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장훈 감독의 송강호와 강동원의 훈훈한 화음 지휘하는 장훈 감독의 리드미컬한 연출

<의형제>는 관객의 기대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넘친다. 가장 큰 기대감은 송강호를 향한 신뢰다. 관객들이 '송강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관객을 실망시킨 적 없는 그의 연기에 대한 신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를 선택하는 그의 안목에 대한 신뢰다. 호오가 극과 극으로 나뉘었던 전작 <박쥐>를 '예외'로 치면, '송강호의 영화'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두 번째 기대감은 강동원의 것이다. 최근 6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전우치>를 비롯해 근작들에서 그는 조금씩 '배우의 얼굴'을 가꾸고 있는 중이다. '연기 지존' 송강호와 합을 맞춘 강동원이 어떤 성장세를 보여줄지 기대가 높다. 마지막으론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단박에 한국영화계에 주목할 만한 신예로 떠오른 장훈 감독에 대한 기대다.

<영화는 영화다>는 장르 영화의 정석이 주는 쾌감을 한시도 놓치지 않은 수작이다. 동시에 판타지의 세계인 영화와 비루한 현실이 서로를 동경하고 배반하는 과정을 그린다. 장훈 감독은 데뷔작에서 '가벼움 속에 무거움을 품은 대중영화'를 실현시킨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의형제>는 기대의 3요소가 제 몫을 다하는 영화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요소가 어울려 빚어내는 시너지다.

때는 90년대 후반, 국정원 대북 관련 작전팀장 이한규(송강호)는 신출귀몰한 남파 공작원 '그림자' 검거작전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남으로 귀순한 주요 인사들을 잔인하게 숙청해 온 '그림자'가 움직인다는 첩보를 입수한 이한규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현장에 출동한다.

한 편, 몇 년 째 남한에서 비밀공작을 해 온 북한의 엘리트 요원 송지원(강동원)은 가족이 있는 북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임무를 전달받는다. 그림자를 도와 귀순 인사를 제거하라는 것.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지원은 그림자를 호위하지만, 제거 대상의 가족까지 잔인하게 몰살시키려는 그에게 반발하고, 때마침 도착한 이한규 팀과 맞닥뜨린다. 이 사건으로 이한규와 송지원의 삶은 나락을 떨어진다.

많은 동료를 잃고 작전에도 실패한 이한규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물어 국정원에서 쫓겨나고, 그림자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송지원은 모든 지원을 차단당하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믿었던 조직에서 단칼에 '팽'당한 이한규와 송지원. 두 '낙동강 오리알' 요원은 6년 만에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재회한다. 한규의 눈에 지원은 "5억 짜리 간첩단"으로, 지원의 눈에 한규는 "북으로 돌아갈 마지막 티켓"으로 보인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로또'가 된 상황. 한규와 지원의 살 떨리는 동거가 시작된다.

<의형제>의 얼개는 장훈 감독의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와 유사하다. 두 영화 모두 '충돌'을 전제로 한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사내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손을 잡고, 합을 겨루면서, 마음을 나눈다. 우리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믿어왔던 두 세계가 사실은 모두 '사람 사는 세상'이었음이 드러난다.

<영화는 영화다>가 영화의 판타지와 현실의 비루함을 충돌시켰다면, <의형제>는 남과 북, 생계와 이념을 충돌시킨다. 충돌의 소재는 훨씬 무거워졌지만, 영화는 소재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영리한 설정 때문이다. 한규와 지원은 모두 '과거의 요원'이다. 그들의 현실을 장악하는 건, 이념이 아닌 생계다. '먹고 사는 문제'라는 큰 공통분모 속에서 두 사람은 동거를 통해 깨닫는 건, 서로가 이를 갈고 때려잡을 적이 아닌 안쓰러워 보듬어주고 싶은 '동병상련'의 처지라는 사실이다.

'짤린 요원'이라는 설정은 자칫 두드러질 수 있는 이념의 대립각을 대부분 순화하는 동시에, <의형제>의 장르적 재미와 영화적 리듬감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두 사람이 현직 요원이었던 초반부엔 급박하고 강도 높은 총격신과 추격신을 선보였던 영화는 국정원에서 잘린 한규와 북에서 내팽개쳐진 지원이 '사람 잡는 특기'를 살려 도망친 베트남 신부를 잡으러 다니는 중반부에선 느긋한 질주와 유쾌한 액션으로 박자를 변주하고, 정체를 드러낸 두 사람이 서로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클라이맥스에선 다시 왕년의 실력을 되살려 급박하게 질주한다.

몇 차례의 흥미로운 액션 신에서도 '짤린 요원'이라는 설정은 리듬감으로 살아난다. 남파 공작원 지원의 전문적인 살수와 살도 찌고 몸도 굳었지만 왕년의 가락이 묻어나는 한규의 몸놀림이 어우러져 액션 장면에 흥이 붙는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의형제>는 이 변박을 솜씨 좋게 살려내 액션과 코미디, 누아르와 휴먼 드라마를 오가는 리드미컬한 흐름을 이끌어낸다.

<의형제>의 리듬감을 주도하는 '상쇠'는 단연 송강호다. 이한규가 눈빛에 힘을 넣고 빼는 아주 미묘한 변화를 기점으로 영화의 변주가 시작된다. 매우 '송강호 답고' 동시에 가장 '영화적인' 연기를 감상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대사와 행동도 송강호를 거쳐 스크린에 올려지는 순간, 대체할 수 없는 뉘앙스가 생긴다. 그 뉘앙스가 강렬한 때문에 한규 안에선 <쉬리>의 이장길,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지만, 결국엔 과거의 캐릭터에서 한 뼘 더 나아간 <의형제>의 이한규가 태어나는 식이다.

송강호의 리듬에 악센트를 가미하는 강동원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그는 비로소 '내려놓는 재미'를 맛 본 것 같다. <전우치>에서 입꼬리를 툭 떨군 만화적 표정으로 건들거리는 악동 도사의 캐릭터를 잡아내더니, <의형제>에선 그간의 '스타일'을 다 덜어내고 남파 공작원 지원에 푹 파묻힌다. 치장을 걷어내고 나니 강동원의 '배우다운 얼굴'이 더 많이 보인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심드렁한 표정, 언뜻 배어나오는 인간적 미소는 인물에 대한 공감을 증폭시킨다.

<의형제>는 장훈 감독에 대한 기대가 근거 없는 '호들갑'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비록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영화는 매우 대중적인, 장르영화입니다!"라고 부르짖는 듯한 엔딩이 조금 급작스럽긴 하지만, 장르영화의 경쾌함 속에 묵직한 이야기를 품게 한 세심한 연출은 장훈 감독의 내공을 가늠케 한다. 마지막으로 '피를 나눈 형제애'를 강요하는 대신, 부대끼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해보자고 권하는 <의형제>의 제안을 한 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박혜은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