 장률 감독의 '경계'
2005년작 <망종>과 2007년작 <경계>도 등장인물의 월경(越境)으로 연관된다. 중국 변방에서 고향을 그리며 떠도는 <망종>의 조선족 모자는 생사를 오가는 여정을 통해 두만강 너머 <경계>, 몽골 사막지대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홀로 땅을 지키려 애쓰는 유목민과 연을 맺는다.

이처럼 장률의 영화는 '경계'를 축으로, 떠돌며 존재의 근간을 그리워하는 삶의 풍경들을 겹쳐 놓는다. 특수해 보이지만, 그 정서는 보편적이다. 유동하는 현대 사회에 편재한 현상이어서가 아닐까. 그밖에 <11세>, <당시>, <사실>이 상영된다.

올해 독립영화의 경향은 88만원 세대와 철거

본선 경쟁 부문에는 올해 722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단편은 665편, 장편은 57편으로 작년보다 각각 90편, 12편 늘어난 숫자다. 그만큼 독립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뜻이다. 그중 단편 34편, 장편 11편이 상영된다.

한국사회의 주류보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정치적 의의인 만큼 노동 현실, 빈곤한 환경과 여성 성소수자 문제 등의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올해의 경향은 88만 원 세대. 어느덧 이 시대의 상징이 되어 버린 청춘의 빠듯한 사연이 장 단편 부문에 고루 포진해 있다.

  •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 권우정 감독의 '땅의 여자'(왼쪽부터)
장편 영화 중에는 도시 재개발로 황폐해진 서울의 모습에 예민하게 반응한 작품도 많았다.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독립 장편영화의 올해의 경향은 '88만원 세대와 철거'"라고 지적하며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광범위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은 서울의 한 산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지는 풍경을 시적으로 담아냈으며, '홈에버'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510일 간 벌인 투쟁을 기록한 김미례 감독의 <외박>은 관객을 치열한 현장으로 이끈다. 세 명의 여성 농민운동가를 주인공으로 한 권우정 감독의 <땅의 여자>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만남을 구체화하고,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을 담은 조세영 감독의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그들이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한국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쿠바 청년과 연인이 된 후 쿠바 사회에서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본 <쿠바의 연인>은 체 게바라, 무상 교육과 의료, 춤과 음악으로 낭만화된 쿠바 사회의 현실과 접할 수 있는 기회이며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의 성장기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 음악의 발생 과정을 목격할 수 있어 흥미롭다.

그밖에 2003년 37년만에 귀국했다가 간첩 논란에 휘말린 송두율 교수의 6년 후 이야기 <경계도시2>,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1991년 실종된 소녀의 각막을 기증받은 여자가 첨단 산업 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화성을 찾아간 사연인 <화성에 가다> 등이 상영된다.

기성 감독, 비판 의식으로 돌아오다

  • 이지상 감독의 '몽실언니'
기성 감독들의 신작을 모은 '국내 초청' 부문도 쟁쟁하다.

이지상 감독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되 영화 미학적 실험을 추구한 <몽실언니>를 선보이고, 김정 감독의 <경>은 휴게소를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와 디지털 문화 등의 현대적 조류 속 삶의 감각들을 표현해낸다.

권력과 탐욕, 시간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은 여러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응수 감독의 <물의 기원>은 한 청년이 전설 속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느껴지는 영화다.

오멸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은 사라져가는 제주 방언과 고유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영화적 시도이고 박성배 감독의 <실종>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종된 사람들을 좇음으로써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현재의 권력 관계 속에 포섭되는지를 드러낸다.

박동현 감독의 <기이한 춤: 기무>는 기무사 건물을 축으로 한국의 근대가 만들어낸, 그리고 곧 사라질 공간들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다. 전수일 감독은 <영도다리>에서 부산 영도다리와 아이를 입양시킨 미혼모 소녀의 이야기를 겹침으로써 현대의 급격한 변동과 삶의 관계를 아울러 생각하도록 만든다.

  • 김응수 감독의 '물의 기원', 백승화 감독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왼쪽부터)
한편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김태일 감독의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는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노동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득차 있다.

임창재와 이송희일 감독도 신작을 내놓았고 전방위 아티스트 백현진과 제작자로 더 유명한 김조광수가 연출한 작품도 상영된다.

이밖에 해외 초청 부문에는 필리핀 독립영화가 상영된다. 장소는 인디스페이스와 스폰지하우스. 자세한 상영 및 부대행사 일정은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www.sif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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