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여우에게 배우는 아름답게 나이드는 법

[대중문화읽기]
윤여정 고독, 나문희 슬픔, 선우용녀 웃음 등 독보적 아우라 존재함을 증명
  • 윤여정
배우 윤여정, 나문희, 선우용녀의 공통점은? 미디어에 비친 그녀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면 '나이 든다'는 것이 꼭 두려운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이 들수록 더욱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배우들.

아름다움의 기준이 '쌩얼 미인'이나 '최강 동안'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그녀들. 무엇보다도 그녀들은 '어머니'나 '할머니'라는 역할에 구속되지 않고서도 '멋있게 나이 든 여인'만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존재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배우들이다.

오래 전 윤여정이 드라마 <거짓말>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 나는 그녀의 처연한 옆모습이 뿜어내는 '윤여정표' 슬픔의 향기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머리 풀고 통곡하는 외향적 슬픔이 아니라 무심한 담배 연기에 말없이 실어 보내는 내향적 슬픔. 그녀의 담배연기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독과 아직도 숨길 수 없는 사랑과 여전히 대책 없는 세상에 대한 연민이 황금비율로 혼합되어 있었다.

영화 <여배우들>에서도 윤여정의 담배 연기는 압권이었다. 대선배님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기가 민망했던 김옥빈이 쭈뼛거리며 '저도 한 대 피워도 될까요?'라고 묻자, '그래주신다면 저에겐 무한한 영광이지요.'라고 대답하는 윤여정의 목소리는 너무 따스해서 눈물겨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을 장난감 삼아 오래오래 혼자 놀아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굿바이 솔로>에서 배우 나문희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세상의 문을 향해 차라리 입술을 다물어버린 벙어리 할머니였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그녀의 싸구려 식당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의 기막힌 사연들을 가만히 들어주기만 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는 어른들처럼 충고나 위로를 가장한 권위적인 명령어를 쓰지 않았다. 다만 따스한 국밥으로 그 끝없는 말줄임표의 여백을 채웠다. 기약 없는 침묵만으로도 그녀는 충만한 존재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저 멀리, 이 세상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저 드넓은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 여운계
뒷모습이나 손가락만으로도 슬픔과 고독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두 사람과는 달리, 선우용녀의 진가는 엉뚱하게도 '예능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했다. 윤여정의 전공이 고독이고 나문희의 전공이 슬픔이라면 선우용녀의 전공은 웃음이다. <세바퀴>에서 선우용녀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내가 망가짐으로써 타인의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의 힘이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눈부신 '소녀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녀의 예상 밖의 '깜찍함'은, 여성에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싱그러운 소녀근성이 남아 있음을, 그 소녀다움을 지킨 행복한 여성은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대장금>에서 수랏간 최고상궁의 역할을 해냈던 고 여운계 선생의 모습도 그립다. 그녀는 권력과 탐욕이 판을 치는 세계에서 '음식'만은 그 세속의 흙먼지에 찌들지 않기를 바랐다. 끊임없이 음모와 술수의 희생자를 자처하면서도 아무도 자신을 걱정하길 바라지 않았던 정 상궁. 그녀는 병마에 시달리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야 궁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어릴 적 내가 본 화려한 궁(宮)은 허상이었어. 늘 사람이 바글거렸지만 궁은 외로웠다. 모두들 아마도 그 외로움에 지쳐 그렇게들 시기와 질투가 있었을 게야.

외로움에 지쳐 승은(承恩)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아등바등했을 테고, 외로움에 지쳐 부(富)라도 얻어야겠으니 남에게 빌붙었을 테고, 외로움에 지쳐 권력이라도 얻어야겠으니 권모술수라도 써야 했겠지. 어여삐 여기거라. 불쌍히 여겨. 네가 원칙을 지키고 싶은 만큼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들까지도 어여삐 여기라는 불가능한 사랑을 실천하고 떠났다. 죽어서는 음모와 살육이 판치는 궁에서 자유롭기 위해, 이 세상 어느 땅도 차지하지 말고 그저 구름 위에 자신의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이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매우 유사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 바로 '헤카테'다. 헤카테는 올림푸스 12신의 반열에 들지도 못하고 각종 유명 신화의 주인공도 아니다. 하지만 헤카테의 매력은 그 대단한 신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발휘된다. 그녀는 갈림길의 여신이기에, 운명의 기로에 선 신들에게 상황을 꿰뚫는 직관을 선물한다.

  • 선우용녀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네를 잃고 분노와 슬픔으로 미쳐가고 있을 때 헤카테는 데메테르를 진정시키며 '일단 울분을 삭이고, 함께 그대의 딸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제우스의 묵인 하에 자행된 하데스의 납치와 강간 소식을 들은 데메테르는 미쳐 날뛰며 '곡물의 여신'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세상을 멈춰버린다. 광기에 사로잡힌 데메테르는 딸을 잃은 슬픔을 함께 해주고 제우스마저 외면한 자신의 원통한 사연을 들어주는 친구 헤카테의 우정으로 수많은 난관을 뚫고 비로소 페르세포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회가 개인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엄마라는 존재의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모성에 의존하게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 열풍도, 엄마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와 연극의 성공도, 이제는 모성밖에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위기감을 부추긴다. 하지만 모성에 기댈수록, 수퍼맘의 신화에 길들여질수록, 우리는 '내 아들, 내 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자식을 최고로 키워야 한다는 엄마들의 강박관념은 점점 더 남의 자식을 타고 눌러야 내 자식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의 야만적 집착을 낳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자식의 허물을 인정하고 남의 자식의 장점을 볼 줄 아는 눈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이 세상 누구의 엄마도 아닌 '이웃집 할머니 헤카테'의 눈과 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가끔은 너무 많은 '말, 말, 말'이 들려와 귀를 틀어막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너도 나도 '나만의 말'을 떠들겠다는 수천만의 입술들만이 동동 떠다니는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은 귀, 더 열린 귀가 아닐까. 욕망의 발산만을 위해 조잘대는 입술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들어줄 수 있는 귀. 발언권만이 아니라 청취권이 절실히 필요한 사회. 우리 사회는 최강 동안 유지 비법이나 노화를 이기는 장수 비결 수집에는 혈안이 되어 있지만, 아름답고 멋지게, 비굴하지 않고 추하지 않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한 것이 아닐까.

  • 나문희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19년 11월 제2802호
  • 이전 보기 배경
    • 2019년 11월 제2802호
    • 2019년 11월 제2801호
    • 2019년 10월 제2800호
    • 2019년 10월 제2799호
    • 2019년 10월 제2798호
    • 2019년 10월 제2797호
    • 2019년 09월 제2796호
    • 2019년 09월 제2795호
    • 2019년 09월 제2794호
    • 2019년 09월 제2793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영주, 산사의 추억 영주, 산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