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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스포츠의 공통분모는 '희망'

[시네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스포츠 영화의 정석 보여준 내용과 형식… 교과서의 위대함 일깨워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지만, 열기는 여전히 후끈댄다.

'여왕폐하 金연아'를 비롯한 선수들이 온 몸으로 써내려 간 '각본 없는 드라마' 덕분이다.

다들 알다시피 동계올림픽의 '금광 종목' 들은 죄다 비인기 종목이다. 평소엔 냉랭하다가 올림픽 기간만 되면 "금을 캐와라"고 부르짖는 중계방송에는 심기가 불편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 캐는 광부도 아닐진대 말이다.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 돌림노래를 하듯 "제대로 된 훈련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를 되풀이 하는 것도 부아가 돋는 대목이다.

쇼트 트랙 부문에선 올림픽 5연패를 기록했다는데, 그러면 장장 20년이다. 20년 동안 한결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 선수들을 방치했다는 게 무슨 자랑인가.

선수들이 받은 금메달 덕에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는 선수들을 보면서 괜스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건 나뿐만은 아닐 듯하다. 그들에게 별로 해준 게 없는 '국가'를 '대표'해 고군분투한 선수들에게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던 한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스포츠는 이처럼 승리의 희열 이상의 떨림과 감동을 선사한다. 같은 팀, 같은 선수를 응원한다는 일체감, 마침내 그들이 승리했을 때의 성취감은 엄청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스포츠는 종종 '정치적 계산'에 유용하게 활용되곤 했다. 덕분에 우리는 '정치'와 '스포츠'가 만나면 일단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순진하게 접근했다간 정치적 술수에 휘말려 머리 빈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이하 <인빅터스>)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정치인이 스포츠를 통해 분열 위기의 국가를 어떻게 화합시키는지 보여준다. 얼핏 생각하면 위험한 발상이다. 얼마나 많은 정치가들이 '스포츠'란 이름으로 대중을 현혹시켰던가. 하지만 <인빅터스>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알면 마음이 좀 놓인다.

그 정치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고, 이 영화의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위대한 마초에서 위대한 현자로 늙어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실화를 통해 "정치와 스포츠의 공통분모는 희망이다"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인빅터스>는 27년간 옥살이를 하던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가 석방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좁은 도로 위로 만델라를 태운 차가 달려갈 때, 그 길을 사이에 둔 두 집단의 반응은 명백히 엇갈린다. 축구를 하며 놀던 흑인 아이들은 "만델라"를 외치며 격렬히 환호하고, 럭비 연습을 하던 백인 학생들은 뚱한 반응이고, 백인 코치는 "개만도 못한 테러리스트에게 이 나라가 넘어간 수치스러운 날"이라며 격한 증오를 드러낸다.

코치의 증오가 무색하게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에 선출된다. 만델라에게 한 표를 던지기 위해 흑인 유권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을 섰다. 그 긴 줄은 그간의 인종차별 정책의 상처와 만델라가 이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흑인 국민들의 뜨거운 희망을 짊어진 만델라 대통령은 (흑인 국민들의 입장에선) 도발적인 행보를 선택한다. 대통령궁에 백인 직원들을 남게 하고, 대통령 경호실에 과거 흑인 인권운동가들을 체포했던 백인 경찰들을 투입한다.

만델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측근들이지만, 만델라의 행동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우리를 잡아넣었던 백인들과 함께 대통령 경호를 할 순 없다"는 경호실장에게 만델라는 이야기한다. "두려워하지 말게. 화합도 여기서부터, 용서도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라네. 두려워하지 않는 게 우리에게 힘이 될 걸세."

만델라 대통령은 다른 급한 정치적 현안만큼이나 럭비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들의 전용 스포츠로, 국가대항 경기가 있는 날이면 흑인들은 남아공 팀이 아닌 상대국을 응원할 정도. 만델라는 "럭비 자체가 인종차별의 상징이므로 대표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흑인 정치가들을 직접 설득해 팀을 살린다.

하지만 팀의 전력은 최약체. 만델라는 대표팀 주장 프랑소와(맷 데이먼)를 직접 만나 1년 남은 럭비 월드컵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것을 부탁한다. 럭비를 통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흑백의 깊은 골도 조금은 메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만델라는 이것이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인간적인 계산"이라고 말한다.

<인빅터스>는 만델라의 '인간적인 계산'대로 럭비 팀이 최고의 실력을 쌓고, 최고의 경기를 펼치고, 그 과정에 흑백이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과정을 순서대로 그린다. 어찌나 단순하고 교과서적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절대 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지도자 만델라에 대한 차분한 전기영화이자, 마지막 승부에 이르러 관객 모두를 경기장 한 구석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스포츠 영화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게다가 장르를 섞는 과정에서 조금도 흐트러짐도 없고, 한 신 한 신을 따져봐도 불필요한 장면이 없다.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영화다. 단정하고 깔끔한 정석으로 만든 <인빅터스>는 교과서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면에서만 교과서가 아니다. <인빅터스>의 내용 역시 교과서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럭비의 광팬이었을 만델라 대통령은 스포츠와 정치의 만남을 통해 희망이 살아있음을 모든 국민에게 확인시킨다. 그 역시 스포츠가 현실적으로 산재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취시키는 것"이다. 스스로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두려움에 무릎 꿇지 않고, 내 삶의 선장은 오직 나 자신임을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를 고취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위해 스포츠의 순수한 에너지의 도움을 조금 받은 것이다. 이 놀랍도록 순수한 메시지는 그 주인공이 넬슨 만델라였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27년간 좁은 감옥에 갇혀 어네스트 윌리엄스 헨리의 시 '인빅터스'를 읽고 또 읽으며 "내 삶의 선장은 오직 나"임을 되새기며,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에서 다시는 서로를 억압하거나 경멸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만델라의 숭고한 삶 자체가 교과서적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만약 나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반드시 당신이 연기해주길 바란다"고 했던 모건 프리먼의 빛나는 연기와 등 두께를 어깨너비 만큼 키우고 순수한 육체의 에너지를 발산한 맷 데이먼의 묵묵한 변신도 이 영화에 큰 힘을 싣는다. 마지막으로 <인빅터스>의 선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길 꺼리지 않는 현자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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