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이서 감독의 사회고발과 스릴러의 결합이 빚어낸 섬뜩한 시너지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우쭐대고, '문명의 주인'이라 고상을 떨어댄들, 인간의 본성은 짐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세상에 만연한 폭력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폭력은 지배구조를 낳고, 구조는 다시 폭력을 고착화시킨다.

강자는 지배하고 약자는 복종하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당연시하는 건, 인간 스스로 짐승임을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서 감독의 데뷔작 <사람을 찾습니다>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 바로 우리의 현실 속으로 조용히 잠입한다.

평범해 보이는 소도시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부동산업자 원영(최명수)과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인애(김기연), 날라리 여고생 다예(백진희) 그리고 전단지를 붙이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규남(김규남)의 삶을 한 꺼풀 들춰보면 뱀의 꼬리를 물듯 먹이사슬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식자는 원영이다. 그는 홀로 사는 인애에게 집을 제공하는 대가로 불륜관계를 맺고, 여고생 다예와도 원조교제를 한다. 특히 규남은 원영의 '밥'이다. 원영은 약간 모자란 규남의 정부 보조금을 가로채고, 툭하면 멸시와 폭력을 퍼붓는다.

원영의 폭력에 너무 오랫동안 시달린 탓인지, 규남은 마치 원영을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처럼 그에게 복종한다. 그렇게 은밀한 폭력이 자행되던 동네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을 찾습니다>는 지배자 원영과 피지배자 규남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지배자 원영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다.

집에서는 평범한 가장이고, 사회적으로는 사람 좋은 동네 주민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원영의 실체는 아찔하다. 가족에겐 일을 핑계대고 원영이 매일 밤 찾아드는 건 내연녀 인애의 집이다.

공공연한 이중생활로도 모자라 우연히 만난 다예를 돈으로 유혹하는 원영에게 성이란 수컷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일 뿐이다. 수컷의 능력은 폭력성으로도 발현된다.

툭하면 인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사업에 걸림돌이 됐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에게 린치를 가하는 원영의 폭력성은 규남을 향해 극대화된다. 원영은 경제적 능력도 없고, 왜소하며,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듯 보이는 규남을 폭력으로 통제한다.

어느 날 사라진 인애의 애견을 훔쳐간 것이 규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원영이 폭주하는 신은 이전의 그의 평범한 소시민적 모습과 맞물리면서 더 큰 공포를 유발한다.

한편, 규남의 삶은 목줄 맨 야생 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규남은 주인에게만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의 삶에 순응한다.

원영의 위압적인 행동 앞에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어떤 비인간적인 일도 감수해낸다. 더불어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삶의 방식을 '개'의 그것에 맞춰가며, 스스로를 '개'와 동일시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익숙한 화면은 모 방송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발프로그램이다. "00 노예"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누군가를 찾아가는 그 프로그램에는 규남과 같은 사람들이 매주 한 명 이상씩 등장한다.

자신에게 '인권'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규남'들은 기이할 만큼 쉽게 지배자의 폭력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규남들'이 이 폭력적인 먹이 사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인간을 버리는 것뿐이라는 섬뜩한 진실을 보여준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이고도 직설적이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실종 사건에 대한 암시이자, 누군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무감각한 사회에 대한 외침이고, 약육강식이라는 짐승의 본능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질타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사회에서 '사람을 찾을'수 있을 것인가. 감독이 내놓은 답은 지극히 비관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면이 그 답을 대신한다.

폭력적이던 원영이 잠시 심경의 변화를 겪고 규남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순간, 규남은 원영에게 숨기고 있던 이빨을 드러낸다. 규남의 독백은 소름끼친다. "주인이 변하면 안 되지. 주인은 강해야 해." 약해진 주인을 물어 죽인 개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느 날 길에서 '주인감'을 발견한 규남은 무작정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그 와중에 규남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통장을 본 남자의 눈이 먹잇감을 본 짐승의 그것처럼 번뜩인다.

이서 감독은 <사람을 찾습니다>를 통해 이미 폭력의 지배구조, 즉 야만의 세계가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야만의 세계에선 인간의 마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동정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원영은 죽음을 당하고, 돈에 대한 욕망은 평범한 한 남자 속에 잠들어 있던 짐승을 눈뜨게 한다.

결국 포식자만 바뀔 뿐, 야만의 먹이사슬은 계속 순환된다는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결론을 보면서, 동의의 한숨을 내뱉어야 하는 현실이 더 비극적이다.

종종 인물의 감정이 난데없이 폭발하거나, 사회고발적인 드라마와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장치가 충돌해 튀는 순간이 있지만, 전반적인 긴장감은 팽팽하다.

원영 역을 맡은 최명수의 능청스러움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뿜어내는 김규남의 연기호흡이 인상적이다. 이서 감독은 대학로 극단에서 김규남을 처음 본 순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에너지에 끌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만이 연기할 수 있는, 아마도 한국 영화사에서 한 번도 본적 없을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를 통해 이서 감독은 원하는 바를 이룬 듯하다. 숨겨진 야만의 이를 드러낸 순간 김규남의 눈빛은 스크린 앞의 관객을 집어삼킬 만큼 압도적이다.



문학산 부산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