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심성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2009년 트라이앵글뮤직 (中)260여 장의 경음악집과 수많은 가수들의 앨범 녹음에 참여

심성락은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부산에 정착했다. 명문 경남고를 졸업한 인재였던 그에게 음악적 관심을 심어준 친구는 학교 야구부 투수였던 임종호. 당대에 모르는 유행가가 없었던 그는 손가락 두 개가 없었지만 기타를 뒤집어 연주를 하고 콩쿨에 출전할 정도로 노래실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네 레코드가게 점원과 친하게 지내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끼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피난 온 김 사장이란 분이 레코드 가게 절반을 악기점으로 꾸몄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가게를 봐주면서 몰래 아코디언을 끄집어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 사장에게 걸렸지만 "재능이 있으니 연주를 본격적으로 해보라"는 칭찬을 듣게 되면서 독학으로 아코디언을 배웠다. 사실 처음에 그는 악사가 아닌 가수가 되려 했다. 하지만 변성기 때 목소리가 탁성으로 변해 접었다고 한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하면서 노래는 딱 끊었다.

고1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 토막. 방학 때 서울 형님 댁으로 올라간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집안의 허락도 없이 서라벌예고 전학을 시도했다. 그때 예고로 진학하겠다고 찾아온 명문고 학생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당직 음악교사가 그를 피아노가 있는 교실로 데려가 '땡'하고 A음을 치며 "무슨 음이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한 그에게 그 교사는 "기본적인 음을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면 평생 음악을 배워도 가능성이 없다"고 그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를테면 절대음감 테스트에서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은 셈이다.

전쟁 중에 부산 KBS는 방송출력이 500와트밖에 되질 않아 자체 프로그램제작이 불가능해 중계방송만 했는데 녹음기를 들어오면서 야외 노래자랑대회를 시작했다. 당시 심사위원은 황문평, 손석우, 한복남 등. 하지만 반주를 맡았던 미군무대 출신 연주인들은 뽕짝을 전혀 몰랐다. 당시 예심이 없었기에 구름처럼 몰려든 수 십 명의 출연자들이 어떤 노래를 무슨 키로 부를지 모르는 상황에 노래자랑대회 진행은 엉망이 되었다.

그때 심사위원을 봤던 악기상 김 사장이 작곡가 이재호에게 눈여겨 봐두었던 심성락을 추천했다. 4번째 노래자랑대회 때부터 연주를 맡게 된 그는 "워낙 노래를 많이 들어 오리지널 전주까지 외우고 있었기에 쉽게 모든 노래를 반주했다"고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면제를 받고 큰 형님이 운영하는 논산 3거리의 다방에 내려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큰형과 친한 군 예대 책임자인 정성일 소령이 그를 직업 악사로 스카우트를 했던 것. 악단에 들어가자마자 사고가 터졌다. 당시 색소폰을 연주했던 군 예대 악장이 술에 취해 장교식당 공연펑크를 냈던 것. 그래서 약관 21살의 심성락은 졸지에 논산 제2훈련소 군 예대 악단장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악단을 지휘하기엔 음악공력이 부족했던 그는 형님이 운영하는 다방 근처 공터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워가며 편곡과 화성학 공부에 매진하며 음악공력을 배양했다. 이후 부산 KBS, MBC, TBC 등 각 방송국 경음악단의 멤버를 거쳤다. 그가 최초로 녹음에 참여한 곡은 1966년 박춘석이 작곡하고 박지연이 노래한 '꿀밤 삼백석'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잠시지만 작곡가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1968년 발표한 가수 최정자의 '등대불 하소연, 지금까지도'와 이상렬의 '천리타향', '정', 김복자의 '그대 그리고 탱고', 태현철 그러니까 지금의 현철이 데뷔 초기에 부른 '차라 목석인들', 박지연의 '찾아왔는데, 빗속에 바람 속에'는 모두 심성락이 창작한 곡들이다.

당시 천지 나이트클럽의 김인배악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악단의 아코디언을 빌려 반주하며 가수에게 노래연습을 시켰다. 그 모습을 본 아세아의 최치수 사장이 이봉조와 공동으로 그의 첫 아코디언 연주집 '경음악의 왕'을 제작했었다. 이후 260여장의 경음악집과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 많은 가수들의 앨범 녹음에 참여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