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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보고자 하는 그 무엇

[시네마]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
활자로 창조한 묵시록을 스크린에 복사하고 싶었던 카메라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걸작 중 하나이자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더 로드>가 스크린에 옮겨졌다. 할리우드에서 곧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기대와 우려가 팽팽하게 맞섰다. 특이하게도 기대하는 쪽과 우려하는 쪽의 이유가 같았다. 온 세상이 잿더미로 뒤덮인 종말의 세상, 그 숨 막히는 공허. 기대하는 이들은 절망의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공허의 이미지를 두 눈으로 보길 원했고, 우려하는 이들은 활자가 뇌리에 박아 넣은 공허의 세상이 구체화된 영상에 의해 흐트러질까 걱정했다.

<더 로드>의 존 힐코트 감독이 이런 기대와 우려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며, 음악의 이미지를 화면에 옮기는 작업을 해 온 존 힐코트 감독은 짙은 안개 속에 어슴푸레 자리 잡고 있을 멸망의 세상을 기어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욕망 덕분에 코맥 매카시의 침묵과 공허가 아우성치는 종말의 세상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세상이 끝났다. 태양은 빛을 잃었고, 회색 잿더미가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이 묘사 때문에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차라리 세상의 끝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끈질긴 인류는 몇몇이 살아남았다. 남자(비고 모텐슨)의 가족도 불행히 살아남은 쪽이다.

그는 어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와 함께 걷는다. 아들에게 끊임없이 "남쪽으로 가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남쪽엔 무엇이 있을지 그조차 알지 못한다. 남자가 걷는 이유는 오직 살기 위해서다. 식량이 바닥난 세상에서 누군가의 저녁식사가 되지 않기 위해, 오직 폭력과 분노만 남은 누군가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무조건 앞으로 걸어야 한다.

하지만 남자는 가장 두려운 적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음을 안다. 그는 퀭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아들에게 "왜 살아야만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고통의 삶보다 편안한 죽음을 선택한 여자(사를리즈 테론)가 '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남자는 어린 아들을 다독여 필사적으로 걷는다.

어딘가를 '향해' 몸을 움직일 때만큼은 '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걸음을 멈추면 심연의 절망이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속삭일까봐, 그 속삭임에 매료되어 어린 아들을 내팽개치고 실낱같은 생의 의지를 놓아 버릴까 무서워 걷고 또 걷는다. 약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숨만 겨우 붙여둔 채 팔다리를 조금씩 '아껴 먹는' 식인귀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더 로드>의 세상은 남자에겐 이미 지옥이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은 무시무시하도록 담담하게 이 지옥도를 묘사한다. 수식 없는 단문이 켜켜이 쌓인 책장을 넘길 때마다, 회색 잿더미가 목구멍에 쌓이는 듯 갑갑하다. 침묵의 세상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간혹 이런 짧은 대화를 나눈다. "우린 아무도 안 잡아먹을거죠, 그죠? / 그래, 당연히 안 잡아먹지 / 우리가 굶더라도요 / 지금 굶고 있잖아 / 안 굶는다고 했잖아요 / 안 죽는다고 했지, 안 굶는다고는 하지 않았어 / 어쨌든 안 잡아먹을 거죠 / 그래, 안 잡아먹어 / 무슨 일이 있어도요 /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 그래."

입 속에 정적이 맴돈다. 영화 <더 로드>는 욕심 부리지 않는다. 활자가 그려놓은 희끄무레한 지옥이 흐트러질세라 조심스럽게 떠올려,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내려놓는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지는 남자 역에 비고 모텐슨을 캐스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로드>의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코맥 매카시의 팬임을 자청하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배우들이 '남자'역을 탐냈다.

하지만 제작진은 "원작의 그 남자를 떠올리게 할 배우는 최소한 우리가 아는 한은 비고 모텐슨뿐"이라며 관객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스타들을 고사했다. '남자와 소년이 걷는다. 나쁜 사람들을 만나 도망친다. 또 걷는다' 로 요약될 법한 줄거리에 약간의 살을 붙였지만, 시나리오도 최대한 원작을 존중했다. 관객의 목구멍까지 갑갑하게 만드는 잿빛 세상도 책의 묘사를 최대한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겼다.

영화 <더 로드>의 전략은 코맥 매카시 원작,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게 배워 온 것 같다. 여러 감독들이 두 팔을 걷어 붙였지만, 코맥 매카시 원작의 영화는 매번 "안 만드느니만 못하다"는 냉혹한 평을 들어왔다. 그 악연을 깬 최초의 사례가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다. 코언 형제는 "손을 대고 싶지도, 댈 수도 없었다"는 이유로 원작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대사로 옮기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영화에서 음악을 모두 빼서 감정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대신 일상적인 소음만 사용해 침묵 속에서 소름 끼치도록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매혹의 악마' 안톤 시거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조쉬 브롤린, 토미 리 존스의 호연도 성공에 큰 몫을 했다. 물론 영화화 성공의 가장 큰 공은 행간의 공기까지도 읽어낸 코언 형제의 몫이겠지만.

구성 요소는 <더 로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못지않게 훌륭하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에 비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비해, 파괴력이 부족하다. 몇몇 장면에선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절망과 공허의 지옥을 성공적으로 재현했지만, 두 손가락을 우뚝 세워주긴 힘들다. 지리할 만큼 묵묵히 걸어가던 '소설'이 마지막 20페이지를 남겨둔 시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 볼을 쓰다듬어 주는 듯한. 그 벼락같은 위안.

아쉽지만 영화는 그것까지 '복사'하진 못했다. 냉정히 따지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맥 매카시의 원작 중 그나마 영화로 옮기기 좋은 작품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정수리를 후려치는 망치 같다면, <더 로드>는 깨닫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고행 같다. 코언 형제라도 <더 로드>의 영화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지도 모른다(마음 속 깊은 곳에선 '혹시 그들이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맥카시의 활자를 영상으로 대체하는 작업은 '잘 해야 본전'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감독들이 줄줄이 도전장을 내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매카시의 소설에는 인간이 '기어이 보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더 로드>에서 '그 무엇'은 '선(善)'이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양비론의 손쉬운 긍정이 사라진, 생과 사, 선과 악, 유와 무, 딱 둘만 남은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매카시는 수식을 걷어낸 문장으로 이 질문에 성큼성큼 다가가서, 가식을 걷어낸 인물에게 반드시 답하게 한다. 인간 본성의 가장 끝엔 무엇이 존재하는가. 코맥 매카시가 기어이 그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 기어이 그의 원작을 영화로 옮기려는 노력도 끊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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